<역대상 2:1~55>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재벌 2세, 재벌 3세의 성공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는 힘들 겁니다. 왜냐하면 매일 매일 삶의 문제들과 시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또 누구보다도 좋은 조건과 외모와 탁월한 재능과 능력을 타고난 사람의 성공 스토리 역시 그다지 우리에게 와 닿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내게는 그런 능력과 조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동을 준다는 것은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듣거나 보는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많이 한 사람, 인생의 악조건들 속에서 성공을 일궈낸 사람들의 스토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희망이 되고,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보다 시련과 어려움을 많이 겪었거나, 겪고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누군가에게 여러분이 경험한 그 은혜가 흘러가게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난 작은 들꽃이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왕궁에서 태어난 금수저가 아니라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우리가 견뎌내지 못할 시련이 없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희생하셨는데,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나 인간이 죄로 인해 실패했지만, 주님께서는 그 실패를 십자가로 덮으시고, 그 실패를 부활의 소망으로 바꾸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상 2장은 이삭의 아들 야곱(이스라엘)이 열두 아들을 낳았고, 그 중에 넷째 아들인 유다의 후손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멸망하기 전 남유다 왕국을 이루고 있었던 유다지파였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 이후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이스라엘의 전통적 왕권은 다윗에게 있었고, 역대기는 그 다윗의 출생까지의 계보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이 구절은 창세기 38장에 좀 더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유다는 세 아들(에르, 오난, 셀라)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이 ‘다말’이란 여자와 결혼했는데 자손이 없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악함으로 여호와께서 그를 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38:7). 그런데 둘째 아들 역시 여호와 앞에 악하여 죽게 됩니다(창38:8~10).
그래서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수절하고 친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세기 38장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듯이 다말은 창기처럼 꾸미고 시아버지인 유다에게 접근했고, 다말은 임신하여 유다의 아들인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정말 상상할 수도 없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유다 가문의 수치스런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시면,
“갈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이며”
세라의 후손 중에 ‘갈미의 아들 아갈’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여호수아 7장 18~26절에 등장하는 ‘아간’이란 사람과 동일인입니다. ‘아갈’이란 뜻은 ‘재앙’이란 뜻입니다. 여리고성을 취할 때 재물에 눈이 어두워 전리품 중에 일부를 숨겼고, 그로 인해 그 다음 전투인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는 재앙이 임하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세라의 쌍둥이인 베레스에게서는 ‘헤스론’이란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9절부터 15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헤스론에게서 부터 그의 후손인 다윗이 낳기까지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11절을 보시면,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
룻기 4:21절에서 살마는 ‘살몬’이란 이름으로 나와 있는데, 그는 여리고성을 정탐했던 정탐꾼으로서 그를 숨겨줬던 여리고의 기생 ‘라합’과 결혼해서 ‘보아스’라는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또 보아스는 남편을 잃은 모압 여인 ‘룻’과 결혼을 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16절, 17절에는 다윗의 누이들인 스루야와 아비가일의 자식들이 나오는데 다윗의 조카들입니다. 그런데 조카인 요압은 권력에 눈이 어두워 사촌인 아마사를 죽였고, 아마사 역시 생전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의 군대장관이 되어 함께 반역에 동조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하지만 다윗의 계보를 보자면 불편한 부분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다윗의 아들과 조카는 반역을 저지르고, 조카는 권력욕에 사촌을 죽이고, 다윗의 조상들 중에는 가나안 땅의 매춘부도 있었고, 이방의 모압 여인도 있었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 민족을 재앙으로 몰아넣은 아간 같은 인물도 나오고, 유다지파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부끄러워서 입에 올리기도 불편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계보라면 성스럽고 완벽해야 할 거 같은데 오히려 더더욱 수치스러운 내용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실패 속에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와 수치를 가리어 주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와 죄와 부끄러움을 십자가로 덮어주시고, 회복하시고 치유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에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와 수치를 십자가로 덮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