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왕국의 분열”

<열왕기상 12:1~20> 

– 열왕기상(21) –

 

 

우리나라의 비극 중에 하나는 남북이 70년이 넘도록 분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제 35년의 식민지배가 1945년 8월 15일 종식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산국가였던 소련은 한반도를 거쳐 치고 올라오는 일본군을 상대로 전쟁을 했고, 미국 역시 일본군을 상대로 전쟁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식과 함께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했고, 그것은 곧 우리 국민들의 이념의 분열을 갖고 왔습니다.

 

 

그래서 38선 아래 남한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1948.8.15.)』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쪽으로는 소련의 지원을 힘입은 김일성이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게 되면서 남북은 완전히 분열되게 됩니다.

 

 

미국은 수년간의 독립전쟁을 통해 1783년 영국의 식민지 중에 최초로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는 노예제도가 일반화되어 있었는데, 그 즈음부터 노예제 폐지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북부지역 사람들은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고, 남부지역 사람들은 노예제 폐지 반대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연방은 남과 북의 갈등이 심해져 갔습니다. 1861년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고,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하면서 4년 간의 남북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전역에서 남부연합군이 패했고,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남과 북으로 분열될 뻔했던 미국은 오늘날의 미합중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미국의 분열 위기를 막아내고,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의 미합중국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965)’ 미국 16대 대통령입니다.

이렇게 지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걸출한 지도자 한 사람이 분열 위기의 나라를 통합해 세계 최강의 나라로 가는 디딤돌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가치와 생각과 리더십은 한 나라를 반쪽으로 나눌 수도 있고, 사분오열로 분열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대 근중동의 강대한 나라를 이루어놓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부친이 이루어놓은 부강함을 갖고 무역을 통해 풍요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 속에서 솔로몬의 말년은 쾌락과 우상숭배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솔로몬의 범죄는 그 아들 때에 가서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예언과 함께 솔로몬은 죽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0여 킬로미터 거리에 있었던 지명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 온 후 처음으로 언약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곳이기도 하고,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 역시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단을 쌓은 땅이기도 하고, 야곱과 요셉의 뼈가 묻힌 매장지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나안 입성 후에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갱신했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의 대관식을 갖기 위해 바로 그 세겜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기 위해 세겜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이제 대관식만 치르면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을 이어 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부터 4절에 보면 르호보암이 왕이 되는데 한 가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7년간 성전건축과 13년간 솔로몬 왕궁과 예루살렘 성벽 확장 그리고 여러 성에 창고와 요새들을 건축하는데 매우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습니다. 그 일을 통해 나라의 부강함을 자랑하고, 세계 여러 나라들과 큰 무역을 할 수 있었고, 나라 안에 부와 풍요함은 더해졌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솔로몬이 통치하는 40년 간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을 앞에 세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4절을 보시면,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의 정책 중에 하나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저녁 있는 삶’을 달라는 겁니다.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축과 토목공사에 동원되었고,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위해 쉼 없이 일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제 좀 그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왕의 대관식만 치르면 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줄 알았던 르호보암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대관식은 자연스럽게 뒤로 미뤄졌고, 르호보암은 그들에게 3일 뒤에 그 부분에 대해 다시 이야기 나누자고 대답하며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만, 바로 이 부분이 선조인 다윗 때부터 이루어온 강대국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점이 되는 것이고, 여기서 르호보암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는가? 통합 되는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왕국의 분열이냐? 통합이냐? 라고 하는 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문제인데, 이 중요한 문제가 누구의 말을 듣느냐? 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르호보암은 먼저 그의 아버지이며,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 왕과 오랜 세월 동안 국사를 논한 국가의 원로들과 의논했습니다.

 

7절을 보시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지혜의 왕인 솔로몬과 오랜 세월 국가 경영을 했다면, 그 원로들의 지혜는 얼마나 탁월하겠습니까? 지혜로운 원로들은 아직 젊고 패기가 넘치는 르호보암에게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게 되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라고 권면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 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역설적 진리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보이는 대로, 그리고 마음에 갖고 있는 욕심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 하고, 더 높은 곳에 앉고 싶어 하고, 더 대접 받고, 더 섬김 받고, 더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섬기는 사람이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4장 11절에서도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어디 가든 자꾸 대접 받을 생각만 하지 마세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낮은 자리에서 자꾸 섬기게 되면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 점점 더 귀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게 된다는 역설적 진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이 높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더 모았을 수도 있고,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신하였던 원로들은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에게 이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겸손할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아첨꾼들의 말에 귀가 닫히게 되어 꼭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할 가르침들을 놓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필리핀 본섬인 루손에서부터 남쪽의 민다나오 섬에까지 한인교회 목회를 하고 계시는 [필리핀한인교회협의회] 목사님들과 함께하는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민다나오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어떤 젊은 목사님과 교제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 분은 8년 전에 필리핀에 오셨는데, 이번에 필리핀한인교회협의회 회원으로 가입하셨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교만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이 젊을 때부터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슈퍼스타급 청소년 사역자와 함께 사역을 했었기 때문에 자신이 좀 교만했었던 거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사실 그 목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에도 필리핀에서 20년, 30년 목회하신 훌륭하신 분들의 간증을 듣는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그 목사님들의 수고와 애씀과 사역에 감탄하고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 얘기를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이 늘 옳고, 자기가 잘 났고, 자기가 더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지, 잘 안 듣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만약 귀를 막고 있다면 교만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려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누가 말하든, 모든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무슨 말이 들리든 그것을 듣되 잘 분별해야 하는 분별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거짓된 말들에 넘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말을 즐기는 사람의 말은 너무 마음에 새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르호보암에게 충고했던 솔로몬 왕의 원로 신하들의 말과 같은 말에 르호보암은 귀를 기울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원로들의 말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10절, 11절을 보시면,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신하들은 ‘백성들은 왕이 젊다고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왕이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왕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더 무섭게 말씀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자문을 버리고, 젊은 신하들의 자문을 따라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그대로 말하게 됩니다.

 

16절 말씀을 보시면,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호보암의 대관식을 거부한 겁니다. 백성들은 르호보암의 신하 하나를 돌로 쳐 죽이게 되고, 르호보암은 마차를 타고 급히 예루살렘으로 도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쪽의 10개 지파가 반란의 중심에 있었던 여로보암을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게 되고, 남쪽의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으면서 남유다왕국으로 분열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만약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말을 들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신하들은 르호보암의 마음이 원하던 얘기를 해줬던 겁니다. 르호보암 입장에서도 ‘내가 왕인데 감히? 어쩌구 어째?’이런 감정으로 반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로들의 말은 귀에 안 들어왔습니다. 내가 왕인데, 백성들이 나를 섬겨야지 내가 백성을 섬기다니? 기분도 나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신하들은 르호보암의 맘에 쏙 드는 그런 말을 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자문에 마음이 기울었던 것이고, 르호보암은 포악하게 백성들을 향해 말했고, 그 순간 통일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들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늘 이용만 하려고 하는 거지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말을 해 주면 목사님이 설교를 잘 하는 것이고, 내가 불편한 말을 해 주는 목사님은 설교를 잘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너가 듣고 싶은 것만 들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든, 그렇지 않은 말이든 그것이 성경 말씀이라면 그 모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서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요한계시록 22장 19절에서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이든 더하거나 빼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진정한 신앙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내가 듣기 싫은 말씀을 빼버리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운 말씀이지만,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가짜 신앙인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마지막으로 아브라함 링컨의 말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책이 없었으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은 결국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면서 벌어진 참극이었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되었고, 그 아들 르호보암 역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는 물었지만 정작 하나님께는 그 뜻을 묻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내가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닫아버렸던 르호보함 때에 왕국은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였다면 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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