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6~40>
– Acts(48) –
제가 대학 다닐 때, 저와 가장 친한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어느 날부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는 겁니다. 매일 4시간에서 6시간 이상 영어책을 붙들고 있더니 나중에는 영어를 꽤 하는 겁니다. 그 친구 보고 부러운 맘도 들고 해서 저 자신에 대해 푸념하듯 “나도 영어공부 해야 하는데…” 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영어 공부에 대한 진리 중에 진리 하나를 저에게 말해 줬습니다. “해야 하는데… 하지 말고, 너도 그냥 해~!” 맞는 말이죠? 그런데 아이러니 하나는 그렇게 영어 공부 열심히 했던 그 친구는 한국 지방도시에서 열심히 목회하고 있고, 저는 영어권인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참 깊고도 넓습니다.
일본의 도쿄와 미국의 뉴욕에서 공부한 치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이노우에 히로유키(井上裕之, 1963~ )’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해
그의 책『생각만 하는 사람, 생각을 실현하는 사람(북스넛, 2011)』의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뇌는 끊임없이 생각의 집을 짓고 부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생각의 집은 항상 완성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생각의 집은 설계도만으로 사라진다. 왜 우리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사람들의 생각의 집이 완성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늘 생각만 맴돌고 있는 것으로는 어떤 역사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말로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되어질 때, 그 작은 행동 하나, 그 작은 걸음 하나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절 말씀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분을 믿는 사람들은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은 그 믿음의 열매요, 증거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불순종하는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이고, 믿지 않기 때문에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명기 1:36절 말씀에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출애굽 1세대들은 모두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출애굽 1세대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었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순종했고, 순종한 그들은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실 축복을 기대합니다. 여러 간증자들의 축복을 부러워하고, 자신에게도 그런 하나님의 역사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과 그런 말들이 진정한 믿음의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런 역사는 결코 내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1.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라
바울 사도는 최초의 선교사로서 1차 선교여행을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그의 고향이었던 ‘다소’가 속한 터키를 중심으로 선교여행을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 지역이 바울이 이해하기 쉬운 동일 문화권과 언어권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선교의 이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2~3년 뒤인 제2차 선교여행 역시 1차 선교여행을 통해 세워진 각 지역의 교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믿음을 좀 더 견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떠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6절과 7절 말씀을 보시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 사도는 1차 선교여행을 통해 세워졌던 각 지역의 교회들과 성도들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더 이상 아시아(지금의 터키)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지역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 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사역하는 것을 막으셨기 때문에 거기서 동북쪽으로 올라가 지금의 흑해(Black Sea) 남부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역으로 어떻게든 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7절 하반절에서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바울은 ‘성령’과 ‘예수의 영’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깊은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하나 보였는데, 마게도냐(지금의 그리스) 사람 한 사람이 서서 바울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10절을 보시면,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그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를 아시아를 넘어 마게도냐로 이끄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게도냐는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복음이 아시아 중근동 지역에 전해졌고, 바울을 통해 그 복음이 유럽으로 전해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즉시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고 있는 장면입니다.
사실 바울은 오늘 날 터키의 ‘다소’ 출신입니다. 때문에 그 지방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그 지역에서 선교해도 분명 잘 해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어떻게든 그 지역과 문화권에 있으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 3:18,19절 말씀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의 생각의 깊이와 하나님의 뜻의 깊이와 너비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을 삶 속에서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도 종종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능력이 부족해 잘은 못했을 지라도 열심히는 했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족한 사람이 외국에까지 와서 이민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놀라울 뿐입니다.
여러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그런 기준으로 일을 결정하고, 그런 기준으로 거주지를 결정합니다.
세상에서는 무조건 다섯 달란트 주는 곳에, 연봉 많이 주는 곳에 있는 것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내게 맡기신 달란트가 한 달란트든, 두 달란트든, 다섯 달란트든… 주님께서 맡기신 것이 무엇이든 그 곳에서,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인 것입니다.
제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교(합동측) 교단 선교부에서는 마흔 살이 넘으면 선교사로 파송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교 나가서 언어와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데, 마흔이 넘어 타 문화권에 나가서 언어와 문화 적응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선교에 있어 좋은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40대 중반의 나이에 여기에 온 저 같은 경우는 한인교회개척을 위해 여기 와서 한인목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역에 있어 언어와 문화의 직접적인 큰 장애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인목회를 한다고 해서 여기서 한국 사람만 만나고, 한국어만 쓰며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젊을 때부터 선교사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저 같은 사람은 때로는 언어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부에 한인교회 개척을 위해서 주님께서 저를 이곳에 부르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능력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부족한 게 많을 지라도 그 부르심에 순종해서 이곳에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게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동일 문화권에 속한 터키(아시아) 권역에서 전도사역을 해도 그는 분명 잘해냈을 것입니다. 또 1차 선교여행 때에도 선교에 좋은 성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그 지역을 전도하길 원했습니다. 그 땅 만해도 사람도 많고, 너무나도 넓은 땅이었습니다. 터키는 783,562km²의 면적으로 우리 남한의 7~8배의 넓은 땅을 소유한 큰 나라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그 넓은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그 감동에 순종함으로 배를 타고 유럽의 관문인 마게도냐(그리스)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를 거쳐 후에 로마까지 들어가게 되고, 바울을 통해 유럽은 2천년 동안의 찬란한 기독교 역사가 꽃 피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바울의 그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은 복음화 되었고, 그 2천년의 기독교 유산은 전 세계로 흩어져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감동을 주실 때 순종하십시오. 우리의 계획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의 플랜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2. 시련이 와도 두려워 말라
11절부터 15절까지는 바울 전도단 일행이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해 전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루디아’라고 하는 여성 사업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유대교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에서 바울 사도가 전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자신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 모두도 예수를 믿기로 하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또한 바울 전도단 일행이 빌립보에 머무는 동안 그녀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헌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이렇게 좋은 일이 있었던 겁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교회로 사용하게 하고, 먹을 것을 대주는 그런 헌신적인 새신자를 얻었으니 바울 일행이 얼마나 보람 있고 기뻤겠습니까? 하지만 성령의 감동에 순종한다고 언제나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순종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시련과 고난의 시간들도 겪을 때가 있습니다.
16절부터 40절까지 그 특별한 사건이 나오는데,
먼저 16절을 보시면,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바울 일행이 기도하려고 기도처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는데, 무당 같은 사람으로 점을 잘 쳤던 거 같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여종을 통해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바울 일행을 보더니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여러 날을 그렇게 따라다니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 분위기와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말한다면 복음이 귀신의 영과 동급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 사도는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종이 정상인이 되었고, 더 이상 귀신을 통해 점을 치지 못했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들은 그녀를 통해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넘기며 그들에게 누명을 씌어 고발했습니다. 그 주인들의 지인들도 함께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습니다.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의 죄를 묻지도 않고, 정당한 재판과 법적인 절차도 밟지 않고 그들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많이 친 후에 피투성이가 된 그들의 발에 무거운 쇠스랑을 채워 빛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깊은 밤이 되어 바울과 실라는 의식을 회복하고 그 감옥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감옥의 문이 다 열리고, 모든 묶인 것들이 풀려졌습니다.
죄수들을 지키던 간수는 지진으로 인해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죄수가 도망했을 때 간수는 그 일에 대한 책임으로 심한 매를 맞고 대신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수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크게 소리 질러서 그의 자살을 막았고, 그런 초자연적인 사건 앞에서 간수는 바울이 전한 복음에 관심을 나타내면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여기서 31절의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 일을 통해 간수와 그 가족들 모두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큰 시련이 온 겁니다. 바울과 실라가 겪은 고초를 간단히 말씀드렸지만, 복음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겪은 일은 얼마나 무시무시했겠습니까? 바울은 1차 선교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잠시 목숨이 끊어지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평탄하고 형통하고 아무 걱정 근심이 없어야 할 거 같은데, 때로는 시련과 환난의 한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련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 것은 거기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비록 많은 매를 맞고 깊은 옥에 갇혔지만 그 일을 통해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리고 우리교회에게도 이 사도행전 16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첫 예배를 저희 집 거실에서 시작했는데, 그 때까지 여기저기 상가를 다녀보면서 교회 예배 공간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이라 상가 임대료가 저렴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도 비쌌습니다. 그래서 자꾸 저렴하고, 주차공간도 없고, 지저분하고 우중충한 건물들만 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낙심이 되던 차에 지금 있는 건물을 보니, 한인들이 오기에 입지 조건도 좋고, 주차 공간도 넉넉하고… 여러 가지로 좋았는데 딱 하나 매월 임대료가 그 전에 보던 곳들보다 2~3만 페소 이상이 더 비쌌던 겁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것보다 비싸서 마음이 좀 낙심이 되었습니다.
집에 가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에게 이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보여주시면서 ‘복음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기도처소가 필요하고, 예배처소가 필요하고,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올 교회가 필요한데 그 복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계약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는 제가 이 지역을 전혀 몰랐었는데, 성령께서 무지한 저를 깨우쳐서 가장 좋은 위치에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해도 때로는 여러 가지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더 선한 뜻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순종의 열매를 거두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그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믿지 못해 순종하지 않으면, 순종의 열매를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40절 말씀을 보시면,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지난 밤 큰 지진으로 놀란 관리들과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풀어주도록 했고,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이 터키에서 전도사역을 했어도 잘 해냈을 겁니다. 하지만 바울을 유럽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해 마게도냐로 보냈고, 바울은 거기서 루디아와 같은 헌신된 새신자를 얻게 되고, 간수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리고 40절 말씀에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했다는 표현을 보면,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구원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큰 시련이 있었지만 그 시련을 통해 빌립보 교회가 탄생하게 되고, 더 나아가 유럽 선교의 문이 열려 장차 유럽이 복음화 되어 유럽의 2천년 역사가 기독교 역사와 유산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바울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 일인 것입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 한 가지를 소개하고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국의 정신 보건 사회복지사였다가 전업주부가 된 ‘준 로스’는 2004년 청소기로 집에서 카펫 청소를 하다가 예기치 못한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뚜렷한 음성으로 청소 중이던 그녀에게
“내가 너에게 만나를 먹이리라”
하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셨듯이 그녀를 통해 영국의 굶주린 이들에게 만나가 공급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그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하고, 그 일을 위해 기도를 시작한 3주 후에 생생한 꿈을 꾸게 됩니다. 많은 음식들이 그녀의 손을 통해 흘러 나가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소매업자들에게 잘 팔리지 않는 남은 음식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 물어봤는데, 그걸 다 버린다는 겁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이 수거하기로 하고, 봉사자를 모집하고, 먹을 것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소문을 듣고 그녀의 집에 수천 명이 몰려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매달 2만 5천 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질의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 여왕은 그녀에게 ‘자원봉사상’을 주었고, 영국 봉사 단체에 주는 최고의 상인 ‘MBE 훈장’까지 수여했습니다.
그녀가 인터뷰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분의 일을 우리가 이해 못 할 때도 그 분에게는 이루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주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