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1~12>
저는 항상 가방을 들고 다닙니다. 그 가방 안에는 일상 속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휴대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 가방 안에는 제가 평상시에 쓰고 다니는 안경 외에 두 개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위도 상 적도에 위치한 필리핀의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입니다. 한국에서는 잘 쓰지도 않았었는데 여기선 거의 매일 쓰고 다니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책을 볼 때라든지, 설교 원고 준비를 위해서 컴퓨터 모니터를 볼 때 쓰는 근거리용 안경입니다. 저는 불편하지만 안경 3개를 항상 휴대하고 다닙니다.
이 세 개의 안경은 각각 용도가 다릅니다. 컴퓨터로 설교원고를 작성할 때는 거기에 맞는 안경을 써야 하고, 강단에 설 때라든지 심방을 갈 때라든지 일상생활을 할 때 써야 할 안경이 있고, 외출 시에는 선글라스가 필요합니다. 각 용도에 맞게 그 중 하나라도 없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평상시 시력이 –3.0, -3.5에, 노안이 온지 이미 오래 됐고, 거기에 난시까지 있다 보니 저에게 각 용도에 맞는 안경은 필수품 중의 필수품입니다. 그래서 안경이 없으면 저는 사람도, 사물도, 글도 선명하게 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안경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저의 눈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가 예수를 믿으면서 갖게 된 또 다른 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믿음의 눈’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육신의 눈으로 현상만을 보고 그 현실의 상황에 따라 불안해하거나 안정감을 갖거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눈을 갖게 된 이후부터는 내 눈 앞에 있는 현상만을 보지 않고, 그 현상 너머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현상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현실 너머 더 나은 하나님의 플랜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의 많은 믿음의 조상들 역시 믿음의 눈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눈앞에 있는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현실 앞에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분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적인 눈으로는 앞이 막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십시오.
3절을 보시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세상의 눈에 보여 지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믿는 사람은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재료가 아닌 오직 말씀만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데, 성경 속에 있는 다른 역사들을 못 믿을 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부터 12절까지는 믿음의 눈을 갖고 있었던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담의 아들 아벨이 형인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에 보니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믿었겠습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하나님 앞에서, 그 하나님을 위해서 드린 제사였기 때문에 더 나은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에녹은 어떻게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언제나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5절).
노아는 어떻게 120년 동안 묵묵하게 방주를 준비할 수 있었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고, 그 분의 말씀을 믿었기에 세상을 구원할 방주를 예비했던 것입니다(7절).
아브라함이 어떻게 순종함으로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 분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8~10절).
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나이에 어떻게 임신할 수 있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으나 자신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1~12절).
이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믿음의 눈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 앞에 있는 현실에 낙심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새로운 믿음의 건물을 세우십시오. 믿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