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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Athens)”

<사도행전 17:16~34>

– Acts(50) –

 

 

여분들은 고대 국가 중에 ‘그리스(혹은 헬라)’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요?

 

 

저에게 떠오르는 것들을 그림으로 한 번 보여드리자면 이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스 혹은 헬라하면 저는 ‘알렉산더 대왕’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3년 만에 그리스 안에 있는 도시국가들을 하나의 그리스로 통일하고, 그리스로부터 시작해서 터어키와 시리아와 남쪽의 이집트와 동쪽의 인도 서북부까지(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걸친) 세계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은 왕위에 오른 지 13년이 되는 33세에 열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정복한 나라마다 사람들에게 헬라어를 가르치고, 발전된 헬라의 문화와 예술을 심어 놓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 전 세계 70여 개국의 공용어인 영어는 헬라어와 라틴어가 기본어근인 경우가 많습니다. 알렉산더가 이룩한 헬라제국을 후에 로마가 정복했지만, 로마는 모든 사람들에게 헬라어를 쓰도록 했고, 로마의 지도층 사람들은 모국어인 라틴어뿐만 아니라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헬라의 문화예술은 인도의 서북부를 정복하면서 불교미술(간다라 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지금의 부처상과 같은 모습이 헬라의 조각상하고 비슷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헬라는 철학의 진원지이고,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의 거장들이 난 곳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 아리스토텔레스인 것입니다. 이런 철학자들을 통해서 민주주의 정치가 발전하고, 그나마 지금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를 민주주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가 많은데, 이것이 헬라의 철학자들을 통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역시 고대그리스의 도시국가들 간의 운동시합이 기원이 되어,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열렸던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하면 ‘그리스 신화’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절대자와 신에 대한 종교성이 많았던 민족이었던 거 같습니다.

어쨌든 그리스에서 시작된 ‘헬레니즘 문명’은 고대 서구사회의 형성과 발전뿐만 아니라, 오늘날 까지도 전 세계의 문화, 예술, 정치, 철학, 언어 등등 대단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헬라)의 중심도시가 바로 오늘 본문의 ‘아덴(Athens, 아테네)’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 최고의 도시에 살고 있었던 아덴 사람들의 자부심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자신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있고, 땅 끝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식이 있고, 자신들은 세계 최고의 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없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아직 복음이 없었습니다.

 

1. 내가 만든 신

바울 사도는 지금의 터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건너편 마게도냐로 건너가 여러 도시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헬라의 중심도시인 아덴(아테네)이란 도시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16절 말씀을 보시면,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바울은 그 아덴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아테네의 중심에는 지금부터 2500년 전에 건축된 ‘파르테논 신전’이 여전히 굳게 세워져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건축물로서, 예술적으로도 위대한 기념물로 평가되고 있는 건물이지만,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아테네의 신전인 것입니다. 저 높은 언덕 위의 바위를 평평하게 깍아서 그 위에 저런 웅장한 석조건물을 지었다는 것이 지금 봐도 놀라울 뿐입니다.

이게 왕궁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웅장하게 건축했다면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숭배되었던 아테나 여신의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테나 여신은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딸로서 지혜의 여신이라고 합니다.

 

 

한 때 초등학생을 둔 엄마들 사이에서 ‘그리스 신화’를 자녀들에게 꼭 읽혀야 한다는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는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필독서로 읽을 만큼 유익한 책이 못됩니다. 『그리스 귀신 죽이기(생각의 나무)』라는 책을 펴낸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그리스 신화는 여러모로 유해하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종류만도 76명이나 되는데, 한국의 막장 드라마도 그렇게까지는 안 만든다는 겁니다. 신이라는 존재들이 매우 사악하기도 하고, 음탕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는 얼짱에 몸짱에 한 번 보면 반하기도 하고, 형제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기도 하고, 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기도 하고, 신들의 세계에 불륜과 폐륜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야기가 그리스신화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이런 신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떤 가치들을 갖겠습니까? 그런 범죄들이 아무렇지도 않고, 정당화되기도 하고, 미화되기도 하는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악영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는 말하기를 “그리스 신들이 인간과 같은 존재이고 음모, 계략, 살인, 절도 등 범죄와 폭력을 일삼는 부도덕한 존재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을 신화를 통해 표출했고, 그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거나, 그런 범죄를 합리화, 정당화하기도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그리스의 신들이 얼마나 악하며 얼마나 음란했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며 바울 사도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대 아테네는 대단히 발전된 문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철학과 문학과 예술과 정치와 언어 등등 정말 모든 영역에서 당대 어떤 민족과 나라보다 뛰어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갈망하는 것을 위해) 신들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보시면,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절도 보시면,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사람은 자신들이 원하는 신을 만들거나, 그 신의 신전을 만들거나, 그 신의 모습을 꾸미거나 하는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건축물에 계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도 아니고, 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연약한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나름 똑똑했습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문명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신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내가 원하는 신을 만들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나님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신앙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인 성경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꾸려 하면 안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신화 속에 갇혀 지내면 안 됩니다. 이제 내가 만든 신을 버리고, 우리 영혼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 가까이 계신 하나님

바울은 아덴 사람들을 보면서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22절)”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로 종교심이 많았냐면, 그리스 신화에도 이미 76개의 신이 존재하는데,

 

23절을 보시면,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미와 사랑의 여신, 바다의 신, 땅의 신, 불의 신, 지혜의 신, 사랑의 신, 술의 신, 태양의 신, 농사의 신, 싸움의 신, 번식의 신, 부의 신… 등등 수많은 신상들을 세워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도 분명 무슨 신이 있을 거 같은 겁니다. 그래서 어떤 신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막상 신상을 만들어 놨지만 신의 이름을 모르겠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 넣은 겁니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인데, 보시는 사진은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64m²(19.3평) 정도 되는 아담한 아파트의 거실입니다. 주거 면적이 적더라도 뭔가 깔끔하고 시원해 보이죠? 그런데 이 집 거실하고, 우리 집 거실하고 차이가 무엇인거 같아요? 왜 우리 집 거실은 뭔가 복잡하고 지저분한 거 같고 예뻐 보이지가 않죠?

이런 집은 처음 인테리어 할 때부터 천정부터 바닥까지 그리고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컨셉으로 조화롭게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예뻐 보이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 동안 쓰던 가구들 갖고 들어가서 수납장이 부족하면 예쁜 거 하나 사다가 놓고, 식탁이 오래되었으면 또 예쁜 거 하나 사다 놓고, 소파가 낡아 바꿀 때가 되면 예쁜 소파 하나 거실에 놔두는데… 전체적으로는 뭔가 안 어울리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부족해 보이고, 안 예쁘니깐 자꾸 뭘 하나씩 하나씩 사다가 놔둬보는 겁니다. 그런데 계속 안 예쁜 겁니다.

아덴 사람들, 그리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 신들을 계속 만들었겠습니까? 그 신 하나로는 부족한 겁니다. 부족하니깐 또 다른 신이 필요하고, 또 다른 신이 필요하고, 그렇게 수십 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명패를 붙여 놓을 만큼 그들은 거기에서 계속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툴리안 차비진’이 쓴 『JESUS ALL(예수로 충분합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우리에게 다른 신들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아덴의 그리스 사람들과 같이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꼭 우상의 신상이 아니더라도, 큰 성공을 해 보면 만족을 얻을 거 같기도 하고, 큰돈을 벌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 좋을 거 같고, 친구가 많으면, 유명해지면, 몸짱이 되거나 얼굴이 더 예뻐지면 만족스러울 거 같은 겁니다.

필리핀에서 살던 분들도 선진국에 나가면 더 만족스러울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분명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은 채워지지 않는 깨진 독과 같습니다. 그것이 나를 만족시켜 줄 우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절대 온전한 만족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27절 말씀을 보시면,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르면 대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으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께로 돌아가면 주님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뻗으면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암울한 현실 속에도 주님은 함께하실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여러분의 손을 잡고 우리를 도울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아테네 사람들과 같이 헛된 것을 찾으며 시간을 낭비하며 방황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 앞에, 우리 옆에, 우리 뒤에 그리고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도움과 구원의 손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3. 교만이라는 장애물

바울 사도는 아덴의 철학자들 앞에서, 뛰어난 석학들 앞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논리와 지식으로 복음의 진리를 선명하게 전했습니다.

 

32절을 보시면,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4절에 보면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라는 기록이 있는데, 바울 사도의 아덴에서의 전도 사역은 큰 열매가 없었습니다. 보통 바울의 전도사역에 큰 역사가 나타났을 때는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든지, 사역자를 세워둔다든지… 이런 기록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데 아덴에서는 그런 기록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몇몇의 사람들만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기록뿐입니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이 구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바울의 복음을 조롱하며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바울의 전도가 부족했을까요? 아니면 그의 말에 힘이 없었을까요?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바울은 불신자들이 이해하기 가장 좋은 문장과 내용을 갖고 그들에게 접근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 역시 최고의 학문을 했던 사람이었고, 아람어뿐만 아니라 헬라어까지 능통하게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철학자들과 논쟁을 펼쳐도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8절에 보면 헬라의 문학가의 표현을 인용하면서까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바울 사도는 헬라의 문학까지 깊이 섭렵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당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학식을 쌓은 사람이고, 유대인의 율법에도 정통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헬라의 철학자 이상으로 깊은 철학과 사고의 깊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베이스 위에 복음을 녹여서 전도했으니 바울의 설교와 복음은 얼마나 대단했던 거였겠습니까?

그러나 아덴 사람들이 복음에 굴복하지 않은 것은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교만이라는 장애물이 구원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선진 문명 속에 있었고, 그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철학자들이 있었고, 세계 최고의 예술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민족, 어느 백성들보다도 더 깊은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14절에 보시면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가 교만하면 믿음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교만이라는 장애물에 늘 걸려서 그 이상 영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었습니다. 때문에 멀리 팔레스틴에서 온 사도 바울을 우습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독교 변증가요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인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만은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불치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언제 우리 안에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똑똑합니까? 우리가 얼마나 잘났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고 잘났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먼지와 같고, 벌레와 같이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교만이라는 장애물이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모든 교만의 장애물을 거두어 버리시고, 겸손하게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아멘으로 순종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쉬넬’이란 사람의 교만에 관한 깨달음을 읽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교만은 작은 자들에게 주는 마귀의 선물이다. 깃발이 높을수록 요동이 강하고 탑이 높을수록 무너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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