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고난 앞에서…”

<열왕기상 17:17~24> 
– 열왕기상(32) –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아주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과 수탈의 대상이었습니다. 거리상 가까운 나라 일본은 과거 35년간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었고, 그런 역사로 인해서 늘 한국을 일본 아래에 있는 미개한 나라쯤으로 보며 무시하는 극우파들이 아직까지 꽤 많습니다.

한반도는 북쪽으로는 세계최대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 있고, 북동쪽에는 세계 최대영토를 자랑하는 러시아가 있고, 남동쪽으로는 세계경제강국 중 하나인 일본이 호시탐탐 한국을 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38선 넘어 북한은 핵무기를 통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고, 필리핀을 포함해 전 세계인들로부터 동정의 대상이었고, 구제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우리나라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세계 3대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앞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는 것은 한반도의 통일국가 일 것이다”라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글로벌 파이어 파워(www.globalfirepower.com)’에서 발표한 [2019 세계 군사력 순위]에 보시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열강들의 군사력은 모두 10위권 안에 있었습니다. 미국에 이어 러시아가 2위, 중국이 3위 그리고 일본이 6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7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북한은 세계 17위입니다. 전쟁 후 반세기만에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와 군사와 정치, 외교, 문화, 예술, 스포츠 등등 모든 영역에서 무서운 성장 속도에 놀란 일본은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세계 반도체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 일본에서 대부분 수입해다 쓰는 핵심소재(고순도 액체 불화수소)의 수입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최악에는 한국의 반도체 시장의 조업 중단까지 갈 뻔했지만, 이게 도리어 약이 되고,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어서 일본에 의존하던 그 핵심소재들을 빠르게 국산화하고 있어, 생산에 큰 차질이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리적으로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외세의 많은 침략과 수탈을 당해왔지만,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점점 더 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경제 성장을 위해 싸워왔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이상 침략 당하지 않도록 막강한 군사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고난은 가면을 쓴 커다란 행운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주변 열강들에 비해서 땅도 좁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없어 주변 열강들에게 늘 얻어터지고 뺏기고 당하기만 하면서 살아왔지만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것은 가면을 쓴 커다란 행운이며, 가면을 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2절~4절을 보시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여러 가지 고난과 시험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고난과 시험과 시련이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점점 더 온전해져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은 모두 온전해진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당할 수 있지만, 그 고난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 고난 속에서 원망과 불평과 비관적으로 비뚤어진 불행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1. 고난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자연의 질서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은 일하시고 개입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 속에 어떤 고난이 있다면, 그 고난 속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의 철저한 우상숭배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왕비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었습니다. 아버지 엣바알 아래에서 철저한 우상숭배 교육을 받고 자란 이세벨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결혼하면서 북이스라엘에 바알 우상을 들여와 온 나라를 바알숭배 국가로 만들어 버립니다.

 

신명기 28:23절, 24절에서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때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지라도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되고,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 즉 점점 사막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이미 하셨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그 저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고난이 죄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의인의 연단과 시련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난은 죄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극심한 가뭄 중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바알 숭배의 왕국인 시돈 땅의 사르밧 지역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먹을 것이 없어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빵을 해 먹고 어린 아들과 함께 죽으려 하는 한 과부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엘리야는 그 여인이 그 기근 내내 먹고 살아남을 수 있는 양식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그 기근의 땅에서 그 여인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인은 엘리야가 머물 2층 다락방을 내어주고 엘리야는 당분간 그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17절 말씀을 보시면,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그 과부 여인에게 그 어린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며, 그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 어린 아들로 인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 힘겨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느 날 병들어 앓더니 숨이 끊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18절을 보시면,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여인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자기 집에 들어와 계신데, 그로 인해 자기의 죄 때문에 자기 아들이 죽은 거 같기도 하고, 자기는 나름대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잘 모셨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자기 자신도 원망스럽고, 엘리야 선지자에게도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저 같은 목회자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일이 잘 되고, 좋은 일이 있고, 믿음이 잘 성장되는 그런 모습과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거기에 얼마나 큰 기쁨과 감사가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섬기시는 성도들 중에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것이 꼭 제 탓인 것만 같은 겁니다. 교회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생기면 그 역시도 제가 부덕해서 생긴 일인 거 같고, 제 기도가 부족한 것 같고, 제가 여러 가지로 무능력한 거 같다고 자책감에 젖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정말 일희일비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을 때, 그 고난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 만약 그 고난이 나의 죄 문제 때문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를 끊어버리고 철저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가야 할 것입니다.

– 어떤 고난은 내게 연단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서 나를 훈련하시고, 나를 더 단단하게 하시고, 나를 더 새롭게 하시고, 나를 더 성숙하게 하시려고 하시는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이 내게 부족하기 때문에 나의 인격과 신앙과 인생 속에 그 부분의 능력을 키워주시려고 고난과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훈련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피하면 안 됩니다. 도망가면 안 됩니다. 그건 그 고난을 피하는 쉬운 방법이지만, 그는 평생 그와 비슷한 일들을 만나면 도망 다니다 인생 끝날 겁니다. 그런 시련이 왔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철저하게 훈련받고 연단 받아 이전 보다 더 성숙해지고 더 강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 또 어떤 고난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보여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려고 주시는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련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홍해 앞에 있을 때, 요단 강 앞에 있을 때, 여리고 성 앞에 있을 때, 또는 거인 골리앗 앞에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두렵고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시련과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역사도 크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최초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죽은 자를 살리는 최초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이 사건을 통해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2. 기도로 고난을 돌파하라

여인의 아픔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그 집에 머물고 있었던 엘리야 선지자도 그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목사님이 가게 다녀가시고 난 뒤 그 날 매출이 대박이었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저 역시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목사님 다녀가신 후 더 안 좋은 일이 생겼어요’ 물론 저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그 성도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고, 힘든 일이 생기면 저 역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엘리야도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역사는 성경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어떻게 기대조차 할 수 있겠습니까? 엘리야는 그 죽은 어린 아들을 달라고 해서 엘리야가 늘 기도하고 말씀 연구하던 2층 다락방 자기 숙소로 안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자기 침대에 눕혔습니다.

 

20절을 보시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런 고난 앞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우상의 도시 사르밧 지역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하나님을 섬기게 된 여인이었고, 엘리야 선지자의 첫 전도열매일지도 모를 그 여인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야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20절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21절을 보시면,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그런데 엘리야가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렸다고 되어 있는데,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 성경이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세 번 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쓰는 완전수 중에 하나이기도 한데, 문자 그대로 3번 일수도 있고 아니면 이루어질 때까지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엘리야는 역사상 처음으로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는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수천 년 역사 속에 그때까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중에 건져주시고, 병든 자를 살려주시는 것까지야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믿는 만큼 기도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믿으니깐 그런 기도는 많이 드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예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는 사람이 기도 조차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여러분의 능력이 안 되고, 여러분에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믿음의 기도자는 한계를 넘기 시작합니다. 자기에게 자본이 없어도, 자기 능력이 안 되고, 자기 실력이 없어도… 생각의 한계를 넘고, 능력의 한계를 넘고, 물질의 한계를 넘어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내가 하지만,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신다 하신 것입니다. 안 될 것 같은 일도 되는 겁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20절에서 엘리야가 부르짖어 기도하죠. 또 21절에서도 엘리야는 계속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죠.

 

그리고 2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기도자는 때로는 막무가내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내가 될 거다. 안 될 거다.를 판단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일이고,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죽은 아이를 살려달라는 말도 안 되는 최초의 기도를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역사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도를 드리는 또 다른 최초의 사람이 되십시오. 지금 우리의 아이를 보면 그 아이에게 큰 기대가 안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내 형편을 보면 이 땅에서 과연 내가 큰 축복자가 될 수 있을지가 의문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이 매주 여기저기 크게 성공한 사람들 얘기도 해 주고, 여러 믿음의 사람들의 얘기도 해 주고, 성경 속의 기적도 말하지만 그게 남의 얘기로만 들리면 안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말도 안 되는 최초의 기도를 드리는 이 시대의 엘리야가 되십시오.

종교개혁자 존 칼빈(Jean Calvin, 1509~1564)은

“기도는 우리가 믿음으로 발견한 주님의 복음에 들어있는 보물을 파 내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든 기도하는 그 사람이 그 밭에 있는 보물을 파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로 그 고난을 돌파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 속에 있는 모든 고난은 기도로 돌파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쉬지 마십시오. 기도로 역사를 만들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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