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시련의 날 비상(飛上)하라”

<마가복음 6:30~44> 

– 40일 금식 특별새벽기도회(13) –

 

 

 

이순신 장군과 유관순 열사 그리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수상은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영국의 대표적인 위인들입니다.

– 이순신 장군(1545~1598)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중에 일본군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켰습니다.

– 유관순 열사(1902~1920)는 미국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 장학생으로 다니던 열일곱의 어린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3·1만세 운동을 주도적으로 하다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의 불길은 더 커졌던 것입니다.

– 미국의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노예 해방 문제로 미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를 해방시키고, 오늘날의 미합중국의 기초를 놓은 인물인 것입니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영국의 정치인은 누가 뭐라 해도 ‘윈스터 처칠(Sir. Winston Churchill, 1874~1965)’경입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군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냈고, 2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위대한 인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은 모두 국가와 민족의 큰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한 인물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세에 영웅이 난다’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 이들은 혼란한 시기 어쩌면 큰 시련과 고난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시련의 날들이 이들을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혼란한 시대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범한 삶으로 생을 마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날들을 통해 그들은 민족과 나라를 구원하는 인물이 되었고, 그로 인해 위대한 영웅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1. 비상(非常)이 비상(飛上)이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 주변의 어촌마을들을 중심으로 다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함께 수고하고 애쓴 사도들을 잠시 쉬게 하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로 이동하셨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디로 갈지를 미리 예상하고 갈릴리 호수를 둘러 육로로 먼저 달려 그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불쌍히 여기셔서 여러 가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35절을 보시면,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그런데 그 말씀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들은 해가 저물어 가는 줄도 모르고 예수님의 설교말씀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사역과 전도사역을 돕던 스텝들인 열두제자들은 ‘이제 저녁이 되었으니 무리들을 보내어 각자 식사도 해결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예수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돕던 스텝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빈들에 모여 있는 사람은 무려 남자만 5천명이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많은 인원이 아니었습니다. 그 남자들을 따라 함께 온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족히 1만 명 이상 되었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 엄청난 인원들이 있는데, 지금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져가고 있고, 다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있는 상태였고, 그렇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스텝들 입장에서는 비상 상황인 것입니다.

 

 

‘비상(非常)’이란 말의 한자어는 ‘아닐 비(非)’자에 ‘항상 상(常)’자를 쓰고 있어서 ‘뜻밖의 긴급 사태’를 말합니다. 지금 제자들의 상황이 비상사태인 것입니다.

어쩌면 요즘 우리가 비상사태 속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어제 주일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토요일 날 늘 그랬던 것처럼 주보를 만들고, 오후에 주일1부 찬양팀, 2부 찬양팀 연습을 하고, 코로나19를 대비해 오늘 주일예배를 오프라인과 온라인예배를 함께 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간단히 웹캠을 사다 설치하고 테스트하고…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일단 이정도로 만족하고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님이 ‘목사님, 내일(3월22일, 주일)부터 청소년들 24시간 외출금지라는데요?’ 이건 또 뭔 일인가? 하고 자세히 물어보니 코로나확산을 막기 위해 앞으로 65세 노인들과 청소년들은 24시간 내내 집 밖을 나오지 말라는 세부도의 긴급행정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찬양팀과 방송팀에 우리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이 아이들이 못 나오면 어쩌나? 주일9시에 진행되는 청소년 예배는 어쩌나? 토요일 이 저녁에 갑자기 결정된 이 사항을 어떻게 전달해 줘야 하나…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우리 집사님이 ‘목사님, 3월20일부터 세부시 모든 종교집회 금지라는데요?’ 그러는 겁니다. 세부주지사와 종교지도자들이 지난 17일 모임을 갖고 코로나확산방지를 위해 모든 교회와 성당들이 예배와 미사 등의 대중 집회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인교회였기 때문에 그 소식을 미처 못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오늘 있을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인데, 이 명령을 따라야 할지 아니면 오늘 예배만 오프라인으로 드리고, 다음 주부터 그렇게 해야 할지… 만약 예배드리는 중에 누가 신고라도 해서 필리핀 경찰들이 들이 닥쳐서 성도들이 은혜 받으러 왔다가 불안한 마음만 앉고 돌아간다면 그것도 참 은혜롭지 않은 거였습니다. 어제 저녁 8시 통금시간은 점점 가까워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고 하얗게 되었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고, 단톡방에 있는 성도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 외의 성도들 혹은 매주 처음 오는 방문자들이 많은 교회의 특성상 그 분들은 오셨다가 헛걸음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어쨌든 필리핀 보건당국과 행정부의 명령에는 교회의 덕을 위해 그리고 코로나확산 방지를 위해서도 우리가 그 방침은 따라야 하고, 그렇게 해야 된다고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단톡방과 청소년 단톡방과 찬양팀과 스텝들에게 따로 공지도 하고, 온라인예배가 차질이 없도록 우리 집사님에게도 준비를 시키고, 급히 예배공지사항을 만들어 홈페이지와 네이버카페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등에 문서를 올리고, 우리교회 단톡방에 참여하지 못한 성도들에게도 따로 연락을 하고… 우리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많이 당황스럽고 머리가 정리가 잘 안되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저에게는 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긴급한 사태를 말하는 비상이란 말도 있지만, 같은 소리의 ‘비상(飛上)’이란 말도 있습니다. 한자로 ‘날 비(飛)’자에 ‘위 상(上)’자를 쓰고 있습니다. ‘하늘로 날아오름’이란 뜻입니다.

이것을 말놀이(Word Play)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 비상은 당황스럽고,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고, 큰 일이 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 비상사태는 하늘로 날아올 수 있는 비상(飛上) 즉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방송팀 집사님하고 늘 얘기 했던 게 앞으로 예배와 설교 영상 서비스도 해야 하는데, 일단 섬길 스텝도 부족하고 장비도 부족하고, 기술도 부족해서 계속 미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이 비상사태에 영상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미비된 부분들이 있지만 어쨌든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어제 페이스북으로 접속해서 라이브방송을 테스트 했었는데 시험방송이고, 컨텐츠도 제대로 된 게 없는 영상인데도 많은 분들이 우리 방송을 보시는 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교회에 이 부분이 활성화되도록 이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상사태가 우리교회가 새롭게 비상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지금 세부에 살고 계신 분들은 비상사태 속에 있습니다. 모두들 처음 겪는 일들이라 많은 분들이 불안해하고 당황하고 허둥대는 거 같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번 일로 인해 사업장도 정리하고, 집도 정리하고, 여기 생활 다 정리하시고 한국에 들어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요즘 교민 단톡방에는 페소를 판다는 분, 살림살이 정리하는 분, 자동차 판다는 분, 사업장 넘기시겠다는 분…이 어떤 때보다 많이 있습니다. 이 비상시기에 여기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라고 판단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 앞에 때로 여러 가지 비상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비상 상황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오늘 본문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날이 저물고, 먹을 것이 없는 1만 여명의 굶주린 사람들 가운데 나타났던 기적이었습니다. 뜻밖의 긴급사태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상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 속에 찾아온 비상 상황이 여러분이 새롭게 날아오르는 비상이 되길 축복합니다.

 

2. 기적은 계산으로 되지 않는다

큰 행사를 치르며 예수님을 보좌하던 스텝들인 제자들 입장에서는 비상 상황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36절입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제자들의 말이 어쩌면 가장 합리적이고, 옳은 판단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대안을 들으시고 뭐라 하셨나요?

 

37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예수님은 참 현실감각이 없는 분처럼 보입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평행본문인 요한복음 6장7절에 의하면 제자들 중에 빌립은 계산이 빨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각 사람에게 조금씩 먹을 것을 준다고 해도 약 200데나리온 어치의 빵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면 200데나리온은 200일치의 일당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 원 정도 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8시간 일하면, 하루 8만원 그러면 1천6백만 원이 되는 거고, 그냥 하루 10만원이라고 하면 2천만 원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 빌립이 계산한 바로는 2천만 원도 부족할 듯싶다는 것입니다. 제자 빌립은 예수님께서 너무 하늘의 이야기만 하시니 현실감각이 없으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는 그럴 큰돈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빌립의 말과 계산이 현실적이고, 그게 현실이고, 그게 합리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사람은 절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 세부에서의 한인목회의 현실을 미리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면 저는 여기에 광명교회를 개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계산이 안 나오는 겁니다. 보세요. 제가 7년간 제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 얼마나 열심히 사역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2013년에는 큰 지진도 있었고, 필리핀 역사상 최대의 태풍 욜란다도 왔었습니다. 그 때 여기 교민 사회가 흔들흔들 했습니다.

이번 코로나사태는 2013년 태풍과 지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어려움입니다. 벌써 많은 교민들이 빠져나가고 있고, 이 사태가 마무리될 때 과연 여기에 얼마나 사람이 남아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교회에는 몇 명의 성도가 남아 있을까요? 2~3달 어학연수하고 가는 청년들, 영어 여름 캠프에만 교회를 가득 채우는 학생들, 년 중 석 달의 방학기간에는 한국에 집에 있는 성도들도 모두 돌아가고 저희 가정과 몇몇의 성도들과 함께 썰렁한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한국교회와 같이 재정구조가 튼튼한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영원히 살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미국이나 호주나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들이 대다수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저 같은 목사는 누구와 함께 사역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저 성도도 갈 사람이고, 저 성도도 언젠가 떠날 성도니깐 설렁설렁 대충 목회하자’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목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 밤이라도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오늘 하루 밖에 없는 것처럼 사역해야 하는 것이 주님의 종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여기는 한인사역이 쉽지 않아. 부흥하기 어려운 조건들만 갖추고 있어. 목회 잘 해놔도 늘 성도들이 떠나고, 여긴 너무 에너지를 쏟으면 안 돼…’ 이런 계산만 하고 있으면 제가 여기서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이 기적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계산하지 마십시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을 때 물리적으로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면 그는 물 위에 발을 못 올려놨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만 바라보고 그런 계산을 안 했기 때문에 물 위를 걸은 전무후무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 계산으로 되었겠습니까? 믿음으로 바다를 향해 손을 내밀고 기도했더니 홍해가 갈라졌던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갈 때 거인 골리앗과 자신의 피지컬을 비교해 보고, 무기 비교해 보고, 경력 비교해 보고… 그 계산만 하고 있었다면 결코 그 앞에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갔기 때문에 골리앗을 때려눕히고 민족을 구원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학력이 얼마나 되는지, 여러분의 자본이 얼마나 있는지, 여러분의 능력과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그런 거 계산만 하고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역사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거 계산할 시간에 무엇이든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명작을 쓴 독일의 철학가이며 작가인 ‘괴테(Johann W. Goethe, 1749~1832)’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엇이든 그것을 시작하라. 용기는 그 안에 천재성, 힘, 마술을 갖고 있다.”

내 손 위에 떡 다섯 개, 생선 두 마리 밖에 없을 지라도 그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놓고 기도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뿐이라고, 나는 이것 밖에 안 된다고,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계산을 끝낸 사람에게는 기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손에 오병이어 밖에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그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놓고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시작될 것입니다.

 

3. 누가 하늘의 문을 열 것인가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시고, 먼저 제자들에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떼를 지어 50명, 100명씩 앉히게 했습니다.

 

4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이 장면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물고기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는데, 마치 마술과 같이 예수님의 손에는 떡과 물고기가 또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제자에게 떼어 주고, 그런데 손에 또 있는 겁니다. 두 번째 제자에게 떼어 줬는데 또 예수님의 손에는 남아 있는 겁니다. 그렇게 열두 제자에게 모두 떼어 줬습니다. 그 이후에 더 놀라운 것은 제자들이 50명, 100명씩 앉은 5천명 혹은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떼어주고, 떼어주고, 떼어주는데 계속해서 제자들의 손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축하하셨다”라고 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하늘의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작년 9월부터 약 5~6개월 동안 호주에서 산불이 났었습니다. 무려 1만 1천여 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호주 전역을 태웠습니다.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죽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던 호주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은 인간의 힘으로 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이 어떻게 꺼졌는지 아세요? 지난 2월6일부터 호주 전역에 골고루 폭우가 쏟아졌는데, 이것을 통해 장장 6개월간 불타던 산불을 잡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에 질려있습니다. 유럽은 들불 번지듯이 확진환자가 늘어 마치 중세의 흑사병을 떠올리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하루에 수천 명씩 확진자가 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못 잡는 겁니다. 어쩌면 여기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 18절에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성경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 엘리야가 하늘의 문을 닫기도 하고 열기도 했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누군가를 통해서 하늘의 문이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19세기 위대한 전도자로 쓰임 받았던 왓슨(G.D. Watson, 1845~1924)은 이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세계를 움직이는 손을 움직이게 한다.”

 

왓슨 목사님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감사기도가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었습니다. 누가 하늘의 문을 열겠습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세계를 움직이는 손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계셨던 그 궁핍한 현장에서, 엘리야가 살았던 그 기근의 때에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계적인 대재앙의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련의 날 우리는 하늘의 문을 열고 비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엘리야와 같이 이 시련의 날에 하늘의 문을 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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