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다”

<창세기 37:18~20> 

 

 

[Audio 말씀]

 

 

지난 주간에 CBS(기독교방송)에서 『포스트 코로나, 흩어진 교인들 얼마나 돌아올까』라는 헤드라인으로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교회를 담임하는 저 같은 목회자들에게는 더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뉴스였습니다. 이 뉴스에는 “목회자들, ‘흩어진 교인 어떻게 다시 모을까’ 걱정…”이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 폐쇄, 예배 중단’이라는 한국전쟁이후 처음 겪는 일들에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 그리고 성도들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몇몇 교회들은 예배를 드렸지만 언론에서는 ‘예배 강행’이라는 말로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기에,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교회 역시 세부 지역의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서 지난 3월 22일부터 온라인예배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열악한 의료 환경 문제와 아이들 조기 방학과 겹쳐 대부분의 성도들도 한국으로 일찍 귀국했습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성도들도 자유롭게 교회를 오고가며 기도생활을 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보니 교회의 결집력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신앙생활을 잘하시고 있는지 영적관리 차원에서도 어려움이 있고, 자연스럽게 헌금과 같은 교회의 재정적인 부분에도 이전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이 비단 교회뿐이겠습니까? 세계경제의 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같은 경우는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지난 6주 동안 3천만 명이 직업을 잃었습니다. 최악의 실업률과 최악의 빈곤율과 세계경제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여파는 우리나라와 필리핀을 비롯한 전 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코로나 이후 급변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의 변화에 우리가 새롭게 적응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늘 불편함을 줍니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는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줍니다.

필리핀에서 살다보니 연중 계절의 변화가 그리 크기 않고 늘 덥기만 하다 보니 가끔은 한국의 4계절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라고 하는 아주 추운 겨울을 만난 겁니다. 하지만 이제 곧 새로운 계절이 오게 될 것입니다.

갑자기 직업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앞으로 하려고 했던 일이 캔슬 되었을 수도 있고, 재정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을 수도 있고, 이 겨울의 추위를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1. 시련이 없는 영광은 없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의 어린 소년 요셉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가 어렵게 얻은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요셉은 형들로부터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놀라운 꿈을 꿨습니다. 앞으로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는 그런 놀라운 꿈이었습니다. 자신을 구박하고 미워하던 형들이 자신 앞에 절하는 꿈이었고, 해와 달과 하늘의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놀라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이라는 것은 자기가 꾸고 싶어서 꾸는 게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꿈이라는 것은 지극히 심리적이고,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현상입니다. 꿈 중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것들도 있지만 간혹 의미 있는 꿈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18절 말씀을 보시면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형들이 들에서 양을 칠 때, 요셉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을 보러 양떼들이 있는 들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막내 동생이 오니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아니라 형들 중 몇몇이 요셉을 죽이기를 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19절을 보시면,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형들은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부르면서 비웃고 있습니다. 요셉이 고난을 당하게 된 이유는 ‘꿈’때문이었습니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막내 동생 요셉을 편애하는 것 까지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잖아도 미운 막내가 심상치 않은 놀라운 꿈까지 꾸니 ‘정말 그 꿈대로 되나 보자’라는 식으로 이런 끔찍한 범죄를 계획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꿈만 꾸지 않았더라면 그는 야곱의 사랑 받는 아들로 평생을 살다가 그냥 평범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놀라운 꿈을 꾼 이후부터 오히려 인생이 더 꼬이게 된 것입니다. 꿈이 아니라면 요셉이 생사를 오가는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꿈은 자기가 꾸고 싶어서 꾸는 게 아니라 했죠? 비단 그 꿈이 밤에 잠잘 때 꾸는 꿈뿐이겠습니까? 어느 날 자기 마음속으로 그 생각이 쑥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뭔가에 대한 불붙는 마음이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그 꿈을 향해 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요셉의 꿈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어느 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에 개입하셔서 새로운 비전을 갖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 섬기던 교회는 목회자로 여러 교회에서 20년간 생활하면서 어쩌면 가장 신나게 사역했던 10년이었습니다. 저는 행복했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다는 기쁨으로 매일 매일 충만한 생활을 했었고, 앞으로의 날들이 더 기대가 되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 2012년 6월, 하나님께서 저에게 새로운 꿈을 주셨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 봤지만 그 때까지 한 번도 와 본적이 없었고, 올 계획도 없었던 ‘필리핀 세부에 한인교회를 개척하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2013년 3월에 이곳에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인교회 개척이 쉽겠습니까? 여기 한인 숫자에 비해 교회 숫자가 적은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이곳은 한인교회 개척과 성장이 쉽지 않은 지역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아니라면 저에게도 좀 더 편한 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저를 향한 꿈이 있으셨고, 그 꿈을 제 마음에 심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꿈을 이루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동안도 어려웠는데 이렇게 코로나사태로 성도들까지 대부분 한국으로 귀국하시고, 다시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오시겠지만… 어쩌면 올해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부분들이 처음부터 셋팅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인 몇 명 없던 초창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저의 가정은 이 땅의 교회를 지킬 것입니다. 여길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안정되어 떠나갔던 성도들이 몇 달 뒤에 돌아오든, 내년에 다시 돌아오시든… 돌아오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예배할 교회로 언제든 준비해 놓을 것입니다. 또 이 땅에 새로운 인생의 꿈과 비전을 갖고 오시는 새로운 분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이 땅에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놓을 것입니다.

어느 날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꿈이 생겼을 것입니다. 내가 그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그 꿈을 넣어 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계획하고 계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플랜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 그 꿈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꿈 때문에 세부에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자녀들을 향한 꿈이 있으셨을 거예요. 여러분이 이곳에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꿈꾸셨을 거예요. 그 꿈과 비전 때문에 흥분되는 기대감으로 이 땅을 밟으셨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을 만나니 그 모든 꿈과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도 몇몇 성도님들과 통화했었는데, 그 분들 역시 이곳에 정착해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오자마자 이런 일이 터져서 집도 얻어놓고, 학원도 등록해 놓고, 이것저것 물건들도 다 사놨었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 특별기편으로 또 몇 가정 귀국하셔서 당분간 온라인상으로만 만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로 모든 것이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시련이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어려움 때문에 조금 움찔할 수도 있고, 잠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십시오. 시련과 고난이 왔다고 우리의 꿈을 포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동시대에 살았으면서 그에 버금가는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 1763~1825)’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패한 자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포기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지금 시련 중이라면 그것은 아직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련이 지나고 나면 나에게 새로운 계절이 올 것을 믿으십시오.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시련이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요셉의 시련을 기억하십시오. 욥의 시련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그 십자가 뒤에 영광의 부활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그 이상의 영광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자로 남는 것입니다. 이 시련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직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신 새로운 계절을 맞을 준비 하십시오. 내 인생에 새로운 계절이 오게 될 것입니다.

 

2. 준비된 사람이 노 젓는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이 꿈을 꾼 나이는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마음속에 주신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 일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열일곱 살짜리라도 얼마든지 당신의 능력으로 높이 세우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 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고, 우리를 높이 세워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에게는 당장의 문제해결이 시급한 문제지만 하나님께는 그 문제해결보다는 우리에게 더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가 생선을 먹고 싶다고만 하면 늘 맛있는 생선요리를 우리 앞에 갖다 주실 수도 있으시지만, 주님은 그 물고기 잡는 능력을 키워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당장 큰 부와 명예와 영광도 주실 수 있으시지만,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고 사용할 줄 아는 지혜와 인격과 건강한 가치를 갖춘 성숙한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건강한 믿음과 성숙한 성품을 갖춘 바른 신앙인,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더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시되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그 복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그를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로는 큰 시련과 시험과 고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7장 14절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셨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형통하고, 평안하고, 아무 걱정도 없는 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시련과 고난이 있어야 겸손을 배우고, 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런 시련이 올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 시련의 때가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보낸다면 그는 그 시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곤고한 날에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에게 고쳐야 할 문제는 없는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은 없는지, 앞으로 제대로 해야 할 일은 없는지…를 살펴본다면 그는 그 시련의 날 이후에 더욱 성숙한 사람으로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된 사람이 그 시련의 날 이후에 더 크게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은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게 됩니다. 열 명의 형들이 요셉에게 악감정을 갖고 노예상인들한테 그를 팔아버립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가장 사랑 받던 막내아들이었던 요셉은 당시 가축과 같이 취급받던 애굽인의 노예로 신분이 바뀌어 버립니다. 하지만 십년 가까이 최선을 다해서 애굽의 주인을 섬겼지만, 성추행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요셉은 십대 후반부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무려 13년간 큰 고난을 받게 됩니다.

 

요셉이 13년간의 젊은 날을 어느 누구보다 가장 불행한 때를 보냈지만 그가 어떻게 보냈습니까? 그가 그 때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창세기 39장 3절 말씀에 보시면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애굽 왕의 호위부대 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살 때, 그의 주인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전부 그에게 맡깁니다. 얼마나 요셉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했으면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불신자가 느꼈겠습니까?

 

창세기 39장 23절에서도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나중에 성추행범이라는 수치스럽고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는데, 요셉이 처음 감옥에 들어올 때만 해도 간수장을 비롯해서 사람들은 요셉을 파렴치한 성추행범으로만 봤을 것입니다. 선입견이라는 게 한번 딱 박히면 그 생각 바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간수장이 요셉을 지켜보니 요셉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느꼈던 겁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불신자인 간수장도 느꼈던 것입니다.

요셉도 사람인데 그 시련의 날들이 안 억울했겠습니까? 형들을 향한 복수심이 없었겠습니까? 그 정도의 상황들이라면 충분히 삶과 세상을 비관하고 분노와 미움과 복수심으로 지옥 같은 인생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엄청난 인생의 시련의 날들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꿈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었습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 앞에 광야와 같은 길이 펼쳐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의 기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같이 믿음으로 그 광야 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장차 세상을 구할 축복의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오래 전에 읽었던 『최고의 삶(Joel Osteen)』이란 책에 있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떤 성공한 경영자의 사무실에는 모래 위에 푹 파묻혀 좌초된 배가 그려진 액자가 하나 걸려있었습니다. 대양을 누비며 넘실대는 파도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춰야 할 배가 모래톱에 파묻혀 좌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림은 그다지 멋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고급스럽고 근사한 사무실 인테리어와는 격이 안 맞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 맨 밑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면 좌초되었던 배가 다시 그 목적을 찾게 되리라. 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리라”

 

이 성공한 경영자는 과거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는 실패했고, 그는 배신당했고, 그는 패배자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시절 우연히 들른 작은 골동품 가게에서 이 액자를 단돈 몇 달러에 사왔습니다.

썰물 때에는 모든 것이 다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 기회를 놓쳐 그 배는 모래톱에 좌초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썰물이 있으면, 밀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사람은 이 그림을 사와서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필리핀 세부는 관광과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교민사회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는 상당수의 교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내 인생의 썰물과 같은 것이 몰려와 내게서 많은 것들이 쓸려 내려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모래톱에 버려져 좌초된 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는 끝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썰물이 있다면, 밀물도 있습니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 물은 내 인생의 배를 다시 띄우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내 인생의 새로운 계절이 오게 될 것입니다. 시련의 때를 보내지만 이 때를 요셉과 같이 믿음으로 준비해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밀물의 때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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