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목발을 던져버려라”

<사무엘상 17:36~40> 

 

 

[Audio 말씀]

 

우리 가족 중에서 목발을 사용해 본 유일한 사람은 우리 아들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 즈음에 넘어져서 손목에 깁스를 했고, 같은 달 봄방학 기간 중에 교회에서 있었던 동계수련회 때 게임을 하다가 발목을 다쳐서 한쪽 발도 깁스를 해서 3월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할 때는 목발을 짚고 가야했습니다. 같은 중학교에 입학한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손발을 다 깁스하고 목발에 의지해 입학식에 참석한 우리 아들을 보고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줄 알았답니다. 그렇게 아들은 한 동안 목발에 의지해 살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다리에 문제가 있어 걷기 불편한 분들에게 목발은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이제 자기 힘으로도 걸을 수 있는데 계속해서 목발을 의지하게 되면 다리의 뼈와 관절과 근육 모두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목발을 던져버리고 혼자 걷는 훈련을 해야 튼튼한 다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목발’과 같이 의지하며 기대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36장 6절을 보시면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종종 주변의 강대국들을 의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그것이 당장에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거 같지만, 사실 멀리 보면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아서 사람의 무게를 못 견뎌 부러지면서 그것을 의지하던 사람의 손을 찌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에 ‘한일, 무역 갈등’으로 인해 우리가 그 동안 일본의 기술력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우리가 뼈져리게 배우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한미, 방위비 분담금’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가 자주국방이 가능하다면 문제가 될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일본이나, 미국 혹은 또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들을 목발로 삼고 있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언젠가 우리에게 찌르는 가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근간의 한일무역갈등과 한미방위비분담금 문제 같은 일들은 우리에게 빠른 시일 내에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과 미국으로부터의 자주국방에 대한 필요를 각성케 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하루 속이 그 목발들을 던져버리고,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도록 하는 채찍질 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도 이런 ‘목발’과 같은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목발이 없으면 혼자 일어설 수 없을 거 같고, 넘어질 거 같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거 같은 우리가 의지하는 그 목발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돈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인 위치나 또는 어떤 상황들이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담대해 지십시오. 더 강해지십시오. 과감히 그 목발들을 집어 던져버리십시오. 목발을 짚지 않으면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내 다리에는 없던 근육들이 만들어져가며 점점 강해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살아남으면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과감히 목발을 던져버리고, 믿음으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1. 영적야성을 회복하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때에 블레셋이 쳐들어와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블레셋에는 거인족의 후예인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있었고, 그는 ‘우리가 다 싸울 것이 없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와서 나와 싸워 이기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될 것이고, 만약 너희가 질 때는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40일 동안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마땅히 나서서 골리앗을 대항해 맞서 싸울만한 장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거인 장수 골리앗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꼼짝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었던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러 온 막내 동생 다윗이 그 장면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자원해서 골리앗 앞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골리앗의 스펙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너무나 많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비교

 

골리앗

다윗

290cm 이상 약 160cm
직업 전사(Warrior) 양치기 소년
보호장비 갑옷(투구, 방패) 평상복
공격무기 창과 칼

물매와 돌

외적 스펙으로 비교하자면 이건 싸우나 마나한 조건입니다. 100%, 200% 소년 다윗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인 것입니다. 어린 소년 다윗은 잔인한 장수 골리앗에 의해 참혹하게 찢겨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37절 말씀을 보시면,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소년 다윗은 양떼를 칠 때 결코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천한 양치기였지만 다윗은 직업적 소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떼를 노리는 이리와 늑대 심지어 사자와 곰과 같은 사나운 야생맹수들로부터 맡겨진 양떼를 지켜냈습니다. 때로는 사자와 곰과도 싸운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Best(최선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세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잘 하는 사람, 뛰어난 사람, 잘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이든 그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대와 같은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큰 것도 맡기시려는 테스트인 것입니다.

다윗이 뛰어난 장수였기 때문에 사자와 곰과 싸워 이긴 게 아닙니다. 그는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그는 열심히 물맷돌 던지는 연습도 해서 맹수들에게 일격을 가할 정도로 자기 실력도 키웠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자와 곰과 싸워도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리에서 베스트를 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충성을 다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까? 그게 죄입니까?

– 부모님이 우리 학생들 넉넉히 후원 못 해 주십니까?

– 아이큐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거 같습니까?

– 외모도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 특별한 재능도 없는 거 같습니까?

– 자랑할 만한 학력도 없습니까?

– 자랑할 만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닙니까?

– 직장에서도 늘 밀리는 기분이 듭니까?

– 사업을 하려고 해도 자본이 없습니까?

– 든든하게 기대거나 믿을 만한 배경이 없습니까?

– 필리핀에서 살아야 하는데 언어능력도 부족합니까?

 

다윗이 양떼를 노리는 이리와 늑대와 사자와 곰을 상대할 때 특별한 무기가 있었습니까? 좋은 조건이었습니까? 함께 싸워 줄 동료가 있었습니까?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영적 야성이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눈에 보여 지는 외적 조건들에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가진 게 없어도, 조건이 좋지 않아도,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내가 연약하더라도… 영적 야성은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의 현대그룹을 창업한 故정주영 회장은 쌀가게에서 쌀배달하다가 일하던 가게를 인수해 쌀가게로부터 오늘날의 현대그룹을 세웠던 것입니다.

– 아브라함 링컨은 어릴 때 집안이 망하고,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초등학교 2학년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위대한 미국 건설의 기초를 놓고, 미국의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 전세계 IT업계의 판도를 뒤바꾸어 놓은 빌게이츠는 대학 중퇴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여관에서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습니다.

–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역시 부친 집의 차고에서 오늘날의 애플를 창업했고, 세상에 대혁신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핑계만 대고 있겠습니까? 골리앗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었던 다윗은 아무 것도 없었던 허허벌판, 양떼들이 풀 뜯던 들판에서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다윗이었습니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야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코로나로 인해 지금 우리의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한국은 점점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필리핀은 아직 코로나가 잡혀지지 않는 거 같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후진국 의료 환경이라는 것들 때문에 불안해하는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분명 언젠간 괜찮아지겠지만 ‘그 언제가 언제 올 것인가?’ 라는 것 때문에 불안하기도 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개척 7년 만에 가장 특이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여기까지 잘 이겨내 왔는데 코로나 이후부터는 교회가 다시 초창기 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게 이런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어차피 처음에 개척멤버도 없이 시작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할 수 있습니다. 또 기적을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교회는 반드시 이 땅에서 부흥의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갈 것입니다.

 

2. 남이 아닌 나로 살라

여러분이 목발을 짚고 가는 것은 원래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다. 뭔가 내게 문제가 생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임시적으로 목발을 짚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그 목발을 던져 버리고,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닌 원래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시면,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아간다 하니 사울 왕은 다윗에게 자신의 군복을 입히고, 놋 투구를 머리에 씌우고, 군복 위에는 다시 갑옷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39절을 보시면,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보통 사람들보다 약 20cm 정도는 더 큰 거구였습니다. 다윗은 아담한 체구의 아직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군복이 맞겠습니까? 옷은 질질 끌리고, 갑옷과 칼은 다윗에게 너무 크고 무거워 오히려 더 불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중요한 전장에 나갈 때에는 그 정도의 갑옷과 무장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평상복 차림에 변변한 무기도 없이 나가면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질질 끌리는 수십kg에 달하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나갔다면 다윗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골리앗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사울 왕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사울의 갑옷을 벗고, 칼을 내려두고 나옵니다.

 

40절을 보시면,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칠 때 늘 연습해 왔던 물매와 돌 몇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어 골리앗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다윗은 거인 장수 골리앗을 때려 눕혀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것입니다.

지난 번 A.W. 토저 목사님의 책 『십자가에 못 박혀라(규장)』에서 “하나님을 애타게 찾는 자들은 오늘날 이곳저곳에서 제공되는 짝퉁을 거부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자기 내면에 진짜가 없는 사람이 밖에서 모조품을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300만 원 짜리, 1천만 원짜리 명품가방이 있다고 치십시다. 그러면 여러분하고 그 가방하고 누가 더 가치가 있습니까? 그 가방 하나 줄테니 여러분 생명을 주겠습니까? 누가 그 가방 하나 얻겠다고 자기 생명을 던집니까? 그러면 어떤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그깟 가방 하나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인 여러분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값비싼 명품 가방이라 할지라도 세상의 썩어질 것에 불과합니다. 그 가방을 1년 내내 습하고 더운 이곳 필리핀에 갖다 두면 아무리 좋은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 못하면 2~3년 안에 곰팡이가 나고 썩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멋진 옷을 입고 있고, 값비싼 시계를 차고 있고, 근사한 신발을 신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깐 전부 모조품이예요. 그 사람만 진짜고 나머지는 모두 가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하찮게 평가되겠습니까? 그 가품들 때문에 그 사람까지도 싸구려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으셨을 때 모든 만물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그깟 썩어질 것들과 비교조차 불과한 존귀한 형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마16:26)”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의 저자이자, ‘기독교 심리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ccent Peale, 1898~1993)’ 목사님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근처 산에서 발견한 독수리 알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독수리 새끼가 부화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것을 암탉이 품고 있는 달걀들 사이에 슬쩍 밀어 넣었습니다. 어느 날 독수리 알도 부화했고, 독수리 새끼는 다른 병아리들과 함께 어미닭을 따라다니며 생활했습니다. 어미닭처럼, 다른 병아리들처럼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곡식의 낱알 같은 것들도 쪼아 먹으며 닭처럼 살았습니다.

그 새끼 독수리는 자기가 병아리나 닭들보다 몸집이 좀 크긴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이 닭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하늘을 우러러 보는데 멋진 날개를 활짝 펴고 날던 새들의 왕 독수리의 비상하는 모습을 보고 “와~ 정말 멋진 새 구나!”했습니다. 그 때 옆에 있던 닭이 “저 새는 새들의 왕 독수리지. 우린 꿈도 꿀 수 없지. 왜냐하면 닭은 절대 저렇게 될 수 없다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독수리가 자신을 닭이라고 생각하는 한 절대로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입니다.

 

노만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No를 거꾸로 쓰면 On이 된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다!”

 

우리는 NO(안 돼)를 보고 있기 때문에 On(켜다. 시작하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No에 갇혀 살면 절대 On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닭이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이 굳어져 버리면 그는 독수리로 태어났으면서도 절대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했던 것입니다.

‘남’이란 말과 ‘나’라는 말은 받침 하나 차이입니다. ‘나’에다가 받침 미음을 붙이면 ‘남’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걸치는 것은 ‘남’으로 골리앗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그 사울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다윗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갔을 때 그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 우리는 자꾸 이 세상의 목발들을 의지하려 할까요? 왜 우리는 뭐라도 하나 더 걸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할까요? 왜 우리는 그 목발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제 그 사울의 갑옷과 같은 목발을 던져버리십시오. 남으로 살지 말고 이제부터 하나님이 지으신 최고의 작품인 나로 사십시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이 시대의 소년 다윗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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