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그 자리에서 꽃피우라”

<마태복음 25:22~23> 

 

 

[Audio 말씀]

 

지역사회격리(ECQ) 기간 잘들 보내고 계십니까? 저는 코로나 때문에 힘들고 불편한 것도 많지만, 바쁠 때 미처 해보지 못하던 것을 요즘 하나씩 하며 지내는 거 같습니다. 지난 주간엔 탑스 너머에 있는 현지인들 야채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야채들을 사왔습니다. 그곳에 간 김에 전망 좋은 평지에 잠시 주차해서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많은 들풀들과 꽃들 그리고 나무들을 구경했습니다.

그러다 주렁주렁 결실한 파파야 나무가 자라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씨가 떨어졌는지 그 주변에는 여기저기 작은 파파야 나무줄기가 땅을 뚫고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우리 집 화분에 심으면 파파야를 맺을 수 있을까?’해서 20cm되는 줄기 두 개를 살짝 뽑아다 화분을 준비해 집에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파파야 줄기가 흙이 바뀌어서 몸살을 앓는지 반나절 만에 이파리들도 시들어 죽고, 줄기마저 힘이 하나도 없이 스러져 말라갔습니다. ‘산에 살던 나무라 안 되나보다…’ 생각이 되어서 말라 죽어가던 그 작은 묘목을 그냥 다 뽑아 버릴까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줄기는 나무젓가락으로 지지해 세워주고, 마른 이파리들을 다 떼어내고 부지런히 2~3일 물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줄기 맨 윗부분에서 새 순이 돋아나고, 줄기 중간 중간에도 좁쌀만 한 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명력 있게 다시 살아난 어린 파파야 나무 묘목을 보니 그게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한지 몰라요. 그래서 하루에 한두 번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구경하곤 합니다.

시들어 죽어가던 파파야 나무 묘목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면 이런 모습도 제가 볼 수 없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포기하려던 그 짧은 찰나에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돌봤더니 죽어가던 나무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코로나가 우리 삶에 많은 것들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코로나 대처를 가장 모범적으로 해온 한국에서조차 작은 식당과 기업들의 폐업 소식이 들려오고, 그러니 한국의 경제적 기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필리핀 세부는 말할 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산에서 뽑아온 작은 파파야 묘목의 이파리가 반나절도 못되어 말라 죽어가듯이, 어쩌면 겨우 겨우 버티고 견뎌내고 계신 분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부에 많으신 거 같습니다. 어두운 전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필리핀을 철수하시는 분들 소식도 많이 듣게 되고, 2020년의 전망은 필리핀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어둡기만 합니다.

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끝나기 전까지 끝났다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끝났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다 끝났다’라고 할 만큼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은 종종 올 것입니다. 학업에 실패하고, 입시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하고, 실직을 하고, 결혼을 실패하고, 자신이 인생의 실패자와 루저(loser)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과 달리 나를 향한 하나님의 플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실패의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싹을 띄고,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시련과 고난의 기간이 우리에게 큰 간증거리가 될 것입니다.

 

1. 감당할 만큼 맡기신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 그 유명한 달란트 비유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떤 주인이 외국에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세 명의 종을 불러 자기의 소유를 셋으로 나눠 맡겼습니다.

 

15절을 보시면,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달란트는 로마시대 당시의 무게를 재는 기준으로 1달란트는 보통 30kg 내외의 무게를 말합니다. 그리고 당시 쓰이던 화폐는 모두가 동이나, 은이나, 금으로 된 동전이었기 때문에 대단위 화폐의 무게를 말할 때에도 달란트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주인은 대단한 부자였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그 종들의 재능에 따라 종들에게 금화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를 맡기고 외국 출장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1달란트는 약 30kg 정도의 무게의 금화를 말한다고 했는데, [세계기독교박물관 | segibak.or.kr]의 자료에 의하면 당시 화폐로 1달란트는 9만 데나리온을 말하는데, 보통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받는 품삯이 1데나리온입니다. 그러면 9만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9만 일 동안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햇수로 계산하자면 ‘노동자의 300년 품삯’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 품삯을 한국 돈으로 미니멈 5만원이라고 쳐도 약 45억 원에 해당되는 엄청난 금액인 것입니다.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치면 그 금액은 두 배가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도 결코 적은 금액의 돈을 맡게 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절 말씀으로 다시 돌아와서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그런데 그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맡기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잘 관리하고 활용해 수익을 남길만한 능력과 재능(달란트 = talent)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만큼 맡기신 것입니다. 하지만 45억에서 90억 원을 맡겼다면 그래도 주인이 그 종을 꽤 인정하고 신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종을 보니 성실하고 지혜롭고 재능이 더 많아보여서 그에게는 두 달란트 그리고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긴 것입니다. 그 종들의 재능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주인의 몫이었고, 각각의 종들에게 그 큰 재정을 맡기는 것도 주인의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교회 목회를 하면서 모든 일을 제가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모든 것을 다 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도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우리 성도들의 믿음과 재능에 따라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도 넉넉히 감당할 분도 계시지만, 어떤 분은 한 가지만이라도 섬겨주시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기쁩니다. 각각 믿음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헌신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도들이 한 부분씩 서로 돌아보고 섬기는 그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볼 때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과 믿음과 헌신도가 다른 것을 느끼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얼마만큼을 맡기실지 판단이 안 되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큰 재정을 맡기시고, 큰 책임과 지위를 맡기시기를 그리고 큰 성공을 주시길 소망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릇이 얼마나 되시는 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한 달란트를 감당할 수 있는지, 두 달란트를 감당할 수 있는지, 다섯 달란트를 감당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신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만큼 주시는 것입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만큼 안 주셨냐고? 왜 저 사람은 노래를 잘 하는데 왜 나는 노래를 못하냐고? 왜 저 사람은 키도 크고 멋지고 예쁘게 만드셨는데, 왜 나는 만들다 말았냐고? 왜 저 사람은 많은 재물을 주셨는데, 왜 나는 겨우 겨우 먹고 살 만큼만 주셨냐고?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하고 늘 비교하며 낙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그리 애국자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여기 외국에 나와 사니깐 대한민국이 정말 복을 많이 받은 나라고 좋은 나라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또 한국에서는 그냥 서민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여기 필리핀에는 한 달 이삼십 만원으로 생활하는 분들이 대다수이지 않습니까? 한 달 월세 100만 원 이상씩 내며 사는 한국 사람을 부러워하는 필리핀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자기는 한 달란트 밖에 안 줬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달란트라는 것은 생각보다 꽤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1달란트만 해도 45~90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꽤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걸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많은 것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요즘 우리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시험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감당치 못할만한 시험이라면 피할 길을 내시고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입니다.

감당할 만큼 주셨는데 ‘난 못해. 난 할 수 없어. 난 가진 게 없어…’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라고 하는 지독한 전염병이 돌아 전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지만,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필리핀 세부 한인사회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시련을 통해 성장하라

이 달란트 비유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 어느 날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불러 맡긴 돈에 대해서 결산을 하길 원했습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와서 그 다섯 달란트로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의 수익을 남겼다고 보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2절을 보시면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두 달란트 받았던 종도 맡긴 돈으로 열심히 일하고 장사해서 또 두 달란트의 수익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3절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주인은 종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라고 칭찬했습니다. 이 칭찬은 다섯 달란트 맡긴 자에게 철자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양을 보시는 게 아니라 그 자세와 태도를 본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달란트라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는데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가치를 두고, 남의 것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그것을 소홀히 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것을 대하듯 최선을 다해서 일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성경의 축복원리가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 적은 일에 충성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결코 큰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장님인데 직원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어떠시겠습니까? 그 직원의 월급도 올려주고, 점점 더 책임 있는 직책도 맡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직원이 매일같이 요령만 피우고 맡겨진 일도 제대로 해 놓지 않는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그런 직원은 월급도 안 올려주고 싶고, 제발 좀 나갔으면 좋겠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릇만큼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그 맡기신 것을 결산할 날이 옵니다. 우리가 그 분 앞에 결산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놈아, 내가 너에게 이것과 저것과 이러저러한 많은 것들을 맡겼는데 그 동안 도대체 이걸로 뭘 하고 있었던 것이냐?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을 하신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몇 년 전에 마닐라에 갔었을 때, 우리 차를 운전하던 드라이버에게 “필리핀에서 넘버원 부자는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복합쇼핑몰로 유명한 ‘SM 그룹의 헨리 시 회장’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도 그 분이 누군지 잘 몰랐었기 때문에 “그는 필리핀 사람입니까? 아니면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중국계 필리핀 사람’이라더군요. 그 거대한 SM쇼핑몰이 필리핀에만 70여개가 있고, 금융과 건설과 부동산 그리고 통신 등등 필리핀 주요산업을 장악하고 있어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헨리 시 회장을 필리핀 제일의 부자요, 동남아시아 최고의 부자 그리고 세계 50위권의 재벌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1월에 94세의 헨리 시 회장이 별세했고 자녀들은 SM그룹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필리핀 경제를 이끈 헨리 시는 원래 필리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924년 중국에서 태어났고, 청일전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 12살 되던 해에 가족들과 함께 지독한 가난을 피해 필리핀에 건너왔습니다. 헨리의 아버지는 사리사리(Sari Sari)라 하는 구멍가게를 운영했고, 가게 뒤에 있는 비좁은 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필리핀 경제가 무너지자 화교자본을 배척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공격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가게가 불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현지인들의 중국인들에 대한 차별과 반중감정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았던 생계수단마저 잿더미가 되자 아버지와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헨리 시는 홀로 남아 필리핀에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미군 군화 재고를 파는 일을 시작했고, 삼십대 중반에 [Shoe Mart]라는 신발가게를 창업해 오늘날의 SM그룹을 이룬 필리핀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필리핀 매체 프라이머는 헨리 시 회장의 별세 기사를 다루면서 헨리 시 회장의 감동적인 성공 이야기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는데,

 

“아무리 이루기 힘든 꿈이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곳에서 중국인들만큼 성공하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종종 일본인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을 향해 ‘냄비근성’이라는 말로 비하합니다. 냄비처럼 금세 끓지만 쉽게 식어버린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누군가 헨리 시 회장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힘든 시기를 견뎌낸다면 그 사람이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이루기 힘든 꿈이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힘들다고 포기하고, 상황이 힘들다고 그 자리를 떠나면 그는 그 어떤 꿈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련의 시간들은 도리어 내가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입니다. 지금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내고 있는 그 시련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낙심하고 포기할 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인 여러분은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그 시련 속에서 내 인생의 새로운 꽃은 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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