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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크리스천”

<마가복음 11:20~24> 

 

 

[Audio 말씀]

 

전에 들었던 재밌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일명 ‘총알택시’라는 거 타 보셨습니까? 예전에 서울에서 인천을 갈 때 차가 끊기거나, 급한 일로 가야하는 사람들이 이용했었는데 이 택시는 총알만큼 빨리 달린다고 총알택시라고 불렀습니다. 3~4사람 승객이 타면 출발하는데 과속은 기본이고 웬만하면 신호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명을 담보로 한 정말 위험한 교통수단이고, 교통경찰한테 잡혀도 여러 번 잡힐 만한 난폭운전입니다.

이런 난폭운전기사가 죽어 하나님 앞에 섰고, 평생을 목회한 목사님이 죽어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난폭운전기사에게는 큰 상을 내리고, 평생 목회를 한 목사님은 그보다 작은 상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기가 막힌 목사님이 ‘하나님 왜 저에게는 저 난폭운전기사보다 작은 상을 주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저 운전기사가 운전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고 기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네가 설교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졸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냥 웃을 수만은 없는 얘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간 대한민국을 혼돈에 빠뜨린 사건 중에 하나는 어떤 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가 2차 대확산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겁니다.

그 교회를 다녀간 사람들 중에 벌서 7백 명 이상이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그 교회와 그 교회의 담임목사와 교인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2주간 현장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행정명령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공영방송의 한 뉴스에서 문제가 되는 해당 교회 주변 상인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교회 때문에 문 닫게 생겼어요. 교회 때문에 다 굶어죽게 생겼어요. 교회가 교회다웠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안타까워요.’라고 말하는데 제가 다 부끄러웠습니다. 교회 때문에 살맛이 나야 하는데 교회 때문에 죽겠다고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지난 번 대구 신천지 때도 그렇지만 외벽에다가 ‘OOO 교회’라고 간판을 걸어놓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게 다 똑같은 교회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고, 목사가 목사다워야 하고, 크리스천이 크리스천다워야 진짜 교회고, 진짜 목사고, 진짜 크리스천인 것입니다.

우리 조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한국은 몇몇 잘못된 교회들 때문에 일반 교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진짜와 가짜가 드러나고 확실히 구분되는 날이 오겠지만, 그 전까지는 종교의 탈을 쓰고 악을 행하거나 범죄 하는 이들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우리도 그 중에 예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짜 크리스천입니까? 교회 다닌다고 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1. 가짜 믿음은 망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절기는 출애굽을 기념으로 지키는 ‘유월절’입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도 ‘이스라엘 남자들은 1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을 와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유월절입니다. 1주일간 유월절이 진행되는데 이 유월절에는 전국에서부터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옵니다.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 역시 예루살렘 성 안에서 숙소를 잡지 못하고, 그 주변 마을들에 숙소를 잡고 낮에 걸어서 예루살렘 성전에 다녀오곤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숙소를 잡은 곳은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 그리고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있었던 베다니의 집을 주로 사용하셨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남쪽 4km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베다니 마을에서 나오시다가 한 무화과나무 가까이 가보니 잎은 무성한데 달고 맛있는 무화과 열매가 하나도 맺지 못한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14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과 급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베다니로 돌아오셔서 쉬시다가 다음날 아침에 제자들이 그 무화과나무 앞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는데,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시면,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마가복음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마가복음의 독특한 교훈구조가 하나 있는데, 이걸 신학자들은 『샌드위치 구조』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사건 사이에 또 다른 한 가지 사건이 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샌드위치를 겉 빵만을 샌드위치라 하지 않고, 겉의 빵과 안에 있는 토마토나 계란이나 치즈를 샌드위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이것은 두 가지 사건이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를 통해 한 가지의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샌드위치의 위쪽 빵에 해당하는 것이 12절부터 14절까지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사건입니다.

 

그리고 샌드위치 안에 있는 내용물에 관한 것이 15절부터 19절까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셨던 일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고 환전을 해 주는 모습을 보며 크게 진노하셨고, 채찍을 만들어 제사에 쓸 가축들을 내어 쫓으시고, 환전상들의 책상을 들러 엎어 버리셨습니다. 전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제사에 올릴 가축을 멀리서 끌고 오기 어려웠기 때문에 돈을 갖고 와서 예루살렘에서 가축을 사서 제사를 드렸는데,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 장사꾼들을 들여 임대료를 받고, 거기서 가축 같은 것을 팔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성전은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돈 버는 시장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전청결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샌드위치의 밑에 있는 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오늘 본문 20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루 전만 해도 멀쩡했던 무화과나무가 하루 만에 말라 죽은 모습을 제자들이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거 같습니까? 겉모양은 제사장이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지만 돈을 사랑하고, 세상적인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위선적인 유대인들의 모습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잎만 무성하되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그냥 직업인 것입니다. 겉모양만 크리스천이고, 사실은 세상 사람하고 다른 게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은 겁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신앙이 어떻게 참된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다니는데 말하는 게 하나도 덕이 되지 않아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거짓말을 그렇게 잘해요. 주님을 믿는 사람이 사기를 쳐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면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 나서 변한 게 없어요. 어떤 때는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못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요. 그런 사람이 무슨 신앙적인 열매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뉴스에서 세 자매가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명품 짝퉁을 팔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약 1년 6개월 동안 해외명품 위조 상품 2만6,000여점을 팔아왔다는 겁니다. 이 물건들의 정품 시가는 약 625억원어치에 달한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게 보통은 창피하니깐 자기가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것을 가족들에게는 숨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편을 포함해 세 자매가 같이 그 일을 하고, 결국 온 가족이 전과자가 되게 된 것입니다.

정상적인 물건을 팔았으면 결말이 이랬겠습니까? 가짜는 망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는데, 당분간은 나두시지만 마지막 날에는 알곡은 거두어 창고에 들이지만, 가라지는 거두어 불에 태워버린다 하셨습니다. 그것이 가짜의 결말인 것입니다. 가짜 크리스천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20세기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있는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 목사님이 그 분의 책(『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규장)』에서 참된 영성을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대단한 간증거리를 갖고 있다거나, 유창히 기도한다거나, 찬양을 은혜롭게 한다거나 하면 그런 사람은 믿음이 좋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물론 관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토저 목사님은 ‘그런 것들 자체는 영성도 아니고, 영성의 증거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참된 영성의 척도는 ‘우리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욕구들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욕구들이 결국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 욕구가 크면 클수록 그것은 우리의 삶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깐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만 갖고는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서 주로 나타나는 욕구들이 무엇이냐를 보면 내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인지? 성령의 사람인지? 하나님의 사람인지? 주님의 종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 안에 거룩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까?

∙ 예수님을 닮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까?

∙ 주님을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모함이 있습니까?

∙ 의롭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까?

∙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까?

∙ 희생하며 십자가를 지려는 욕구가 있습니까?

∙ 연약한 이들을 위해 섬기며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까?

∙ 돈에만 미쳐 살고 있는 건 아닙니까?

∙ 세상적인 자랑에만 매여 살고 있는 건 아닙니까?

∙ 세상의 즐거움만을 갈구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닙니까?

 

여러분, 나는 진짜 크리스천입니까? 가짜는 망합니다. 가짜는 결말이 비참합니다. 가짜 믿음도 망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불이 임할 때 그 모든 것들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선포를 하라

진짜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참으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형식적인 유대인들과 제사장들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다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시고는 갑작스럽게 기도에 관한 주제로 옮기시고 있습니다.

 

23절을 보시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런데 이 구절에서의 기도는 ‘선포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기도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소원을 아뢰고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기도는 ‘하나님, 저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주세요.’라고 하는 간청이 아닙니다. 그냥 산에게 선포하기를 ‘너는 바다에 던져지라’라고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7절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도에 있어 확고한 믿음은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믿음이 있는 사람이 응답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지금 당장 어떤 변화가 없어도 믿음의 사람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는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세부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급격하게 코로나 환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필리핀 도시 중에 최대 코로나 감염자 발생지라는 불명예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닐라에서 환경부 장관하고 군인들 수백 명을 파견해 코로나 통제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표를 보시면, 세부시티, 만다위시티, 라푸라푸시티 그리고 세부주까지 해서 7월8일~11일까지 2~3백명씩 매일같이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 밖에 없었고, 7월13일부터 ‘코로나 종식을 위한 온라인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고, 교회 집회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라도 함께 기도하고자 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당장에 기도가 응답되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만지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환자는 여전히 2~300명씩 매일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교회와 우리 성도 대부분이 살고 있는 세부 시티는 그 중에 확진자가 제일 많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지 2주가 지나면서부터 감염자 숫자가 줄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2~3주는 또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인 8월20일, 목요일인 21일을 통계를 보시면 더 낮아져서 세부시티에 8명, 27명이고 세부 주 전체를 봐도 60명대에서 80명대로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긴장을 늦추거나 방역을 소홀히 하거나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든 마닐라처럼,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2차 대확산이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하면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온라인 기도회 할 때 우리 집사님 중에 한 분이 “우리가 기도하고 있어서 세부가 안전할 줄로 믿습니다.”라고 기도문을 올리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내가 기도하니 우리 가정이 안심해도 되는 겁니다. 내가 기도하니 우리 자녀들이 안심해도 되는 겁니다. 내가 기도하니 우리 교회가 안심해도 되는 겁니다. 내가 기도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반드시 축복의 땅이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늘 이런 기도를 하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1954년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여 우리나라 농촌계몽운동에 크게 이바지 하신 김용기 장로님(1909~1988)이셨습니다. 196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막사이사이상(복지부분상)’을 수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장로님의 기도실 앞에는 “조국이여 안심하라!”라는 문구가 써 있었습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말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조국을 늘 가슴에 품고 기도하셨던 영적 배포가 참 크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걸 배포라고 하기보다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나는 약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담대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무모해보일 정도로 대담해지는 겁니다. 믿음으로 선포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큰 산이 있을지라도 그것도 바다에 던져지라 할 그런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든 그대로 될 것입니다. 그 선포한 대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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