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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非凡)한 인생을 살라”

<여호수아 17:14~18> 

 

 

[Audio 말씀]

 

‘평범(平凡)과 비범(非凡)’의 차이는 한 글자 차이지만, 정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평범은 일반적인 것에 만족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비범한 인생은 일반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일반적인 것을 특별하게, 비범하게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 속에서 이 평범과 비범은 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인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의 인생과 같아 평안하고 형통할 때 잠깐 즐거워하다가 위기와 고난이 오면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비관적인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비범한 인생을 살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 위기와 고난을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봅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갖고 계신 또 다른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1. 창조적 개척자가 되라

이스라엘의 시조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왔지만, 평생토록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그의 아들인 이삭도 또 그의 아들인 야곱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열두 명의 아들이 애굽에 내려가 430년을 살았는데 그 기간의 대부분을 노예로 생활했습니다. 모세와 함께 그들은 출애굽해서 40년간은 광야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들은 시조인 아브라함의 소명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약 700년 동안 제대로 된 자기들 소유의 땅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보시면,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속한 요셉 자손이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찾아와서 땅 분배에 대한 불만사항을 내놓은 겁니다. 자신들은 큰 민족이 되었고, 숫자도 많은데 분배 받은 땅이 너무 좁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요구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기적인 요구였습니다. 왜냐하면 12지파가 분배 받은 땅의 지도를 보시면, 요셉 자손들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받은 땅은 그들의 인원에 비해서 다른 지파에 비해서 크면 컸지 그리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므낫세 지파는 요단강 동쪽과 서쪽에 모두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가 제비 뽑아 분배 받은 땅은 가나안 땅의 중심에 속한 매우 비옥한 곡창지대 중에 하나였습니다.

 

15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마음이 온유하고 관대한 성품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는 이기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그들을 책망하기보다는 믿음의 방법으로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각 지파별로 분배 받았지만 그들 안에는 아직도 여전히 정복하지 않은 땅들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에게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산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는 특징 하나가 있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천국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도 안 보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있고,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것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알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이라고 하는 이 땅과 천국이라고 하는 영적 세계, 이렇게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보고, 중국에 가보니 땅이 참 크고, 대단한 나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본 만큼 생각하고, 자기가 들은 만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천국과 같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고 있으니 사고와 시야가 더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개척자 정신’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개척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를 우리는 천재화가로만 알고 있는데, 그는 수학자며 발명가로써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는 새와 박쥐를 보며 끊임없이 인간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고, 평생토록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그가 그린 비행기와 헬리콥터 스케치는 후대의 발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400년 뒤인 1903년 라이트 형제(Wilbur Wright, 1867~1912 / Orville Wright, 1871~1948)는 4년간 수백 번의 실패와 추락을 반복하며 드디어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만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꿈이 현실이 되게 했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아버지는 자주 순회전도여행을 다니는 목사였고, 어린 아들들과 함께 자주 놀아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고무줄 회전날개가 달린 헬리콥터 장난감을 사다 주었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이 장난감을 늘 갖고 놀았고, 이것이 비행에 대한 호기심의 내적 발화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들에게 15절에서도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말했고, 18절에서도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범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남들이 꿈꾸지 않은 것을 꿈꾸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에 가고, 남들이 도전하지 못하는 것에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 도전은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실패했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책임도 무거울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평범한 인생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닌, 비범한 인생을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써져 왔던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향해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바다를 가른 최초의 인물이 되었고, 여호수아와 제사장들이 넘쳐흐르던 요단강에 법궤를 들고 들어갔을 때 흐르던 강물을 멈춘 최초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아무도 거인 골리앗 앞에 나가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나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민족을 구원했을 때 그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 자손들이 분배 받은 땅은 산림이었고, 여전히 강력한 가나안 원주민들이 장악하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척정신은 그 땅의 토양을 바꾸고, 그 땅의 주인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요셉 자손들과 같이 지금의 상황들이 많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제약들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창조적 개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일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그 산지가 비옥해지고, 그 땅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 환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2. 믿음의 관점을 가지라

우리가 평범한 인생이 아닌 비범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들과 환경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16절 말씀을 보시면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요셉 자손은 자신들이 분배 받은 땅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단 그 땅은 자신들의 인원에 비해 너무 좁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산림에 올라가서 개척하라고 했더니, 그 땅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들은 다 철 병거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땅에 들어가 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문화로 넘어가던 시기였는데, 철기를 먼저 접하고 다루던 족속들이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변한 무기도 없었는데 가나안 족속들은 이미 철기 무기와 철병거 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좀 극단적인 비유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나무 칼 갖고 전쟁터에 나갔는데, 적군은 강철로 만든 쇠칼을 들고 나와서 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셉 족속이 겁먹을 만 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 상황은 분명 요셉 족속에서는 불리하고, 부정적인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힘세고 강한 거인족들이 살고 있었던 것은 그 땅이 그만큼 비옥한 땅이었다는 것이고, 거기에 철기 무기들과 철병거를 갖춘 족속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 역시 그만큼 그 땅이 좋은 곳이라는 것의 반증인 것입니다. 그 땅이 황무하면 누가 거길 지키려고나 하겠습니까?

 

18절 말씀을 보시면,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요셉 족속이 불평의 말들을 나열하자 지도자 여호수아는 ‘비록 쓸모없어 보이는 산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면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러시아에서 알레스카 땅이 쓸모없는 얼음 땅이라고 미국에 헐값에 팔아 버리고 지금 얼마나 후회하고 있습니까?

불신앙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거긴 쓸모없는 땅처럼 보일 것입니다. 지금 당장 써먹을 땅이 없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척자들의 눈으로 보면 그 땅의 미래가 달라져 있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필리핀 세부는 사실 굉장히 매력적인 땅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과 비교해 정말 열악할 수 있습니다. 치안도 좋지 않고, 사람들이 걸어 다닐 만한 보도조차도 없고, 교통도 좋지 않고, 어디 쉴만한 공원 하나 제대로 된 것도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깨끗하고 안전한 곳에서 생활하기에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런 상황이 오면, 보건 의료 부분에 염려되는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교민들의 80~90%는 철수했고, 앞으로 예전과 같은 상황으로 회복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현장 예배를 다시 드리고 있지만 나와서 예배드릴 사람이 10명 안팎의 인원 밖에 되지 않은 상황인데, 개척 첫 해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갑자기 마음속에서 ‘지난 7~8년을 정말 힘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한 순간에 개척할 때처럼 돌아갔으니… 어떻게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저를 흔들었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관점을 갖고 바라보기 시작하면 불안한 마음들이 사라지고 오히려 내일에 대한 소망의 마음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직전까지만 해도 세부는 어디에서나 한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었고, 식당을 가도, 카페를 가도, 쇼핑몰에 가도, 거리에서도 한국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 방문객 외국인 1위가 우리 한국인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연관된 많은 한인 사업체들이 생겼고, 교회도 새로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비록 지금은 한국 사람을 보기 힘든 도시가 되었지만, 한국인들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겁니다. 물론 시간의 문제겠지만, 그 때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리고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그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셉 자손들은 지금 안 되는 이유들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패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안 되는 이유들만 나열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는 이유,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본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닉 부이치치(Nicholas James “Nick Vujicic”, 1982~)’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 때문에 고통스런 성장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목사인 부모님은 언제나 ‘닉, 너는 정말 특별해. 하나님은 너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실 거야’라고 수도 없이 얘기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전 세계를 다니며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위로와 도전을 주며 팔다리 건강한 일반인들도 해내지 못하는 엄청난 역사들을 써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고 싶어요. 우리는 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아름다워요.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당신은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가 넘는 262만 명 가량이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주변에는 신체장애로 고통을 겪는 적지 않은 분들이 계십니다. 신체장애로 보자면 닉 부이치치는 1급 장애일 겁니다. 그러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제약들이 따르겠습니까?

그와 같이 절망적인 조건을 갖춘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은 ‘낙심, 절망, 포기, 비관…’과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비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그 일반적인 반응에서 그 상황을 비범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릴 때 팔다리가 없는 외계인이라 놀림 받는 것이 고통스러워 자실 시도도 여러 번 했었는데, 다르게 생긴 자신을 특별하게 보고, 아름답게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를 비범한 인생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범한 인생에 머무느냐? 비범한 인생을 사느냐? 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만 바뀌어도 우리의 인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정말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대가 되고 소망적인 미래보다는 우울한 전망으로 낙심과 절망이 반복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당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환경들을 믿음의 관점으로 바라보십시오. 우리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의견과 예상에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들의 의견일 뿐입니다. 지금 이 상황 속에 있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믿고, 이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관점으로 전환하십시오. 그렇게 그 관점 하나만 바뀌어도 우리는 평범한 인생을 넘어 비범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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