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9:31~35>
[Audio 말씀]
누구에게나 낮과 같이 바쁘고 활발하게 움직일 때가 있고, 밤과 같이 앞이 어두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그런 시기를 인생 속에서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낮은 우리 인생의 전성기와 같고, 밤은 우리 인생의 고난과 시련의 때와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가 어두운 밤이 왔다고 절망과 낙심 속에 그 밤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밤은 지나가게 될 것이고, 또 어쩌면 그 밤을 잘 보내야 내일을 더 잘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밤을 고민 속에 뜬 눈으로 새거나, 복잡한 마음에 잠을 설치게 된다면 다음날 컨디션은 엉망이 될 거고, 그러면 나에게 온 새로운 한 날을 우리는 망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찾아온 인생의 밤을 잘 보내야 합니다. 그 인생의 밤을 잘 보내면 우리가 바라던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 온 인생의 밤을 헛되이 보내면 그 인생은 실패와 절망만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결혼도 했고, 남편도 있고, 자식까지 낳은 한 여인이 인생의 깊은 밤을 보내고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생의 깊은 밤을 만난 이 여인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찾아온 인생의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주님은 보시고 들으신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야곱의 가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았습니다. 화가 난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고, 야곱은 900km 나 떨어져 있는 밧단 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외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라헬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7년 동안 무보수로 외삼촌의 양떼를 돌보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7년 만에 혼인을 하게 되는데, 외삼촌에게 속아서 어쩌다 보니 라반의 첫째 딸인 레아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은 첫째보다 둘째를 먼저 시집보내는 일이 없다는 그 지역의 풍습을 핑계로 야곱을 속였지만, 사실은 성실한 무보수 일꾼인 야곱을 영원한 종으로 부리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둘째 딸인 라헬을 사랑해서 7년을 무보수로 일했고, 그렇게 고생고생을 해서 얻은 신부였는데 의외의 사람을 신부로 맞게 된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화가 난 야곱은 신부 레아를 장막에 두고 장인인 라반에게 찾아가 소리를 지르며 따지게 됩니다.
외삼촌 라반은 ‘7일 뒤에 둘째 딸 라헬을 줄 테니 앞으로 7년을 더 일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7년 동안 다시 외삼촌을 위해 노예처럼 무보수로 일하기로 약속하고 7일 뒤 그토록 바라던 라헬과의 혼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오랫동안 야곱은 동생 라헬을 좋아했던 것을 레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 전후문맥을 통해 볼 때, 레아도 야곱을 사랑했고 늘 야곱에게 사랑 받고 싶었던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방향 사랑이었습니다. 결혼까지 했기 때문에 이제 남편 야곱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레아는 사랑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는 겁니다. 반면에 야곱의 사랑을 받고 살았던 라헬은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서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은혜를 내려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좋은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데, 재정적인 것이 넉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돈은 많은데 부부 사이에 늘 갈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꽤 큰 성공을 거뒀는데, 그 성공을 물려줄 자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착하고 좋은 자식들은 있는데, 그 자식들을 지원해 줄 물질적인 능력이 따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좋은데, 다른 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것은 언제나 상대적입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불평하고 남들이 갖고 있는 것만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며 사는 삶은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햇빛을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도 내려 주시듯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시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받는 대신 임신이 되지 않았고,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에게 아들을 주셔서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시면,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고대 사회 속에서 후손을 잇는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여인에게 있어 가장 큰 복 중에 하나였습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고 ‘보라’는 뜻의 ‘르우’라는 말과 ‘아들’이란 뜻의 ‘벤’을 합쳐서 첫째 아들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은 ‘보라 아들이다’라는 레아의 기쁨의 외침이 담긴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던 여인 레아에게 이 출산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습니까? 침소에 잘 오지 않던 남편이 그 아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레아의 침실에 더 자주 오지 않겠습니까? 남편의 얼굴을 닮은 그 아기가 웃는 모습 때문에 자신에게 무표정 하던 남편의 웃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자주 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32절 하반절에서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고 하는 레아의 말을 통해서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얼마나 얻고 싶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33절입니다.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레아는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낳고 ‘듣다’는 뜻인 ‘시므온’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런데 중반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레아는 첫째 아들 르우벤을 낳아 주었으니, 이제는 남편과의 관계가 좀 더 가까워지고, 남편의 사랑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야곱은 그 이후로도 동생 라헬의 처소에만 가 있는 것입니다. 레아는 사랑 받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34절입니다.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레아는 셋째 아들을 낳고 ‘연합’이란 뜻으로 ‘레위’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 역시도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소망을 담고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아 주었으니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겠지. 이제는 나에게 마음을 주겠지. 이제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겠지. 이제는 나도 남편과 행복할 수 있겠지. 나도 이제는 이 깊은 인생의 밤을 끝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정에서 사랑 받지 못했던 불쌍한 여인 레아는 남편 야곱과 그의 사랑을 독차지한 라헬 중에 가장 빛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레아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련과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큰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우리 안에 모든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시련이 있었고, 그 인생의 깊은 밤을 믿음으로 보낸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았던 것입니다.
레아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야곱과 그의 사랑을 독차지한 라헬이 몰랐던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31절에서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32절에서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고,
3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구절 속에서 두 가지 의미의 단어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아들 르우벤의 이름 속에 담긴 ‘보다’라는 말과, 둘째 아들 시므온의 이름의 뜻인 ‘듣다’라는 단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받지 못하는 여인 레아의 불쌍한 모습을 보시고 계셨고, 사랑 받지 못해 인생의 깊은 밤을 신음하며 부르짖었던 레아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에는 ‘깊은 밤’과 같은 시련과 고난의 날들이 찾아옵니다. 저의 인생 속에도 육체적인 질병으로,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억울하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교회를 개척하면서도 여러 가지 면으로 힘든 고난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마치 밤에 어두워서 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이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은 것처럼 코로나로 인해 한 해를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교회 와서 빈 교회를 둘러보고, 기도를 하지만 성도들이 대부분 철수해서 적막하기까지 한 넓은 예배당의 좌석을 볼 때마다 지금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순간순간 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낙심되게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저와 우리 교회만의 상황이겠습니까? 이곳에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사업 하시던 우리 성도들은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았고, 직업을 잃었고, 모든 것들을 헐값에 팔고, 재정적인 큰 손해를 입으면서 한국으로 철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든 필리핀으로,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싶으시지만 이 사태가 언제 잠잠해지게 될지, 언제 외국인 입국이 허용이 될지… 무엇 하나 소망적인 것이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받지 못하던 여인 레아가 어떤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 하나님은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계신다.
– 하나님은 나의 억울함을 보시고 계신다.
– 하나님은 나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계신다.
– 하나님은 나의 원통함을 들으시고 계신다.
– 하나님은 나의 신음 소리와 고통 소리를 듣고 계신다.
– 하나님은 돌아보시고,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 하나님은 내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내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주님은 지금 인생의 밤을 보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시고,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2. 너는 찬양하게 될 것이다
남녀가 너무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함께 가정을 꾸려가며 살아갈 지라도, 살면서 여러 가지 갈등들도 생기고, 그 사랑이 변하지 않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남편 야곱은 원하지 않던 결혼을 했고, 레아는 짝사랑하던 야곱을 속이면서까지 법적인 배우자가 되었으니 이 결혼생활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겁니다. 또 남편 야곱은 7년 동안 동생인 라헬 한 여자만 바라보며 살아온 순정남이었습니다. 레아는 그런 남자의 마음이 바꿔지길 바랐던 겁니다. 하지만 이성에 대한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바뀔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레아가 아들들을 낳으면서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모두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관계가 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니, 레아는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고 믿음의 방법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레아의 안타까운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들 르우벤은 ‘보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시고 아들을 주셨다는 믿음이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런데 32절 하반절에서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을 통해 남편의 사랑을 얻고 싶었습니다.
둘째 아들 시므온은 ‘듣다’는 뜻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33절에서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 하나로는 부족하니깐 아들 둘을 주셔서 야곱에게 사랑받게 하려 하셨다는 자신의 기대와 소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셋째 아들의 이름은 ‘연합’이란 뜻의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34절에 보면,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는 레아의 모습이 나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갈망했고 그래서 모든 초점이 남편에게만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얻으면 모든 것을 다 갖게 되고, 인생의 진정한 만족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늘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면서, 철학자 그리고 수학자였던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수학영재였습니다. 이미 열아홉 살에는 세계 최초의 계산기를 발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한 『파스칼의 팡세』는 전 세계인들에게 유명한 그의 책이기도 합니다. 그의 팡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여자를 영원히 사랑할까? 아니다. 그 여자의 미모를 빼앗을 작은 흠에 의해서도 그 사람은 그 여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남녀 간의 사랑이 영원하고 완전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에게 어떤 작은 흠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철학자와 심리학자이기도 한 파스칼은 인간의 사랑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25세 때는 진공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하였는데, 1년 뒤에 고도에 따른 수은기압계의 높이 변화 현상을 통해 진공의 존재를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진공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그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 즉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공백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물리적으로 입증한 진공의 존재외에도 사람의 마음에는 영적 진공 즉 하나의 영적 공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 의해 채워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의 물질과 돈과 먹을 것과 성공과 권력과 명예에 의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두신 공백은 오직 영이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절 말씀을 보시면,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레아는 첫째 아들부터 셋째 아들을 낳으면서 계속적으로 남편의 사랑을 갈구합니다. 모든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 있었고, 아이를 낳으면 이제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넷째인 유다를 낳으면서 레아의 마음이 처음으로 남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은 ‘찬송’이란 뜻입니다. 사람에겐 외면 받고 심지어 남편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 버림받은 인생 같다고 생각한 자신을 버리지 않고 보시고,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아들들도 낳게 하시고, 위로하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레아의 노래] 라는 찬양 가사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야곱은 날 외면하여도 주님은 날 보아주신다
야곱은 날 무시하여도 주님은 날 들어주신다
야곱은 날 떠나갔지만 주님은 다만 안으신다
야곱은 날 인정 안해도 주님은 나만 인정한다
세상은 날 외면하여도 주님은 날 보아주신다
세상은 날 무시하여도 주님은 날 들어주신다
세상은 날 떠나갔지만 주님은 다만 안으신다
세상은 날 인정 못해도 주님은 나만 인정하네
Shout of the 유다 내게 행복을 주신 분께
Shout of the 유다 날 사랑한다는 분께
Shout of the 유다 나를 좋아하시는 분께
Shout of the 유다 유다 유다 유다
(브릿지)
너는 아주 특별해 아주 많이 특별해
사람들이 뭐래도 너는 내게 특별해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레아가 낳은 그 유다라는 아들에게서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성왕 다윗이 태어나고, 그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에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밤을 걷고 있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고, 안아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으십시오. 지금 이 고통을 지나 우리는 우리를 돌보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