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회복하는 길

느헤미야 5:6~13

6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7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8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9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10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11 그런즉 너희는 그들에게 오늘이라도 그들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집이며 너희가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라 하였더니

12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기로 내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게 하고

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철강회사인 H-제철에서 올해 시작부터 대규모 파업 사태가 있었습니다. 파업의 이유는 성가급을 포함한 연봉을 올려달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회사 평균 연봉을 검색해봤더니 계약직과 임원을 제외한 직원의 평균 연봉이 약 1억 원 정도 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연봉이 그 정도면, 그런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을 그리고 많은 연봉을 받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할 거 같은데, 파업을 하는 게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만의 어떤 이유가 있었으니 파업을 하고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제삼자가 보기엔 ‘집단 이기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었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노조에서 파업을 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회사에서는 월급을 줘야 하는 ‘노동자 우선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대기업들이 노조와 파업이 무서워서라도 그런 거 없는 외국에 공장을 짓게 될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입법자들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정치에 임해주길 기도해야겠습니다.

어제 말씀인 느헤미야 5장 1~5절을 통해서 <공동체를 허무는 적>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이기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매정함’이라 했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떤 이기심과 매정함은 그들이 딛고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 그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이기심과 매정함이 그 공동체 안에 생겨났을까요? 그것은 오늘 말씀의 제목인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한마음으로 지난 몇 주 동안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 재건에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둘레가 약 3km 정도 길이의 성벽 공사는 이제 중간 정도까지 쌓았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지지부진했고, 실패했고, 중단되었던 성벽 공사가 지난 몇 주 동안은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었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그 일에 집중을 했다는 얘기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5장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1~5절의 내용을 보면, 그 해에 흉년으로 백성들은 식량난을 겪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왕에게 바칠 세금은 정확히 바쳐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백성들은 돈 많은 부자들과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많은 이자를 내며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돈을 빌릴 때,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혔었고, 그것을 갚지 못 할 경우에 딸은 채주의 성적 욕구를 채워줄 종으로, 아들은 노예로 팔려가야 했던 것입니다.

6절과 7절을 보시면,
“내가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하고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이 사건이 다른 민족, 다른 나라도 아닌 여호와 신앙 중심의 신정 왕국으로 시작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느헤미야는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어 크게 진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을 하고 있는 귀족들과 관리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크게 책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페르시아의 노예로 살아가던 형제들을 어떻게 건져내 다시 찾아왔는데 그 형제들을 갖고 ‘다시 종으로 사고 팔 수 있는가?’라고 책망했더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9절을 보시면,
“내가 또 이르기를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이런 모습을 보며, 이방인들이 요즘 말로 ‘예수 믿는 자들이 더 독하다’라는 말을 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웃을 거 아니냐? 라는 말입니다.

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 즉,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면, 그 공동체는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으로 신앙 생활한다면, 어찌 교회 내에서 불신자들 세계에서 있을법한 그런 말들과 태도와 행동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런 모습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회복하는 첫 번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대로 순종하라. 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2장 25절을 보시면,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율법의 정신은 긍휼과 사랑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버지의 한 형제와 자매라는 공동체임을 잊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귀족들과 관리들이 앞서서 고리대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에도, 학교에도, 직장에도, 교회에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함께 지켜줘야 할 ‘룰(rule)’이란 게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누군가가 그 룰을 깨뜨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하는 정치인이 그 룰을 어기면서도 잘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직종 1위가 정치인인 것입니다. 정치인이 법을 어기는 비율이 높을수록 그 사회, 그 공동체는 점점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부패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공동체가 다시 회복하려면, 사람들이 룰을 지켜 나가고, 법을 지켜 나가고, 원칙을 지켜 나가면 그 사회가 다시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율법을 더욱 모범적으로 지켜야 할 귀족들과 관리들을 책망하며 그들에게 결단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때, 가장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우리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으로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공동체를 회복하는 두 가지 요소를 기억합시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둘째, 말씀대로 순종하라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때, 가장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속한 공동체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