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light

  • 궁핍과 풍요 사이에서

    궁핍과 풍요 사이에서

    출애굽기 16:1~5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과 언어라는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께서도 한글인 훈민정음을 만드시고, 세종실록에 “지혜로운 사람은 반나절이면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게 된다.”라고 기록해 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언어든 그렇겠지만 우리가 잘못 이해 하거나, 잘못 사용 하는 경우도 있는 거 같습니다.

    여러분, ‘잘살다 & 못살다’ 그리고 ‘잘 살다 & 못 살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잘살다 & 못살다’는 ‘부와 가난’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보통 자주 쓰는 표현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 사람 잘살아 또는 저 사람 못살아’라고 할 때, ‘저 사람은 부자야, 저 사람은 가난해’ 라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그런데 한 칸을 띄어 쓰기 를 하면서 ‘잘 살다 & 못 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삶(Life)’에 관한 겁니다. 어떤 부부 가 돈이 많아도 사이가 안 좋으면 잘 사는 게 아닐 겁니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 해주는 부부는 잘 사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부와 영광을 얻었지 만 우울증으로 매일 고통 속에서 산다면 잘 사는 게 아닐 겁니다. 반면에 크게 성공한 삶은 아닐지라도 주어진 것에 감 사하며 매일 매일 작은 행복을 누린다면 잘 살고 있는 겁니 다.

    하지만, 사람들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자본주의 사회 에 살다 보니 ,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잘 사는 거고, 돈이 없 으면 못 사는 걸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렸던 두 가지 의미 가 의미는 전혀 다른데 ,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이걸 하나처럼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궁핍할 때가 있지만, 풍요로울 때도 있습니다. 풍요로울 때도 있지만, 때로 그 많던 재물이 다 날아가 궁핍 한 삶을 살아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은 ‘궁핍’과 ‘풍요’라는 게 항상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궁핍과 풍요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오늘 말씀을 통 해서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1. 궁핍이라는 시험

    출애굽을 한 뒤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여 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 에 나눴던 출애굽기 15장 22~26절까지는 <마라의 쓴 물 사 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마실 물을 찾지 못해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야는 연중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곳 이었기 때문에 시내와 강 또는 호수와 같은 것도 없었고, 마실 물 역시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 마라의 쓴 물을 치유 하시고,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라에서 두어 시간을 가니 그곳에는 사막의 거 대한 오아시스인 ‘엘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래서 그들은 그곳 엘림에 장막을 치고 여러 날을 (출15:27). 머물렀습니다.

    오늘 본문인 16장은 그들이 오아시스 엘림에서 시내산으로 이동하던 그 중간쯤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1절에 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란 날짜가 나오는데, 그 들이 첫째 달 15일에 출애굽을 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지 한 달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출애굽한지 한 달쯤 되니 그들이 출애굽시에 가지고 나 온 모든 식량이 다 떨어졌던 것 입니다. 그런데 광야 한 가운데 있었던 그들이 아무리 둘러봐도 그 어디에서도 먹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정만 60만 명인 대인원이 먹을 엄청난 양의 식량을 그 광야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군인 의 수가 작년 기준으로 46만 명이 조금 넘는데, 우리 군인들의 하루 급식비가 13,000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국군 장병 46만 명의 단 하루의 식비가 약 60억 원이란 계 산이 나오는 겁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자녀와 가족들까지 합한다면 약 200~300만 명 이나 되었는데, 그 대인원이 어디에서 그 많은 음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기 16장 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 하여”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 있으니 백성들이 모세와 아 론을 원망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 그 들이 어떻게 원망했습니까?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 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겁니다. 애굽 주인들의 고기 가마 곁에 앉아서 주인집 식구 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다가 거기서 떨어지는 찌꺼기 주워 먹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겁니다.

    잘 안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항상 그 기준을 낮 은 곳에 두고 있고 , 그런 생활을 늘 그리워한다 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는 것만큼만 꿈을 꾸고, 결국 자기가 바라 보는 것을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기준과 수준이 낮으면, 그 이상의 삶을 살기가 어려운겁니다.

    그런데 잘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기준을 항상 높은 곳에 두고 살더라 는 겁니다.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눈만 높은 건 문제가 있겠지만, 보통 기준을 높게 잡고 사는 사람들은 쉬지 않습니다. 잠잘 만큼 다 자고, 놀 만큼 다 놀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무절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관리와 자기 절제 그리고 무 한한 노력의 삶을 삽니다. 그러면서 그 높은 기준을 향해 나 아가다 어느 날 보니, 그 근처에 가 있더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 그들은 아버지의 아버지 때로부터 계속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왔습니다. 자신도 태어나 보니 신분이 가축과 동급인 노예였던 겁니다. 얼마나 비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겠습니까? 애굽의 주인들은 히브리 노예들이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구타하고, 죽이기까지 해 도 누구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습니다. 내 자녀도 그 주인 의 몸종으로 살아야 하고, 인격모독과 폭행과 성추행과 온 갖 육체적 감정적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출애굽을 통해서 짐승보다 못했던 그 비참하던 노예 생활을 벗어나 자유의 신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 가마 곁에서 그 가마에서 떨어지는 찌 꺼기를 주워먹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중에 먹을 것이 떨어진 ‘궁핍이라는 시험’ 앞에서 그들은 다시 원망하고, 불평하고, 과거의 그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배 불리 먹을 수 있는 밥 한 끼와 ‘자유’를 바꿔 먹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우리도 궁핍이라는 시험이 올 때, 이렇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여기 필리핀에서 사업하시며 현지 직원들을 고용해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 일 좀 잘 가르쳐두면 어디서 1천 페소 월급 더 준다고 하면 그동안의 정과 신의 같은 것 들은 내팽개치고 당장 이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반도체와 전자제품이 세계 1위인데, 요즘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뉴스가 대기업의 연구원, 엔지니어들이 연봉 두 배를 받고 중국에 기술을 넘겨주고 있다는겁니다. 누구라도 연봉 두 배 준다고 하면 흔들릴 거 같습니다. 필리핀 노동자와 한국 사람의 연봉에는 차이가 크겠지만, 물질 앞에서, 궁핍의 시험을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걸 보여 주는 겁니다.

    우리 앞에 있는 ‘궁핍이라는 시험’을 넘어설 때, 궁핍을 넘어서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하지만, 그걸 넘지 못하면 평생 물질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 내내 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지내다가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못 들어갔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그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2. 풍요라는 시험

    어떤 성도님들은 ‘목사님,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돈을 달 라고 기도해도 될까요? 제가 너무 세속적인 걸 구하는 걸까 요?’라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잠언 30장 말씀 중 에 ‘아굴의 기도’라는 게 있습니다. 아굴이라는 사람이 하나 님 앞에 재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기도 했었습니다.

    잠언 30장 8절, 9절에서
    “…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 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 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부자가 되게도, 가난하게 되게도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이유가 아무 걱정 없고 배가 불러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걱정이 되었고, 너무 가난하여서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그것이 걱정되어 매일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겁니다. 기도했던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남자 집사님과 교제하다가 들은 얘 긴데, 우리 집사님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 이 평생 고기집을 하며 신앙으로 사셨던 어머니라고 하십니다.

    어머니께서 식당에 직원을 한 명 고용했는데, 어느 날 보니 자꾸 고기가 비는 것 같더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깐 새로 들어온 직원이 조금씩 몰래 갖고 갔던 겁니다. 그 사 실을 아신 어머니가 그 직원 입장에서 생각해 봤는데, 그 직원이 자식들이 있는데 엄마가 늘 일하고 돌아오면 옷에서 고기 냄새가 풀풀 나고 그랬으니 자식들은 ‘엄마는 좋겠다 매일 고기 먹어서…’ 이렇게 생각할 거 같더랍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자식들이 눈에 밟힌 엄마가 식당 고기에 손을 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집사님의 어머니가 그 이후부터 남는 고기가 있으면 다 싸서 그 직원 퇴근할 때 챙겨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이후부터 고기도 안 없어지고, 직원이 손님들 응대도 더 잘하고, 더 열심히 일하더랍니다.

    우리 집사님 어머니가 참 훌륭한 분이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자란 우리 집사님의 마음에도 그 어머니의 신앙의 본을 따르려는 마음이 늘 있다는겁니다. 이렇게 ‘궁핍이라는 시험’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겁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굴의 기도 포커스는 ‘돈’이 아니었고, 하나님 앞 에서 ‘믿음과 신앙’이었던 겁니다. 여러분이 돈을 구하되 얼마든지 많이 구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돈을 구하는 목적이 기도의 목적이 되지 않고,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아야 하는 겁니다.

    나는 우리 성도님들이 성공도 하고, 돈도 많이 벌기를 늘 기도하지만 물질과 성공이 믿음보다 앞서지 않고, 신앙보다 앞서지 않기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정작 돈을 벌었는데, 성공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배불리 먹을 밥 한 그릇에 신앙을 팔아먹으면 안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시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 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 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날마다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만나는 쌀도 밀도 아니지만, 쌀이나 밀처럼 찧어서 가루로 만들어 떡도 만들고, 빵도 만들 수 있는 신 비한 양식이었습니다.

    만나는 매일 밤과 새벽에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게 되고, 백성들은 밖에 나가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둬야 했습니 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규칙이 있었습니다.

    [만나 사용 규칙]
    첫째, 매일 일용할 것만 거두어라.
    둘째,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말라.
    셋째, 안식일 전날엔 두 배를 거둬라.

    만약 욕심을 부려 더 많이 거두게 되어도, 다음 날 아침이 면 그 만나는 썩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래서 매일 필요한 양만큼만 만나를 거둬야 했습니다. 이것 은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할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내일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이 왜 안 들겠습니까? 그래서 더 많이 거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생겼던 겁니다. 하지만, 다음 날 만나는 썩어서 먹을 수가 없었는데, 여지없이 매일 아침마다 만나는 땅에 덮여 있었습니다. 40년간 매일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훈련 시키셨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 개척에 대한 사명과 비전을 받게 되었을 때, 제가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통 해 크게 도전되었던 말씀이 “교회 개척은 돈 갖고 하는 것 아니다. 교회 개척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 때문에 교회 개척 사명에 순종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섬겼던 교회가 경기 북부에서는 가장 큰 교 회였기 때문에 그런 교회에서 10년간 부목사로 섬기던 저의 마음 저 아래쪽에서는 ‘그래도 큰 교회에서 좀 도와주시면 안 되나?’라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 만, 그런 기대와 달리 교회에서 파송식은 해 주셨지만, 물질 적으로 그리 크게 지원을 해 주시거나 그러지는 않으셨습니 다. 저는 정말 돈 갖고 하는 개척이 아닌, 믿음으로 개척을 도전해야 했고, 오늘 우리 교회가 그 위에 세워진 겁니다.

    물론 교회 개척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매일 매일 하늘의 만나를 바라보듯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할 수 없었고, 견뎌 낼 수 없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면, 매일 공급해 주시고 역사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으로 매일 주님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만약 넉넉한 지원 속에 물질 걱정하지 않고 개척을 시작했다면 어쩌면 저는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물질을 의지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 에 저처럼 목사라고 할지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때문 에 저는 매일 기도하고 또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세부라는 지역의 특별한 목회 환경은 저로 하여금 더 기도하고 더 주님만 의지하게 훈련시켰습니다. 거주 기간이 짧기 때문에 만남과 헤어짐을 늘 반복하는 곳이고, 일꾼 한 사람이 세워지는 게 얼마나 힘들고 귀한 것인지를 철저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했다 싶으면 멤버들이 바뀌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사역해야 하는 일을 늘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매일 기도하지 않고, 매일 만나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듯 매일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어찌 이 사 역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돈 갖고 하는 개척이 아니라 믿음으로 세우는 교회 개척을 위해 저를 이 땅에 보내셨구나… 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때문 에 처음 시작은 어려웠지만 , 그 사이 하나님께서 저를 더 단단하게 하시고, 성장시키셨으니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누가 돈 넉넉하게 대 주고, 모든 환경이 다 갖춰져서 뭐든 시작하면 좋을 거 같지만 영적으로 보자면 사실 ‘풍요’라는 게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닙니다. 풍요는 어쩌면 우리에게 엄청난 ‘시험’일 수 있습니다. 자칫 하나님 없는 풍요는 나에게 더 해로운 독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궁핍이라는 상황에 놓일 때 그리고 풍요라는 환경에 놓을 때 ‘궁핍과 풍요’라는 것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그 환경을 감사하며, 누리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13절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
    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궁핍과 풍요 사이에서” – 새로운 역사를 써가게 하소서(10)
    (출애굽기 16장 1~5절)

    1. 궁핍이라는 시험
    2. 풍요라는 시험

  • 내 입에서 나오는 말

    내 입에서 나오는 말

    시편 109:6~20

    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16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17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19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20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다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다윗이 1~5절에서 고백했던 바와 같이, 거짓과 악한 말로 의로운 다윗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습니까? 누군가의 말한 마디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엄청난 상처와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의 말과 긍정적인 말과 선하고아름다운 말을 통해서 누군가는 큰 힘을 얻고, 소망을 갖게되고, 다시 일어날 능력을 얻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가족에게 무심코 했던 말한 마디가 평생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이 병든 엄마의 말 한 마디는 자녀의 평생에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기억한다면 우리는 더 신중하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09편 6절을 보시면,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다윗은 악한 자들이 온갖 악한 말로서 까닭없이 그를 고통 속에 빠뜨리고, 괴롭혔지만 그는 4절에서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라고 고백하며,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하지만, 6절부터 갑자기 다윗의 감정이 요동치며 방금전, 사랑으로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악인들을 향하여 온갖 저주를 퍼붓는 사람으로 격변한 거 같은 겁니다. 하지만, 6~15절까지의 마치 저주와 같은 내용은 다윗이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 감정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호소하는 장면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부분은 마음에 악이 가득하고, 사탄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결국 일어날 일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 죄인으로 심판받게 된다(7절)
      • 수명이 짧아 직분을 뺏긴다(8절)
      • 가정이 파탄 난다(9절)
      • 자녀는 빌어먹고 산다(10절)
      • 고리대금 하는 자가 소유를 다 뺏는다(11절)
      • 누구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12절)
      • 자손이 없이 대가 끊긴다(13절)
      • 그의 죄가 대대로 기억된다(14절)
      • 하나님 앞에 영원한 죄인이 된다(15절)

      왜 이들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요? 16절에서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궁핍하며 마음이 상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는데, 악한 자들은 긍휼을 베풀지 않고 도리어 약자들을 더 괴롭히고 고통을 줬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7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고 도울 때, 나도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누군가를 불쌍히 여겼다면 내게 도움받은 그 사람이 내게 은혜를 보답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9편 17절을 보시면,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17절부터 시작해서 20절까지는 악인들의 특징이며, 그들의 장기라 할 수 있는‘말로서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만들어놓으신 하나의 질서를 이구절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우리가) ‘어떤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한다’라는 것입니다. 저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기가 뱉었던 저주의 말이 자신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않았더니 그 복이 그 사람에게서 멀리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우리가 어떤말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누군가를 저주하기를 좋아하면 그 저주가 나에게 임하고,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며 축복하기를 싫어하면 복이라는 게 나에게서 점점 더 멀리 떠나버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기를 좋아하면 그 축복이 나에게 임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열아홉 살에 예수님을 믿으면서 첫 번째로 변했던 것이 제 입에서 ‘욕’이란 게 사라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앙이 점점 성숙해 가면서 ‘부정적인 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지금도 자주 실수도 하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제입에서 누군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이 나올 거 같으면 그냥 입을 닫고 침묵합니다. 일단, 부정적인 말이든, 누군가를 험담하는 말이든… 시작되면 우린 연약해서 잘 멈춰지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미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복을 받으며 살아갈지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내 입의 열매를 먹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선한 말을 통해 동일한 열매를 먹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성경은 이미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복을 받으며 살아갈지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내 입의 열매를 먹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버려야 할 말의 잘못된 습관이 무엇이 있을까요?

      1. 말로 고통당할 때

        말로 고통당할 때

        시편 109: 1~5

        1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오늘 본문인 시편 108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언제 다윗이 이 시를 기록했는지는 구체적인 때와 사건은 알 수 없지만, 이 시의 전체 내용은 그가 ‘누군가의 말로 크게 고통 당할 때’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여덟 형제 중에서 막내였지만, 사무엘 선지자가 그를 차기 왕으로 기름 부음으로 가정에서도 형제들의 시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가 소년 목동의 신분으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임으로 민족을 구원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의 시기의 대상이었고, 심지어 당시 왕이었던 사울이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그가 왕이 된 이후에도 그는 까닭없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았고, 수많은 거짓과 루머 그리고 저주의 말로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2절을 보시면,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어떤 사람들의 입은 정말 ‘악한 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입만 열면 거짓을 말하고 그래서 나를 곤란에 빠뜨리고, 나와 좋은 관계에 있던 사람들하고 이간질을 시키기도 하고, 결국 나에게 큰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그 악한 자의 입은 내게 거짓을 말하며 나를 속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악한 말로서 나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겁니다.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라 는 표현을 보면, 이 자는 온갖 거짓과 악한 말을 퍼뜨리고 점점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이 정말 억울한 것은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다’라는 겁니다. 다윗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저 사람이 나에 대해서 왜 저런 말을 퍼뜨리고 다니지? 내가 저 사람한테 무슨 잘못을 했나?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도대체 이유가 뭐지?…’ 이런 생각을 해 보는데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야 ‘하나님께 징계와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고난의 이유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렇게 어떤 사람들이 까닭없이 나를 괴롭히고, 나에 대해서 온갖 거짓과 루머를 퍼뜨리고 다닌다고 할 때에는 얼마나 억울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을 했다면 하나님께 범죄한 거지, 나는 저 사람한테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두세 사람이 저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여러 가지 거짓과 루머를 만들어 퍼뜨려서 제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고, 그 거짓과 루머의 진원지를 알게 된 이후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제 마음속에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악할 수 있지?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나? 저 사람은 진짜 크리스천이기나 하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 속에 누군가에 대해서 가장 분노하고, 가장 큰 미움을 갖고 있었던 때였던 거 같습니다. 물론, 나중엔 그 모든 억울함도 벗어지고, 그 일로 인해 제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4절을 보시면,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우리 크리스천들이 때로는 참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그 악한 상대방은 온갖 거짓과 악한 말과 저주의 말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데, 나는 그에게 똑같이 퍼부을 수도 없고, 똑같이 온갖 악하고 거짓된 말을 퍼뜨릴 수도 없다는 겁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원수까지도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대응할 수가 없는 겁니다.

        다윗은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만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5절을 보시면,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라고 다윗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과거 다윗은 그에게 선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는 악으로, 미움으로 되돌려 주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그 배신감이 크겠습니까?

        물론, 모든 상황이 다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억울하다고 그 상대방과 싸우는데 너무 감정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잠언 23장 9절에서도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옳고 바른말을 해줘도 절대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른말을 한 나를 미워할 겁니다. 그것때문에 또 다른 다툼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시편 109편 1절에서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때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사람하고 싸우는데 여러분의 감정과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말로 고통스럽지만 그들의 말이 진실도, 진리도,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 ‘거짓’일 뿐입니다. 그들의 말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인을 벌하시고, 기도의 사람 편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다윗처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사람하고 싸우는데 여러분의 감정과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말로 고통스럽지만 그들의 말이 진실도, 진리도,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 ‘거짓’일 뿐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가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승리의 게임 체인저

        승리의 게임 체인저

        시편 108:7~13

        7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8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9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10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1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2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3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져 수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심하게는 죽어 나가던 시기에 『게임 체인저 (Game Changer)』란 말이 종종 들렸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개발된 게 없고, 매일 전 세계 각국의 바이러스 감염자 통계, 사망자 통계는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증거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뒤집을 ‘게임 체인저’ 같은 뭔가가 필요했던 겁니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란 말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사람,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소 또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2022년 2월부터 계속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중간 중간 미국이 어떤 강력한 무기를 제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미디어들은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을 뒤집을) 과연 그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인가?’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8편 7~13절까지의 말씀은 다윗의 시인 시편 60편에서 발췌된 부분과 같습니다. 시편 60편의 시제를 보면,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명을 죽인 때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무엘하 8장에 역사적 기록이 있는데, 에돔과의 전쟁 초반 이스라엘이패배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다윗이 올려 드렸던 기도였습니다.

        7절부터 9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서 말씀하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소에서 이 전쟁을 앞두고 기도했었던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신 내용이 7~9절이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변국들로부터 침략과 약탈을 당하던 이스라엘 땅의 여러 지역뿐만 아니라, 모압과 에돔 그리고 블레셋과 같이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여러 나라들까지도 다윗에게 붙여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들은 하나님의 소유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고, 잦은 침략과 약탈이 있었던 주변국과의 전쟁에서는 다윗의 편에서 대신 싸워 그들을 다윗에게 붙여주신다는 응답이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 이 구절은 다윗의 독백과 같은 말입니다. 다윗은 분명 승리에 대한 응답을 받았지만 그 전쟁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길 원했지만, 에돔은 난공불락과 같이 강했고, 그 전쟁을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안 되기에 에돔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돕지 않으시는 거 같았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시면,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다윗은 이 구절에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간절히 바라며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고, 약속의 말씀을 언약으로 받고 어떤 일을 시작을 한다고 해도 그 일에 항상 형통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돕지 않으시는 것같고, 점점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그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이 점점 커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12절에서 끝까지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도움과 구원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참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거듭확인하고 확신하며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믿음을 버린다면 그런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내 감정과 어떤 상황과 조건이 어떻게 되든 끝까지 변함
        없이 믿는 것이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13절의 말씀을 [쉬운성경]의 번역으로 보시면,“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적들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다윗이 믿고 있는 승리의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반드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확신하고 있는 [승리의 게임 체인저]는 하나님의 개입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 개입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불쑥 찾아온 고난과 시련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지만 그것 역시 큰 기대가 될 수 없음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속에는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과 염려가 점점 더 크게 자라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다윗처럼 ‘승리의 게임 체인저’가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개입하시는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시
        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실 때, 이 상황은 역전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다윗이 믿고 있는 승리의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반드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확신하고 있는 [승리의 게임 체인저]는 하나님의 개입뿐입니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해 주시길 바라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1. 흔들리지 않는 구원

          흔들리지 않는 구원

          시편 108:1~6

          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6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미국이란 나라는 GDP 대비 소비 비중이 약 70%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입니다. 인구는 약 3억 4천만명이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수입시장입니다.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 1위가 미국이고, 2위가 유럽연합이고, 3위가 인구 14억의 중국 그리고 인도가 그 뒤를 잊고 있습니다. 그러니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 미국을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재벌이며, 사업가 출신인 미국의 대통령 <트 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는데, 전 세계를 향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대한 ‘관세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절대적인 우방이라 생각했던 우리 역시 예외는 없습니다. 군사 안보적인 면에서야 절대적인 우방이지, 경제에 있어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관세 전쟁을 대비해 나가야 할 상황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어떤 관계도 영원하고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만난 연인도 헤어질 수 있고, 가족보다 더 친밀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절친도 어느 날부터 원수가 될 수 있고, 심지어 절대 끊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는 부모와 자녀와의 혈연도 끊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어찌 이 세상에 영원하고 완전한 관계라는 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자녀 된 우리의 관계를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세상의 모든 관계는 실패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 사랑(unfailing love)’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8편]의 시제는 ‘다윗의 찬송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 시는 후대 사람들이 다윗의 시중에 두 개의 시에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하나의 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작 시기에 대해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때’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 1~5절 : 57편 7~11절에서 발췌했고,
            • 6~13절 : 60편 5~12절에서 발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눌 부분은 시편 57편의 시제를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울 왕이 사위였던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폭발해서 그를 죽이려고 쫓던 시기에 다윗은 이 동굴, 저 동굴, 이광야, 저 광야로 피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갔었습니다.

            먼저, 2~5절을 보시면,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 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본문인 1절부터 5절까지의 내용을 보시면, 사실 그가 언제 죽을지도 모를 위기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숨어있었던 동굴에서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가 언제 어디에서 창이나 화살이 날아와 죽을 지도 모르는 도피 생활 중에 지은 시라고 믿어지십니까?

            우리가 너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는 찬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도 조차도 나오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내용을 보면, 긍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시고, 위대하신 분이신지 그래서 찬양과 높임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신지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6절을 보시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다윗은 1~5절에서 힘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한 뒤에 6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큰 권능의 오른손으로 구원해 주시길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도 앞에 붙어있는 상반절의 수식어를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다윗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시편 57편 7절에서 발췌되었는데,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지금 다윗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찬양은 확신에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하시는 자를 반드시 건지실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도 찬양하는 겁니다.

            고난과 시련을 만난 여러분이 지금 찬양할 상황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니, 찬양이 나오지도 않고, 기도 조차 잘 나오지 않을 만큼 힘든 상황을 만난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래도 죽음의 문턱 앞에 있었던 다윗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반드시 건지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오늘 다윗처럼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지금 다윗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찬양은 확신에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하시는 자를 반드시 건지실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흔들리는 마음을 믿음으로 붙들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1.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

              시편 107: 34~44

              33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35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36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37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38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39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통하여 그들의 수를 줄이시며 낮추시는도다

              40 여호와께서 고관들에게는 능욕을 쏟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시나

              41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나니

              42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사악한 자는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세계 최대의 사막과 광야 지대는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지역으로 이어지는 ‘사하라(Sahara) 사막’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으로만 보자면, 약 1/3이 모두 사막입니다.

              그런데 지난 1~2세기에 걸쳐 발굴하게 된 고고학적 유적들에 의하면, 약 4~5천 년 전의 사하라는 푸르른 밀림과 정글의 열대우림 지대였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서 기린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여러 짐승들의 암각화 및 벽화들을 발견한 겁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 여러 지역에서 호수와 강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고기를 잡아 구워 먹거나 했던 흔적들도 대량 발견하게 된
              겁니다. 사하라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울창한 밀림 열대 우림이 죽음의 땅인 사막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에스겔 6장 6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가 거주하는 모든 성읍이 사막이 되게 하며 산당을 황폐하게 하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지적하며 하신 저주의 말씀입니다.

              또 오늘 본문인 시편 107편 33절에서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하라의 사막화의 원인을 정확히 단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 성경 구절들에 의하면 자연의 모든 질서를 움직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축복의 땅을 사막과 죽음의 땅으로 저주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학자들에 의하면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10/40 Window(북위 10~40도)’ 지역으로 구분하는데,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거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4절을 보시면,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옥토가 변하여 쓸모없는(농사를 지을 수 없는) 소금땅이 되게 하신다는 저주를 말씀합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의 낙원’을 주셨었지만, 그들이 범죄하자 그들은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람도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다가 들통이 나면 그때로부터 그는 그 죄의 벌을 여러 방식으로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때 유명한 연예인도, 정치인도, 잘나가던 재벌도 심지어 목회자도 그 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죄는 우리의 복을 빼앗아 버립니다. 34절에 의하면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사막과 광야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35절~38절을 보시면,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막과 광야와 죽음의 땅을 다시 사람 살만한 축복의 땅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모든 복의 근원은 우리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43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저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앞에서 말씀드린 사하라가 사막화된 것이 우연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와 자연의 모든 질서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믿게 된 사람들은 이제 더 이
              상 우연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와 섭리를 통해 이런 자연의 변화가 있다는 지혜를 갖게 된 것입니다.

              잠언 9장 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멸시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 살아가다가 ‘죽음의 땅인 사막화’가 되는 것처럼 말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사막과 광야에 샘이 터지고, 강이
              나게 하는 역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멸시하고 자기 욕망에 따라 살아가다가 ‘죽음의 땅인 사막화’가 되는 것처럼 말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사막과 광야에 샘이 터지고, 강이 나게 하는 역사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1.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출애굽기 15:22~27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지난 [2024 프랑스 파리 (하계) 올림픽 메달 획득률] 이란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파리 올림픽에서 8위에 올랐고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이 2위와 3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자료는 ‘금메달 획득률’이란 게 있는데, 여기서는 중국이 10.1%로 1위를 했고, 우리 대한민국이 9.0%로 2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니깐 참가한 선수 중에 9.0%가 금메달을 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금⸱은⸱동 중에 어떤 것이든 ‘메달 획득률’을 보니깐, 우리 대표팀은 참가한 선수들 중에 22.2%는 메달을 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 역시 중국에 이어 2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수들이 대단한 게 메달 10위권에 있는 나라들 중에 가장 적은 144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는 겁니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최소 2배에서 3~4배 이상의 많은 선수단을 참가시켜서 10위권 안에 들었던 겁니 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전체 순위는 5위를 했지만, 참가 선 수 601명 중에 단 2.7%만이 금메달을 땄다는 겁니다. 그리 고 중국은 참가 선수가 약 400명이었지만, 우리나라 인구에 28배나 많은 14억 인구 중에 가장 잘하는 선수 400명을 뽑 아 출전시킨 겁니다. 그러니 수학적으로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악착같다’는 말은 ‘매우 억세고 끈질기다’는 뜻을 갖고 있 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악착같은 국민성’이 있는 거 같습 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딜 가나 열심히 공 부하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겁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위기에 강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데, 지난 올림픽만 봐도 통계적으로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고, 수년 전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이란 것이 세 계적인 모범이 된 것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전 세계적인 큰 위기였던 코로나 사태 이후 도리어 알파벳 ‘K’로 시작하는 한 류 컨텐츠와 문화는 전 세계적인 하나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시험과 테스트와 문제와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떻게 해결하느냐? 에 따 라서 한 사람의 인생도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출 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여정 속에 위기가 찾아왔 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앞에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시겠습니다.

                1. 믿음으로 테스트를 넘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뒤 만난 첫 번째 위기는 ‘홍 해 앞’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홍해의 마른 땅을 건너는 인류 역사 속에 전무후무한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 주셨던 것입니 다. 출애굽기 14장에서는 ‘홍해의 기적’에 대한 내용을 기록 하고 있고, 출애굽기 15장 1~21절까지는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애굽 군대를 벌하신 하나님을 찬양 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을 보시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시내 반도의 광야로 들 어와 남쪽 방향으로 사흘 길을 걸었는데 마실 물을 얻지 못한 겁니다.

                사람의 몸은 약 60~70%의 수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체내에서 수분이 1~2%만 빠져나가도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고, 5%가 부족 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10%가 부족하면 심근경색과 심장마비 가능성이 커지고, 체내 20%의 수분을 잃으면 의 식을 잃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광야라는 곳은 물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않 는 겁니다.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3일 뒤에 엄청난 위기와 문제를 만나 게 된 겁니다. 여기저기서 불평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 다. 그러다가 백성들의 그 불평과 원망의 감정이 폭발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23절을 보시면,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의 놀라운 기적으로 큰 기쁨 가운 데 시내 광야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과 흥분 은 광야 여정 3일 동안 물을 발견하지 못하자, 여기 저기서 불평의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그들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보는 순간 ‘물이다!’ 라고 순간은 기뻐했었지만, 그 물은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그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해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오아 시스의 이름을 ‘쓰다’라는 뜻의 ‘마라’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이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출애굽이 급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머지않아 가나안 땅에 들 어갈 것이라 생각해서 충분한 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동하다가 얼마든지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들을 광야로 인도했고, 그곳에선 물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도자인 모세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던 겁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란 하나의 민족이 한 나라로 건국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를 개척했지만, 한 교회가 자립하여 세워지는 것도 얼마나 많은 눈물과 희 생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지 모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한 나라가 건국된다는 게 쉽게 되겠습니까?

                요즘 우리는 ‘뭐든 쉽고 빠르게 되어야 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어떤 책을
                  한 권 정해주고 ‘Summary(요약) 해오라’는 숙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쳇GPT(ChatGPT) 같은 인공지능 어플을 통
                  해서 몇 마디 말만 하면 두꺼운 책 줄거리도 한 번에 정리
                  해 줍니다. 내가 밤을 새워 가며 책을 읽고 요약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 심지어 저 같은 목사님들도 설교 준비가 얼마나 어렵습
                  니까? 그런데 쳇GPT 한테 ‘믿음에 관한 설교 한 편 만들어
                  줘~’라고 입력하면,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설교 한 편이 뚝
                  딱하고 만들어져 나온다는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편리하게 변한 겁니다. 그러니 누가 힘들게 뭐를 하려고 합니까? 뭐든 쉽게 쉽게 그리고 빨리 빨리 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만약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어려우면 견딜 수 없어 하는 겁니다.

                20년 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할 때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예전엔 전화번호 10개 정도는 그냥 외우고 다녔었는데, 요즘은 자기 전화번호나 겨우 외우지, 가족들 전화번호조차 외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암기하 는 머리를 너무 안 쓰니깐 ‘디지털 치매’라고 했던 겁니다.

                인공지능 AI나, Chat-GPT 같은 것들이 분명 우리 생활 에 편리를 제공해 주는 건 분명하지만, 거기에 의존만 하다 보면 모두 바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앞으로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상상하는 창의적인 사람이 인공지능만 의지하는 바보들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웨슬리 브렌치 리키(Wesley Branch Rickey, 1881~1965)’라는 야구 인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야구선수 시절 그리 빛을 보지 못 해, 선수 생활을 일찍 접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 다. 그런데 오히려 행정가와 지도자로서 미국 프로야구에 현 대적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야구계의 혁신가’로 불리게 됩니 다. 선수 시절 얼마나 그라운드에서 빛나 보이고 싶었겠습니까? 하지만, 이분에게도 여러 가지 문제와 실패의 아픔과 고 난의 시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브랜치 리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란 당신이 성장하기 위해 지불 해야 할 수업료와 같은 것이다.(Problems are the price you pay for progress)”

                무엇이든 너무 쉽게 얻으려는 기대를 버리십시오. 여러분 앞에 있는 어떤 문제와 시험 그리고 힘들게 통과해야 하는 어 떤 과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한 단계 성장해 나가기 위 해 지불 해야 할 수업료와 같은 겁니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성장해야 더 단단하게, 더 견고하게, 더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학생들 중에 공부가 좋은 친구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 생들은 그 힘들고 어려운 공부 좀 빨리 끝내고 공부도 없 고, 시험도 없는 편한 세상에서 살고 싶을 겁니다. 운동선수 도 그렇고, 미래의 연주자를 꿈꾸는 사람에게도 그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과 학습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면 그런 게 없어질까요? 또 다 른 모습으로 직장생활과 사업 속에서 넘어야 할 시험과 테 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그런 시험과 여러 가지 테스트와 문제들 앞에 서게 될 겁니다. 여러분 앞에 ‘마라’와 같은 인생 의 쓴 물을 맛봐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데 수업료를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마십 시오. 그 테스트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솔루션을 찾아라

                그 마라의 쓴 오아시스 앞에서 백성들은 절망했습니다. 지도자인 모세 앞에 와서 그를 원망하고,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25절을 보시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 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 하실새”

                일반 백성들과 지도자였던 모세의 차이가 여기에 있었습니 다. 백성들은 힘들면 철없는 어린아이들처럼 불평하고 원망부 터 하는 겁니다. 하지만, 모세는 어느 순간부터 어떤 문제 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부르짖는 기 10 250309출15_22-27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새로운 역사를_09.hwpx 도로 하나님의 솔루션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어린아이일 때에는 조금만 힘들고 어려운 일 이 생기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불과 얼마 전에는 찬양하다가 은혜받아 눈물 도 흘리고, 말씀을 통해서도 큰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 말씀 대로 살기로 결단했었는데… 작은 시험과 어려움 앞에 내 믿 음과 신앙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겁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기도 계획을 세우고, 기도의 자리를 찾습니다. 내가 경험이 많다고, 가진 게 좀 있다고, 능력이 좀 된다고…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믿음의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시고, 이 문제에 개입하 실 때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찾아온 백성들을 뒤로하고, 모세는 장막에 들어가 여호와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하나 님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셨고, 모세가 그 나무를 물 에 던졌더니 그 물이 달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주 실 것을 믿으십시오. 또는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하시지 않으실 지라도, 그 문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뜻과 계획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288장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의 작시자인 ‘패니 크로 스비(Fanny Crosby, 1820~1915)’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돌팔이 의 사의 잘못된 약물치료로 평생 맹인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돌이 지났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21세의 어린 나이여서 할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부잣집 하녀로 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아껴주던 할머니도 크로스 비가 11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크로스비는 비록 맹인이었지만 찬송 작사자로 활동했는데, 가난으로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단돈 5달러가 없어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그 자리에 무릎 을 꿇고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처 음 보는 누군가 찾아와서 “당신이 찬송 작사가인 크로스비입 니까?”라고 묻더랍니다.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잠시 들렸다 고 말하곤, 떠나면서 악수하는 그녀의 손에 5달러를 쥐어 주더랍니다. 크로스비는 기도에 정확하게 응답하시고, 인도 하심에 놀라면서 찬송 가사를 하나 썼는데,

                그것이 찬송가 43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입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크로스비는 맹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2,000곡의 찬송을 작시했습니다. 우리나라 찬송가에도 24곡이 담겨 불 려 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크로스비에게 “당신의 눈 을 상하게 한 의사를 용서하기가 어려웠을 텐데요”라고 물었습 니다.

                그때 크로스비는 손을 가로저으면서 “나는 그 남자에게 나쁜 감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를 의자에 앉혀놓고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가르쳐 주셨지요. 결국 그 분은 그렇게 하셨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크로스비는 95세까지 장수하며 수많은 찬송시를 통해 전 세계 크리스천들의 마음에 큰 은 혜를 끼친 인물로 생을 마감합니다. 만약, 크로스비에게 신 앙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힘들고 어 려울 때마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공군에서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던 ‘리차드 바크(Richard David Bach, 1936)’라는 사람이 『갈메기의 꿈』이란 베스트셀러를 남겼는데, 그 책에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본다(The gull sees farthest who flies highest)”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그가 이런 말 도 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당신을 위한 선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Every problem has a gift for you in its hands)

                당시에는 내 앞에 있는 그 문제가 너무나도 커 보이고,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저절로 불평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이 숨어 있습니다. 맹인 찬송 작사가인 ‘패니 크로스비’도 95세라는 길고 긴 세 월을 살면서 12,000곡의 찬송을 쓰게 된 것도 그 선물이었 을 것입니다.

                27절에서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서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을 했던 마라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엘림’이란 거대한 오아시스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내 앞에 엘림이란 선물 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렸다면, 조금만 불 평과 원망을 버리고 그 시험을 견뎌 가면서 나아갔다면 엘 림을 만났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들다고 바로 불평 하고 원망하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26절 하반절에서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그 치료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불안하고 염려 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주님 앞에 갖고 나 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솔루션을 주십니다. 내 고난 속 에 있는 하나님의 솔루션을 받으십시오. 내 인생을 치료하 시고, 나를 엘림으로 이끄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 새로운 역사를 써가게 하소서(9)
                (출애굽기 15장 22~27절)

              2.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

                시편 107:23~32

                23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24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32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지로다

                수년 전에 교회 제자들 몇 명이 저를 보겠다고 세부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세부는 해양 관광이 유명하니 제가 열대어를 보여주겠다고 제자들을 데리고, 작은 배를 빌려 타고 바다에 나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날이 흐리고 바람이 좀 불었는데, 선장하고 선원들이 괜찮다고해서 모두 배에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부두에서는 심하지 않던 바람이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니 제가 느끼기에 파도가 몇 미터씩 출렁거려 당장이라도 배가 뒤집힐 거 같은겁니다. 그때 제 마음에 ‘사람이 이렇게도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되돌아왔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다라는 곳은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크게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시편 107편 23~32절까지는 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간 사람들이라면 언제든 겪을 수 있는 ‘큰 풍랑을 만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107편 26절, 27절을 보시면,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큰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난 풍랑은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극도의 공포속에 몰아넣습니다. 큰 파도가 출렁일 때 배는 파도 끝 위에도 올라 가지만 순간적으로 배는 다시 바다 깊은 곳으로 떨어집니다. 풍랑에 파도가 한 두 번만 올라갔다 내려가는 게 아닙니다. 언제 배가 뒤집혀 질지, 언제 파도에 배가 깨지게될지 그리고 그 무섭고 시커먼 파도가 언제 나를 삼키게 될지… 순식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그 배 안에 탄 사람들은 2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라는 표현이 백번 맞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거나, 잠잠히 그 상황에 대응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정신이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큰 바다를 항해할 때, 갑작스럽게 불어닥치는 광풍이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우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동양에서는 ‘인생을 고난의 바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도 이런 고 난의 바다를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게 됩니다. 그리고 방법이 없고, 해결할 길도 없으니 마음에 깊은 좌절과 절망의 그림자만 드리우게 되는 겁니다. 정말 그런 순간들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28절, 29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우리 인생에 찾아온 시련과 고난이라는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는 통로고, 이 기간은 그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자로 훈련되는 훈련소에 입소하는 기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을 구하고 찾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그 환난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는 큰 전쟁과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기도 하고, 굶주림과 여러 가지 인생의 고통에 내몰려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종종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데 이렇게 기도하곤 합니다. “하나님,전쟁과 지진과 홍수와 인생의 여러 가지 재앙을 만나 고통 속 에 있는 이들이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볼 때, 그들 가운데 하 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경험하게 해 주시옵소서”

                시편 32편 6절에서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우리 인생에 찾아온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기도하게 되었는데, 그 고난이 나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홍 수가 범람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나를 돌보시는 것 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30절을 보시면,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 하시는도다” 목사로 부름받아 사역하며 살아가는 저에게도 왜 인생의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마음이 힘들고 어려워 밤 잠을 설치게 될 만한 일이 왜 없겠습니까? 내일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게 왜 저에게만 없겠습니까?… 하지 만, 나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비록 지금은 인 생의 큰 풍랑을 만났지만, 그분을 신뢰하는 이들을 결국은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 님은 당신을 구하고 찾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 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비록 지금은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났지만, 그분을 신뢰하는 이들을 결국은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을 구하고 찾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당신이 지금 처한 상황 속에 하나님을 구하고 바라봅시다.

                1. 가망 없는 나에게도

                  가망 없는 나에게도

                  시편 107:17~22

                  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서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제가 세부에서 한인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고 있는데, 이곳은 <관광과 어학연수 그리고 조기유학>에 특화되어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 교인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고, 그것과 관계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자녀를 조기 유학시키려고 오시는 성도님 한 가정이 이곳에 정착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조언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것을 정말 고마워하면서 잘 정착해 나가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의 경우는 우리의 호의와 조언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당연히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되기도 하시고, 고생도 더 많이 하고, 사람한테 상처도 받고, 재정적인 손해도 더 많이 겪게도 됩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나중에 슬그머니 손을 내미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 속이 보이고, 너무 얄밉기도하고 그러니깐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피드백이 좋지 않으니 더 이상 돕고 싶은 마음이 안 들기도 합니다. 이런 게 솔직한 우리 인간의 마음인 거 같습니다.

                  시편 107편 17절을 보시면,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이 구절에서 “미련한 자”라는 말은 ‘육신적인 탐욕에만 몰두하는 자, 세상적이고, 육욕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소유한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고난을 받아”라는말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그들이 스스로 그들에게 고난을 가져오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바베론에 포로로 끌려온 것은 ‘그들이 육신적인 탐욕에 몰두하다 고난을 스스로 자처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받을 벌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그 길 자체가 잘못된 길이기 때문에 그 결말이 결코 좋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을 보시면,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사람이 너무 극심한 고통과 시련 가운데 있으면 입맛이 떨어져 밥 한술도 넘기기 힘든 겁니다. 또는 너무 고통스러운 질병을 투병할 때에도 입맛이 좋을 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서 “싫어하여”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혐오감을 주는 것, 구역질 나게 하는 것’
                  등을 가리킬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 구절에서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라는 표현은 지금 그들에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극심한지 마치 죽음의 문 앞에 이른 상황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세속적으로, 정욕적으로, 죄악을 탐하다가 스스로 그 고난을 자처한 것이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받을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거나, 그들을 구원하실 책임과 의무라는 것도 없습니
                  다. 하지만, 자격 없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인자와 자비가 크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그 고통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좋은 반응이 오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 사람에게 크게 실망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사람에게는 뭔가 또다른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접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참 많이 다르십니다. 참고 또 참으시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고, 손을 내밀고 하루 종일 내민 그 손을 거두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주님을 찾고 부르짖으니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 뻔뻔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범죄한 죄인들을 향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향해 또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때로는 머리조차 들 수 없는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가망이 없는 나에게도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시면,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 교회 주일 예배 때 보면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시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저 스스로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교자가 부족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 당신의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 때문에 우리 성도들이 다시 힘을 얻고, 그 고난의 깊은 수렁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과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도 없는 거 같고, 기도할 자격도 없고, 전혀 회복이란 것에는 가망이 없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자격없다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손 내밀어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자격없다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손 내밀어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부끄럽고 자격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1. 고난을 통해 알아가는 것들

                    고난을 통해 알아가는 것들

                    시편 107:10~16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서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쇠사슬에 매여 끌려가는 포로가 된 이유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그 고통에서 건져주신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의 내용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고난과 그 고난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시편 107편 10절을 보시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남유다 왕국의 멸망 장면에 보면,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최후 모습이 열왕기하 25장에 나와 있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시드기야 왕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결박해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왕하25:6,7).

                    한 나라의 왕을 그렇게 잔인하고 비참하게 끌고 갔다면, 유다의 일반 백성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인 시편 107편 10절에서 포로로 끌려간 그 백성들의 모습을 ‘흑암과 사망에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쇠사슬에 매여 있는 그들의 삶은 내일의 삶을 알 수 없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런 고난과 고통이 그들에게 시작되었습니까? 이런 고난을 통해 우리가 알아가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첫째, 교만과 불순종이 고난의 원인이다. 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 그 백성들이 눈이 뽑히고, 쇠사슬에 매여, 포로로 끌려간 이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이유는 ‘교만과 불순종’이 그 고난의 이유였던 것입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죄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고난의 원인은 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겁니다.

                    둘째, 고난을 통해 겸손의 사람이 된다. 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고난과 시련과 고통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도구입니다. 고난이 없을 땐, 하나님이 없어도 내 힘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고난이 오면 ‘나도 별거 아니구나.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로 고난을 허용하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낮아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은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한다. 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 가장 비참한 지경에 놓이게 되고, 도저히 방법이 없고, 길도 없는 깊은 절망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을 통해 우리는 기도의 사람으로 훈련되는 겁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평탄하고 풍요로우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을 기도의 자리에서 볼수가 없습니다. 그 형통함과 풍요로움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내가 절대 누릴 수 없는 것인데… 그 풍요에 눈이 멀어 내가 잘난 줄 압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오늘이라도 우리의 호흡을 끊으시면, 우린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쥐고 있는 모든 것은 더 이상 내 소유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고난의 상황 속에 있다면, 현실은 너무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고, 우리를 기도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환난 중에도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하여,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모든 성도들의 믿음과 영혼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내가 돌보고 섬기는 영혼들의 영적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자녀들이 모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우리 성도들이 모두 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제가 사랑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성도들이 고난을 만나고, 시련 한 가운데 있으면 저 역시 얼마나 속상하고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더 잘하려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 잘 섬기려고, 담임목사인 제게 더 큰 힘이되려고 하는 성도들 중에 그런 고난을 만난 성도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주님, 저 성도는 교회에 큰 힘이 되는데 좀 형통
                    하게 해 주시면 안 되나요…’하는 투정이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저의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과 바람입니다. 제가 우리 성도들을 양육하고 돌보기 이전부터 주님은 우리 성도들의 하늘의 참 아버지로서 그들의 영혼을 단련하시고, 그들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시고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난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들을 주시는 것입
                    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통해 세 가지를 알아갑니다.

                    첫째, 교만과 불순종이 고난의 원인이다.
                    둘째, 고난을 통해 겸손의 사람이 된다.
                    셋째, 고난은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한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지금 여러분이 고난의 상황 속에 있다면, 현실은 너무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고, 우리를 기도의 사람으로 훈련 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내게 찾아온 고난을 통해 나는 무엇을 알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