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허무는 적(敵)

느헤미야 5:1~5

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 하는데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선순환(Virtuous circle)과 악순환(Vicious circle)’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는 ‘착할 선(善)’자로 시작하는 ‘선순환’의 영어 단어는 ‘Virtuous(덕이 있는, 도덕적인, 고결한)’이란 뜻입니다. 정직하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성실한 것…과 같은 선하고 바른 성품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한자로 ‘악할 악(惡)’자로 시작하는 ‘악순환’의 영어 단어는 ‘Vicious(사악한, 악덕한, 악의 있는, 나쁜, 버릇 나쁜, 타락 시키는)’이란 뜻으로, 온갖 나쁜 말과 마음과 행동과 관습 등등을 다 포함하는 표현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선순환’이란 것은 ‘좋은 일이 다른 좋은 일을 불러들여서 계속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또 베풀며 살다 보면 내 주변에는 그런 선순환이 계속 이어져, 나도 누군가의 친절로 기쁘고 즐거울 때가 많아지는 겁니다.

하지만, ‘악순환’이란 것은 ‘어떤 나쁜 일이 또 다른 나쁜 상황으로 계속 반복되며 악화되어 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내가 늘 잔뜩 화가 나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고, 내 주변에서는 다툼이 그치지 않고, 늘 화날 일만 계속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이건 한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그 한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는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교회도 될 수 있고, 직장과 학교와 사회 전체를 포함합니다. 할 수 있다면 그 공동체에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공동체를 허무는 적(敵)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교훈해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이기심입니다. BC 538년 바벨론 포로 1차 귀환으로 약 5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다 땅과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3차 포로 귀환 때까지 약 90년 동안 그 땅에서 살았으니, 거의 한 세기의 세월 동안 유다 사회 안에는 빈부의 격차가 커졌던 겁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이 세상의 현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부자였고, 누군가는 겨우겨우 살아가던 서민들이었습니다.

느헤미야 5장 1절과 2절을 보시면,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느헤미야가 유다 땅의 총독으로 부임한 뒤, 백성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대적들의 엄청난 방해를 극복하며 한창 진행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공동체가 어떤 비전을 향해 나아갈 때, 외부로부터의 공격은 오히려 공동체를 단합시키고,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응집력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공동체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불평과 원망과 분열과 같은 일들입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 아래에서 성벽 공사에 집중하고 있었던 백성들은 식량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식량난의 원인은 귀족들과 부자들의 ‘고리대금’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한 백성들이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였고, 페르시아의 왕에게 세금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3절에 보면 흉년을 만났고, 그들은 정해진 세금을 바치기 위해서는 귀족들과 부자들로부터 빚을 내서 세금을 바쳐왔던 겁니다. 그러나 이자가 너무 컸던 것이고, 그 일로 인해 가정이 파산할 정도로 심각한 식량난과 재정난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고리대금’에 대한 금지 또는 경고가 나와 있습니다(레25:35~37, 시15:5, 잠28:8). 돈을 빌려주고 적당한 이자를 받는 것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이라는 원칙 아래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이기심으로 인해 이웃이 고통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기심이 가득한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열과 누군가는 가정 경제의 파산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이기심은 공동체를 허무는 악한 마음인 것입니다.

공동체를 허무는 적의 두 번째는 매정함입니다. 사람이 돈에 미치고, 돈이 우상이 되고, 돈이 목적이 되면… 인정사정을 안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매정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의 가치가 사람보다 우선이 되어서 이런 매정한 사회, 매정한 공동체는 붕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면,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백성들 중에는 고리대금으로 인해 자녀를 종으로 뺏긴 사람들이 있는데, 이 구절 중간에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라는 원어적인 의미는 ‘채권자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한 대상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예쁜 내 딸이 이자를 갚지 못해 부자의 성적 노리개가 된다는 사실은 그 부모의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밭과 포도원까지 모두 뺏겨 가난한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시 돈을 빌려주던 유대의 부자들과 귀족들의 매정함이 얼마나 비성경적입니다. 매정함은 이기심과 함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원죄를 갖고 태어난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나도 모르게 ‘이기심과 매정함’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때문에 ‘죄의 마음과 의의 마음’은 우리 안에서 계속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에 굴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기심과 매정함을 버리십시오. 기꺼이 나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 가십시오. 우리의 공동체는 더 은혜로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공동체를 허무는 두 가지의 적(敵)을 기억하십시오.

첫째, 이기심

둘째, 매정함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죄의 마음과 의의 마음’은 우리 안에서 계속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에 굴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기심과 매정함을 버리십시오.

오늘의 묵상: 내 안에 이기심과 매정함은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