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가능을 넘어라”

<창세기 18:1~15> 

196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1942~2016)’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한 시기였던 1960년대에 복서를 했습니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땄는데도 그 차별이 나아지지 않자 금메달을 강물에 던지고 프로복서로 전향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권투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명언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라.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해낸 것은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에서 이 말을 기본으로 광고카피를 하나 만들었는데,

–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가하다.
–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 불가능,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 불가능, 그것은 사람들을 용기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 IMPOSSIBLE IS NOTHING

이런 말들이 분명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실패 속에서 낙심해 있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도전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로 돌아오면 불가능은 여전히 우리에게 불가능으로 남아 있고, 그리고 ‘알리’가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해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불가능은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처럼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에게 한계가 있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 때 나의 불가능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지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마태복음 19:26절 말씀에서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의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99세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들 이삭이 출생할 것과 언약을 재확인 시켜 주시고, 아브라함의 이름과 사라의 이름을 바꿔주시고, 할례를 통해 언약의 표징을 갖도록 말씀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신 내용이 17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하신 대로 언약의 표징으로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시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또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는데, 2절과 3절을 보시면,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하나님께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아브라함은 직감적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에게 어떤 신성함을 느끼게 된 겁니다. 그래서 바로 엎드려 그들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대접을 받고 또 다시 사라를 통해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11절, 12절을 보시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이 때 사라의 나이가 89세였는데, 사라가 127세까지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나이로 환산한다고 하면 여성에게 폐경이 온 이후로도 한 참 지난 60세에서 70세에 가까운 나이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생물학적으로 사라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겁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령한 사람들이 나타나 다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임신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으니깐, 장만 문 앞에서 아브라함과 천사들의 대화와 예언을 듣고 있던 사라는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던 겁니다.

그리고 13절과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속마음을 아시고 그녀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Is anything too hard for the LORD?)”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 문제가 힘든 일이고, 불가능한 문제인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힘이 부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힘든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불가능한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아무리 해도 안 되던 일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믿음을 요구하시고 있는 겁니다. 믿음의 시작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약한 존재임을 하나님 앞에 인정할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강한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이 부족하더라도 이제부터 이 믿음을 가지십시오. 나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그 문제를 주님의 손에 올려놓으십시오. 오늘 그 불가능의 현실을 오병이어처럼 주님의 손에 올려놓을 때 이제부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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