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1~11>
지난 10일 우리나라의 19대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취임사의 5대 키워드가 ‘소통, 균형, 개혁, 상식, 통합’이란 겁니다. 저는 여기서 키워드 중의 키워드가 ‘상식’이란 단어를 꼽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많이 일어난 겁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이 ‘세월호 침몰사건’과 ‘최순실 사건’인 겁니다. 3백 명이 넘는 우리의 자녀들이 침몰하는 뱃속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배의 선장과 기관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빠져나온 겁니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정부와 해당부처의 안이한 대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겁니다.
또 아무런 직함도 없는 일반인이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청와대를 쥐락펴락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겁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인데, 이 사건을 통해 국민들은 어떤 모욕감을 느낀 겁니다.
뭔가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뭔가 우리 사회 속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래서 『상식』이 바로 설 수 있도록 『개혁』하겠다는 것이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로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국민들과 『소통』하여 『균형』잡힌 국가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상식선’이란 말은 ‘상식이라는 기준’을 말하는데, 그 상식이란 기준조차 우리 사회에서 흐려져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새로운 정부와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뭔가 우리 사회에서 흐려진 기준들이 바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이처럼 어떤 기준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한 개인이든, 사회든 점점 병들어 가다가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의 영적, 도덕적 기준이 흐려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명의 천사가 저녁때에 소돔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땅에 엎드려 절하게 됩니다. 아브라함 때처럼 천사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롯에게 왔지만, 뭔가 그들에게 신성함이 느껴져서 그렇게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금 남대문, 동대문에 상권이 크게 형성되어 있는 것처럼, 고대 사회에서도 성의 문은 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했고,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소도 되고, 큰 장이 형성되어 물물교환과 매매등이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시비를 가려야 할 문제도 있었고, 그래서 성문에서는 종종 재판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롯이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롯이 소돔에서 꽤 높은 신분을 갖고 있었고, 소돔 사람들의 재판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천사들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천사들은 거리에서 밤을 새우겠다고 하는데, 롯은 그들을 집으로 모셔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 주게 됩니다.
그런데 4절, 5절을 보시면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소돔의 젊은 남자들, 늙은 남자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그 천사들을 이끌어 내라는 겁니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Bring them out to us so that we can have sex with them. : NIV)”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과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겁니다.
‘소돔’에서 온 말 ‘Sodomy’는 ‘남색’이란 뜻이고, ‘Sodomite’는 ‘남색자’란 뜻입니다. 분명 본성적으로 부끄러워야 할 일인데,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공공연하고 노골적으로 동성연애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겁니다. 어떤 사회적 약자들이 결코 차별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최근 동성애자들 공공연하게 퀴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흐리게 만드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새롭게 들어선 진보정권이 이 부분에서 관용적인 방향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이런 기준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는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런 상황에서 롯의 대처 역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7절과 8절입니다.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귀한 손님을 지키겠다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들을 대신 내 줄테니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이 이게 있을 수 있는 생각이겠습니까? 그 딸들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예비 신랑들이 있었습니다(14절). 아무리 귀한 손님들이라도 어떻게 자신의 딸들을 그런 폭도들에게 내 줄 수 있습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롯이 소돔에서 살다보니 소돔화 되었던 겁니다. 나중에 소돔이 심판을 받고 롯이 딸들과 소돔을 빠져나와 있을 때, 딸들은 롯에서 술을 먹이고 거룩한 자손을 낳겠다고 아버지와 동침해서 모압과 암몬이란 아들을 낳게 됩니다. 딸들 역시 이미 소돔의 가치에 물들어 있었던 겁니다.
필리핀에는 큰 쇼핑몰들이 많은데 가끔 직원들끼리 장난치는 모습을 보는데, 남자직원이 또는 여자직원이 지나가면서 손바닥으로 다른 이성의 엉덩이를 치거나, 쥐는 것을 봤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건 성추행으로 고소할 일인데 직원들은 서로 깔깔대면서 웃고 있는 겁니다. 분명 이들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흐려져 있는 겁니다.
롯의 기준이 흐려지니 그는 내면적으로는 분별력을 잃었고, 신앙적으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소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영적, 도덕적 기준이 흐려지면 우리나 불신자나 별 차이 없는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런 낮은 기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더 높고 높은 하늘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적 기준, 도덕적 기준을 높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