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6~11>
지난 주 14일에 영국 런던에 있는 24층짜리 그렌펠 타워 아파트에서 큰 화재가 있었습니다. 저도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지만, 영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종종 화재가 나니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연일 계속 그 화재에 대한 소식들이 올라와서 뉴스를 찾아보니깐, 이번 사고가 2차 대전 이후 런던에서 일어난 최악의 화재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이 아파트의 주민 대다수가 저소득층과 아프리카계, 이슬람계 이민자들이라고 합니다. 1973년에 완공된 고층 임대아파트인데, 너무 노후 된 건물이어서 2016년까지 리모델링을 했는데, 내화인증을 받은 패널 대신 저렴한 자재를 사용했고, 그리고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건을 통해 약 58명이 사망했고, 약80명 정도가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보통의 고층건물의 경우 층간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내열 설비들이 되어 있고, 화재경보시스템과 스프링클러 등 자체 방화 시스템 때문에 불길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데, 세계 최고의 선진국 중 하나인 영국에서 이런 후진국 형 화재사건이 일어나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화재를 통해 메이 총리를 비롯한 친(親)기업 성향의 보수당 정부가 비난을 받고 있는데, 왜냐하면 공공 예산 삭감과 규제 완화 등이 그 근본 원인으로 지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이란 나라가 세계 최고의 선진국 중 하나이고, 여러 가지 소방관련규제가 철저한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여론은 정부의 규제 완화가 이번 사고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겉으로는 완전하고 완벽한 거 같지만 어떤 한 부분을 소홀히 할 경우에 그 틈을 타고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안 믿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온전하거나 완벽한 신앙생활을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옛 습관들 또는 세상 사람들의 여러 가지 관습을 좇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마귀에게 틈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변화되지 않은 옛 습관들과 관습을 따르는 것을 통해 우리의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베드로전서 1:15절, 16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우리가 어찌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거룩해야 할 이유, 우리가 주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함을 위해 애를 써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창세기26:1~5절에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애굽으로 가려고 했던 이삭을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그 땅에 거주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한 가장 입장에서는 애굽으로 가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이삭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랄 지역에 거주했던 겁니다. 이런 이삭의 모습은 대단한 겁니다. 당장 돈 문제, 먹고 살 문제가 있었지만 믿음으로 순종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부터 11절까지에서는 그 순종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의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사건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두 차례 정도 겪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7절을 보시면,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전에 아브라함도 애굽 땅에서 그리고 이곳 그랄 지역에도 똑같은 실수를 했었습니다. 공교롭게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굉장한 미인이었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 역시 엄청난 미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부인이 예쁘면 그 남편을 죽이고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이삭도 그런 염려가 있었고, 찾아낸 방법이 부인을 누이라고 속이면 그 누이의 오라비에게 호의적으로 대할 것으로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당시의 문화였고, 어쩌면 세상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고 변화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이제 우리의 옛 습관들을 내려놔야 하는 겁니다. 그 변화되지 않은 옛 습관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어떤 위기를 불러 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삭 역시 어느 날 리브가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아비멜렉 왕에게 발각되었고, 이삭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장면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물론, 다행히도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오히려 이삭과 리브가가 그랄 지역에 머무는 동안 그들을 왕명으로 보호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3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해 주시겠다고 했던 그 말씀을 이삭이 더 굳게 믿고 있어야 했던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습관들은 반드시 우리에게 위기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옛 습관을 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