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첫 번째 위기

출애굽기 14:1~9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우리가 ‘이스라엘의 건국 역사’를 다루고 있는 <출애굽기>를 배우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뭐 하러 이스라엘의 역사까지공부해야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이란 나라의 일반적인 역사가 아니라, 여기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될 수 있었던 것은 ‘출애굽(Exodus)’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야곱(이스라엘)의 자손 70명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 살다 보니무려 430년의 오랜 세월 동안 그 땅에서 정착해 살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모세를 통해 출애굽 해서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로 들어가 40년의 세월 동안 광야 생활을 해야 했고, 40년 뒤에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해서이란 나라를 건국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사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는데, 각 시기들에 영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 첫 번째 시기 :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은 ‘죄의 종’ 아래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었고, 우상 숭배와 죄의 종으로살았던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주님을 믿지 않고, 죄의 종노릇 하며 살던 시기를 상징하는 겁니다.

▪ 두 번째 시기 : 출애굽을 통해서 종의 신분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의40년간의 ‘광야 생활’입니다. 이것은 멀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은출애굽 즉, 죄에서의 ‘구원과 자유’의 시기를 말합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를 믿음으로구원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 세 번째 시기 :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대로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구원의 완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애굽과 광야와 가나안 중에 어떤 시기와 영역에 위치하고있는 거 같습니까? 유월절 양이 상징하고 있었던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애굽은 아닙니다. 그리고 구원이 완성되어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때문에 아직 영적 가나안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광야’라는 영역에 위치 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라는 곳은 더위와 추위와 목마름과 배고픔과 같은 결핍이 있는 곳이고, 전갈과 독사와 들짐승의 위험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이 인생 속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어려움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불행 끝, 행복 시작’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지만, 앞으로 그들은 많은 위기들을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많은 영적인 위기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광야의 첫 번째 위기는 무엇이며, 이것을 통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1.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출애굽기 14장 2절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으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터전 삼아살아왔던 ‘고센(라암셋) 땅’에서 ‘가나안’까지 가는데 가장 좋은 길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나일강 하류에서부터 지중해의 해안 길을 따라가다 보면일주일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었고, 수십만에서 200만 명의 대인원이 이동하면서식수 등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음식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상식과 경험과는 완전히 벗어나는 명령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지중해를 따라 동북 방향으로백성들을 이끌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동남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게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쭉 내려가다가 ‘비하히롯’이라고 불리는 홍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상식과 경험 그리고 내 생각과 계획과는 완전히 벗어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필리핀 세부에서 한인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도 저의 계획 속에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필리핀에 여행조차 와 본 적이 없던 저에게, 그리고 교회 개척에 대한 생각도 해 본 적이별로 없고, 그것도 해외에 한인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저의 상식 밖의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가나안 땅에 큰 기근이 와서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식량을 찾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집트까지 이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애굽으로 이주하려고 짐을 싸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겁니다. 당장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데리고 있는 모든 식구들은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상식 밖의 명령을 하신 겁니다.

그런데 창세기 26장 12절, 13절에 보시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삭이 그 흉년의 해에, 그 기근의 땅에서 떠났다면 이런 일은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땅에선 절대 농사가 될 수 없다’라고 했던 그 땅에서 100배의 축복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상식과 경험과 생각과 뜻과는 다른 명령을 하실 때가있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엔 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과 뜻이 있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계산이 안 나와도,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시면,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 해변에 진을다. 가나안 땅과는 정 반대쳤습니방향으로 내려간 겁니다.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던 전략가인애굽의 바로 왕이 볼 때,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독 안에 든 쥐’ 꼴이 된 것입니다. 오랫동안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할 무기도 없었고, 군사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막다른 곳에서 몰살 당 하거나, 아니면 다시 이집트로 끌려 갈 게 뻔한 상황인 것입니다.

간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인생의 막다른 길에 갇히게 되도록 내버려두실 때도 있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이시라면 내 앞에 있는 어려움들, 고난들, 시련들, 문제들이 오기 전에 막아 주시거나, 피하게 해 주시면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왜 하나님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셨나요?’라는 한탄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시면,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게 되는 놀라운 기적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굳이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홍해 앞 막다른 광야 길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일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가운데로 건널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투 예루살렘』이란 책에 보면, 중국에 공산주의로 인해서 교회가 문을 닫고, 목사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놀랍게 복음이 확장될 수 있게 된 몇 가지 이유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첫째, 수많은 중국의 우상들이 사라졌다. 공산주의의 유일한 신은 공산주의뿐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인정을 하지 않고, 모든 우상들을 제거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영적인 공간이 비어 있었고, 어떤 방법으로든 복음이 전해질 때 사람들이 그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기찻길과 도로와 비행장이 건설되어 복음 전파가 수월해졌다. 중국이 워낙 큰 땅이고, 교통인프라가 갖춰지지않았었는데 공산화 문화혁명을 통해 교통 인프라가 대거 갖춰져 중국 내 어디든 전도자들의 접근이 용이해 졌다는 것입니다.

셋째, 표준 중국어(만다린어)가 공식 언어로 채택되었다. 이전엔 중국 내에서 수많은 소수 민족과 종족들 사이에서 수천 가지의 방언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복음 전도가 어려움이 많았는데, 언어가 통일되니 전도가 용이해 졌다는 것입니다.

넷째, 자아비판의 습관과 훈련을 통해 복음 안에서 죄를 회개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다. 공산주의 아래에서는 서로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도구였던 ‘자아비판의 시간’이 복음으로 들어오니,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입니다.

중국은 교회와 종교가 인정이 안 되고, 기독교 전도와 선교를 여전히 탄압하고 박해하고있지만 ‘가정 교회’라는 자발적인 모임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생명을 걸고 은밀하게 모여 예배하며 신앙생활을하고 있습니다. 핍박 가운데 그들의 신앙은 더욱 더 순수하고, 그런 가운데 중국에만 약 1억 명의 크리스천들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인생의 막다른 길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 단어 중에 ‘present’라는 단어는 명사로 ‘현재, 오늘’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의미는 ‘present : 선물’이란 뜻인 것입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현실과 오늘의 모습이홍해의 막다른 곳에 서 있는 상황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생의 막다른 ‘present : 현재 & 오늘’이 홍해의 기적을 보게 되는 ‘present : 선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2. 믿음으로 굳게 서 있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난 첫 번째 위기는 출애굽한 백성 200만 명이 모두 몰살 되거나또는 다시 비참한 모습으로 애굽에 노예로 끌려갈 운명이었습니다.

7절과 8절을 보시면,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준 것을 크게 후회하고며칠 내로 추격 부대를 꾸리게 됩니다. 먼저 선발대로 병거 600대로 추격하게 하고, 뒤따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해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랐더니 홍해 해변에 진을 치고 있었던 이스라엘 진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정만 60만 명이면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인원입니다. 우리 생각에 대한민국의 군인들 숫자보다도 더 많은인원인데, 지금부터 3,400년 전에는인구도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리 공포에 떨었을까요? 물론, 그들에겐 애굽 군대와 싸울 무기도 없었고, 군사 훈련을 받은 남자들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태국과 같은 나라에 가면 ‘코끼리 관광 & 코끼리 쇼’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관광객들이야 그 거대한 코끼리들이 온순하게 사람을 태워주기도 하고, 재주를 부리기도 하니 꽤 괜찮은 볼거리일 수있습니다.

코끼리는 키가 약 3m , 길이가 5~7m , 몸무게가 3~8톤에 달할 정도로 육상 포유류 중에 가장 거대한 동물입니다. 사자도, 호랑이도, 곰도… 그 어떤 맹수도 코끼리와 대적해서 싸울 수가 없습니다. 동물 중에 가장 강하고 무서운 존재가 코끼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코끼리를 길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코끼리에 비해 아주 작은 인간입니다. 태국과 같은 나라에서 야생의 코끼리를 길들이는 ‘파잔 의식(Phajaan)’이란 게 있습니다. 생후 2~3년 된 어린 코끼리를 어미로부터 강제로 떼어놓고, 두꺼운 밧줄과 쇠사슬로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묶어둡니다. 어린 코끼리가 아무리 울어도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고, 어미도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조련사는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갖고코끼리의 머리와 몸통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찔러 고통을 줍니다. 그것을 통해 어린 코끼리를 압도해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조련된 코끼리는 몸집이 몇 배 더 커지더라도 절대 조련사나 인간에게 대들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조련사에게 압도당했기 때문에 철저히 복종하는 겁니다.

이것을 ‘학습된 무력감’ 또는 ‘노예근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원이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인원입니다. 아무리 애굽의 군사들이 많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진 무기가 없더라도, 인해전술이란 것도 있지 않습니까? 한 번 해 볼 만 한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왜일까요? ‘학습된 무력감’ 또는 ‘노예근성’ 때문입니다. 수백년 동안 애굽인들의 노예로 철저히 학습되었고, 절대 그들을 대항해 싸울 수도 없었고, 싸워서도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겁니다. 마치 태국의 코끼리 길들이는 ‘파잔 의식’처럼, 그들은 싸움을 해 보기도 전에 애굽인들에게 매 맞을 생각부터 하고,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육상 생물 중에 가장 크고 가장 강한 그 거대한 코끼리들도 학습된 무력감, 노예근성을 갖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인겁니다. 실패와 패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더 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감과 패배감에 젖어 일찌감치 모든 걸 포기하고,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13절을 보시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나는 코끼리처럼 힘이 센 것도, 덩치가 큰 것도 아니라, 나는 약할 수 있고, 내게는 능력이 없을 수도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을 믿으십시오.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십니다. 지금 광야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는 종종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하지만, 이 광야생활 내내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앞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나를 보호하시고, 돌보시고, 나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입니다.

“광야의 첫 번째 위기” – 새로운 역사를 써가게 하소서(5) (출애굽기 14장 1~9절)

1.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2. 믿음으로 굳게 서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