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3~31>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은혜를 베푸셔서 교회 개척 만4년 만에 기존성전보다 3~4배 넓은 공간을 주셨습니다. 인테리어 공사를 5개월 정도 했는데, 저 역시도 성전 공사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새롭게 경험해 봤습니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서 아마추어인 우리가 직접 모든 공사를 했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돕는 손길들이 있어서 중간 중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인테리어 전문가 집사님이 약 한 달간 직접공사도 해 주시고, 조언도 해 주셔서 우리가 직접 한 인테리어 치고 꽤 근사하게 결과물이 나온 거 같습니다.
전문가 집사님이 한국에서 오셨을 때 이것저것 장비들도 가져오셨는데 그 중에 레이저로 수평과 수직을 잡아주는 기기가 있었습니다. 필리핀 인부들이 그런 걸 처음 본 겁니다. 신기해하면서 그 물건을 쓰는데 쓰다 보니 그 편리한 기기가 이 사람들에겐 불편한 겁니다. 그래서 필리핀 인부들은 결국 자신들이 원래 쓰던 원시적인 방식으로 수평과 수직을 맞춰서 일하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주 편리한 첨단기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손에 잘 맞지 않으면 그게 더 불편할 수도 있는 겁니다.
성경 속에 나오는 가장 통쾌한 대결 장면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장면일 겁니다. 다윗은 소년 목동이었고,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전사(Warrior)였습니다. 골리앗은 완전 무장하고 나와서 싸우자 하는데, 다윗도 사울 왕이 준 갑옷과 칼을 차고 걸어보는데 갑옷이 너무 크고, 칼도 너무 크고 무거워서 갑옷도 벗고, 칼도 내려놓고 손에 잘 맞는 물맷돌을 들고 골리앗 앞에 나아갔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도 어떤 일들을 하실 때에 당신의 마음에 잘 맞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 요한은 첫 번째 선교지였던 구부로 섬 사역을 잘 마치고, 지금의 터어키 지방을 두루 다니며 선교하기 위해 배를 타고 ‘버가’라는 지역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선교사였던 바울과 바나바를 도와 함께 동행했던 청년 마가가 갑자기 어머니가 계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 돌아갔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갈라서게 되는 이유가 될 만큼 바울과 바나바에게 적잖은 충격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저 역시도 저를 도와 함께 열심히 사역하던 사람이 한국으로 귀국하거나 그러면 제가 그 일들까지도 더 해야 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일꾼이 이곳에서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청년 마가는 아마도 고된 선교의 여정에 많이 지쳤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는 중간에 그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되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연장자들이었던 바울과 바나바는 육체적으로는 마가보다 더 힘들었을 텐데도 포기하지 않고 선교여정을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18절부터 31절까지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은 터어키 지방의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해 그곳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택하셔서, 애굽에서 큰 권능을 베푸셔서 출애굽하게 하셨고, 광야생활 중에 그들의 불순종과 원망을 참으시고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 까지 인도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울 왕을 초대 왕으로 주셨지만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세우셨다는 겁니다.
22절, 23절을 보시면,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을 찾으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겠다는 겁니다. 그 뜻의 궁극적 목적은 다윗의 후손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인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힘들어서 사명을 포기한 청년 마가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사울 왕 그리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과 그들의 관원들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떠한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희생과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보여주시고 있고, 반면에 고난 앞에서 돌아서고 자신의 욕망 때문에 불순종하고 범죄 하는 주님의 마음을 떠난 사람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님의 마음의 맞는 바로 그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셨던 겁니다. 대단한 능력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대단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무능력한 신이 아닙니다. 대단한 능력 없어도 주님의 마음에 맞는 그 사람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오늘 주님의 뜻을 우리의 욕심에 맞추지 않고, 다윗과 같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주님의 마음에 맞춰 가시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