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우상을 버려라”

<사도행전 14:1~18> 

우리나라 남자 아이돌 그룹 중에 BTS(방탄소년단)라고 있습니다. 지난 11월20일 미국의 최고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 중에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isic Awards 2017)’에 초청 받아 공연을 했는데, 그 영상을 잠시 보니깐 ‘이게 사실인가?’ 할 정도로 팝의 본고장인 미국 청소년에게 저도 잘 모르는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이 인기가 있는 겁니다. 미국 포털 사이트 최신 인기상승 검색어 1위에도 오르고, 미국의 유명한 프로그램들도 출연해서 공연도 하고 그러는데 엄청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음악 칼럼이스트는 이 현상을 ‘미국의 주류가 셀레나 고메즈와 저스틴 비버 또는 켄달 제너의 라이프에 지치고 더 이상 공감하고 싶지 않은 미국내 비주류 틴에이저들이 (그들의 우상을 찾던 중) BTS가 걸린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적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상(Idol)을 찾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과거 역사적 인물들을 미화하여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그래서 많은 히어로(Hero : 영웅) 이야기와 영화 같은 게 있는 겁니다. 사실 세계를 정복했던 징기스칸도 알렉산더 대왕도 몽골에서나, 그리스에서는 영웅일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자면 다른 나라들, 식민지였던 나라들 입장에서는 절대 영웅이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들이 그렇게 대제국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잔악한 일들을 많이 저질렀겠습니까?

사람들은 끊임없이 역사적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현세의 어떤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또는 종교적인 우상을 만들기도 하고, 물질적 세속적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따르며 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아덴(아테네)에 선교하러 갔을 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온 도시 안에 온갖 우상들이 가득한 것을 봤습니다. 17장23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상을 많이 만들고 이름을 붙이다가 어떤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름을 뭘로 붙여야 할지 모르니깐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이름을 붙인 겁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까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자식이라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찾는 것과 같이 그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신, 그 우상을 자기 입맛에 맞게 인간들은 스스로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우상은 헛된 우상일 뿐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바울과 바나바는 터어키의 비시디아 안디옥 지방에서 선교의 큰 성공을 봤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서 동쪽으로 이동해 ‘이고니온’이란 지역으로 옮겨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중에 ‘허다한 무리(a great nember)’가 예수를 믿게 된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전의 ‘비시디아 안디옥’지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자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그들을 박해하고 쫓아낸(44~52절)’겁니다.

본문 2절을 보시면,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이고니온에서도 비시디아 안디옥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인해서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그 지역의 관리들까지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 남쪽에 위치한 루스드라로 선교지를 옮기게 됩니다.

8절부터 18절까지는 루스드라에서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장애인이 있었는데 9절과 10절을 보시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베드로가 미문 앞에서 일으켰던 기적과 아주 비슷한 장면입니다. 이 사람은 비록 육체적인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과 마음이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치유와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별로 없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우상으로 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바나바를 향해서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은 복음을 설교하는 사람이었기에 메신저의 신인 ‘헤르메스’라고 부르면서 그들에게 소를 끌고 오고, 화환들을 가져와서 제사를 드릴려고 하는 겁니다.

15절을 보시면,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헛된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겁니다. 이고니온 사람들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뭔가 자기들만의 철학과 생각 그리고 그들이 버리지 못하는 세속적인 어떤 우상이 있는 겁니다. 또 루스드라 사람들처럼 종교적 우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역시 복음을 온전히 받기 어렵습니다. 바울은 이것은 ‘헛된 일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내 삶의 우상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울은 말합니다. “헛된 일을 버리라!”

Tags: No tags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