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0:9~44>
제가 보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뉴스 중에 『많이 본 뉴스(Daum)』라는 게 있습니다. 보통 열 가지 정도의 순위가 매겨져 있는데, 이걸 보면 그날그날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슈가 무엇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위부터 10위까지 중에 무려 네 개나 지난주에 있었던 ‘물벼락 사건’에 관련된 뉴스였습니다. 그만큼 국민적인 관심이 크다 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겁니다. 많이 본 뉴스 랭킹 1위, 2위 그리고 5위와 6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한항공에서 대한을 빼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다’는 내용도 있고, ‘땅콩 첫째(딸), 뺑소니 둘째(아들), 물벼락 셋째(딸) 한진 家 3세들’라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타이틀도 보이고, ‘말뿐인 반성에 한진 삼남매 경영진에서 내려와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항공사 순위 1위의 대기업이지만, 3세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태도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첫째 딸이 실수했을 때는 아버지인 조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본인이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최고의 항공사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부정적인 이미지만큼은 쉽게 바뀔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값비싸고 아름다운 옷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누가 입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질 수 있는 겁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하리만큼 좋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인품이나 내면적인 상태에 따라서 그 외적인 조건들이 무의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약 60년 전에 스룹바벨과 함께 5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 20년에 걸쳐 무너진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물론 솔로몬 성전보다는 못하였었지만 예루살렘에 웅장한 성전이 다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60년 뒤 에스라가 본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종교적 모습은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에는 심각한 죄의 문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이방인과의 통혼(通婚)의 문제였습니다.
에스라는 민족의 죄를 놓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통곡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에스라를 통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 앞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때마침 우기여서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10절, 11절을 보시면,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타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신명기 7장에서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했었는데, 바로 그 말씀을 어기고 많은 이방국의 공주들을 왕비로 맞아들였던 겁니다. 그 이방여인들은 예루살렘에 여러 우상들을 가져왔고, 왕과 백성들이 그 우상들을 섬겼던 겁니다. 결국 그 나라는 그 아들 대에 가서 남과 북으로 쪼개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이 망한 것도, 남 유다가 망한 것도 모두 우상숭배와 깊이 관계가 있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우상을 섬기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몰락하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었던 겁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눈물로 기다리던 포로귀환이 이뤄지고, 수많은 시련 속에서 성전을 재건했고, 이제 반세기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조상들의 죄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에스라가 보기에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이었겠습니까?
14절을 보시면,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다행히도 백성들은 회개하고, 이제 죄를 청산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하는 모습입니다. 약 3개월에 걸쳐서 여전히 개종하지 않은 이방인 여인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16,17절). 그리고 18절부터 마지막 44절까지는 이방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명단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에스라서는 갑작스럽게 끝나고 맙니다.
에스라 1~6장은 성전 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에스라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7장부터 10장까지는 에스라의 영적 갱신과 백성의 회개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에스라서는 우리에게 성전이 아무리 웅장한 모습으로 건축되어 있더라도, 그 안에 예배하는 사람들이 죄를 버리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과 같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 분과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로 성전에 나아갈 때 그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우리 성도들이 교회 생활을 오래 했어도, 모태신앙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맡고 있어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예배는 헛된 예배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를 끊어버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지 못하고 있는 죄는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