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6:13~22
우리 인간의 뇌 속에는 ‘해마’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해마’는 새로운 사실을 학습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아주 중요한 뇌기관입니다. 그래서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정보를 기억할 수가 없는 겁니다. 보통 이런 경우를 ‘알츠하이머’ 또는 ‘치매’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농촌의 60대 이상 노인들 가운데 21%는 치매양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는 감각기관을 통해 어떤 정보가 해마로 들어오게 되고, 해마는 그 기억들을 기관에서 처리하고 저장해야 할지, 삭제해야 할지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정보가 들어오고, 또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다가 이전의 정보를 지워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전 아내가 집에 없을 때, 아이들과 함께 건강에 좋은 곰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후에 제가 그런 국물류를 좋아하다 보니깐 그걸 상하지 않게 잘 끓여놓으려고 가스불에 올려놨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아들과 함께 냉동실에 있는 삼겹살을 꺼내서 식탁에서 맛있게 구워먹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식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서 싸이렌이 막 울리는 겁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왜 갑자기 이렇게 싸이렌이 울리나 했더니, 주방 쪽에 연기가 가득한 겁니다. 아까 올려놨던 곰국이 새까맣게 탄 겁니다. 아들과 오랜만에 즐겁게 대화 나누며 삽겹살을 1~2시간을 구워 먹고 있었는데, 10분이면 다 데워질 곰국이 완전히 새까맣게 타고, 연기가 나서 화재경보가 울렸던 겁니다.
제 해마가 <삽겹살 + 아들과의 대화>라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불에 올려놓았던 곰국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겁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은 한번쯤 있으실 겁니다. 사람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무엇인가를 잊어버리면 꼭 실수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실수하고 범죄 하게 되는 이유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망각과 조급함(인내하지 못함)’입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사람은 자꾸 실수하는 겁니다.
13절 말씀을 읽어 보실까요?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21절 말씀에서도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하셨는지를 잊어버리면, 그는 영적 조급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빨리 빨리 뭔가가 눈에 보여 지는 것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게 나타나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 그리고 불신앙의 모습을 바로 보이고 마는 겁니다.
-(14~15절) 그들은 광야생활 중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셨지만, 그들은 욕심을 크게 부렸습니다.
왜 그들이 욕심을 내었겠어요? ‘내일은 만나가 안 내릴지도 몰라, 내일은 메추라기가 없을지도 몰라’ 했던 겁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잊은 겁니다. 왜 내일 만나와 메추라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잊은 겁니다.
-(16~18절)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을 질투했습니다.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셨는데, ‘왜 그들만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나도 그 정도는 된다’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들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은 겁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자신들이 앞서려고 하는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던 겁니다.
-(19~22절) 그들은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고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를 우상으로 섬겼던 그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는데, 다시 그 아래로 들어가려는 겁니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에서 보호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잊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들 머리로 생각해 낸 신인 ‘소의 우상’을 섬겼던 겁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지(인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머리가 앞서기 시작했던 겁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실수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망각하거나, 인내하지 못하고 있는 영적 태도가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