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8:1~12>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20)
2009년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에서 ‘종교와 국가의 사회경제적 지위 간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전 세계 114개국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설문은 전 세계 성인 84%가 “매일의 삶에서 종교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라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설문결과를 보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1인당 국민소득이 평균 2,000달러 이하인 국가)의 경우는 국민 95%가 “매일의 삶에서 종교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방글라데시, 예멘, 인도네시아, 말라위, 스리랑카’를 포함한 최빈국에서는 응답자의 99%가 종교가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1인당 국민소득이 평균 2만5000달러 이상인 국가의 경우는 종교가 중요하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20~30% 정도였습니다(대부분이 유럽 국가들). 유럽은 과거 2천년 동안 기독교 문화 속에서 성장해온 나라들이었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급격히 유럽교회가 몰락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72%)와 그리스(71%) 그리고 미국(65%)은 국민평균소득이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문조사를 총괄한 갤럽의 스티브 크랩트리는 “…종교가 가난의 국가의 가난에 맞서 싸우는 수많은 이들이 상황을 극복하는데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을 지지해 준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런 역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이미 보고 있습니다. 종교가 가난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통계적으로 맞지만,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 어떤 신이 그의 인생에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이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증거들이 있어왔습니다.
99%의 사람들이 종교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던 방글라데시, 예멘, 인도네시아, 말라위, 스리랑카 등의 나라들은 말라위를 제외한 대부분이 무슬림국가이거나 불교국가였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도 북아프리카는 대부분이 무슬림인데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남아프리카의 경우는 기독교 비율이 높고 북쪽보다 더 부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복음이 들어간 나라와 대륙마다 다 부강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종교의 힘을 의지하지만,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죽음의 우상을 의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 동안은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 관한 말씀을 살펴볼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다윗과 솔로몬 이후에 가장 훌륭한 왕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아하스’였습니다. 역대 유다 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었고, 수많은 우상숭배를 온 나라 안에 가득하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나라는 점점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25세 때 왕이 되어, 29년간 통치하게 됩니다. 히스기야에게는 스가리야(스가랴)의 딸인 신실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8:2절에서는 그 제사장 스가랴를 ‘진실한 증인’이라고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영적 멘토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깐 히스기야는 영적인 복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이사야로부터 ‘진실한 증인’으로 불리던 제사장 스가랴였고, 그의 딸이 히스기야의 어머니였던 겁니다. 또한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영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부친이었던 아하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경청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좋은 영적 멘토가 있는 것은 참 복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믿음이 없어서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악 영향과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어머니나 조부모님이 신실한 신앙을 갖고 있다면 그 믿음의 영향을 받아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좋은 집사님, 신실한 성도님이 계시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정말 큰 복인 것입니다. 내가 아직 신앙도 없고, 성경도 잘 모르지만 그 신실한 분들과 영적 멘토와 자꾸 좋은 시간들을 가지면 여러 가지 믿음의 선한 영향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고,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래서 여러 성도님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남유다 왕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래도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학생들 중에서도 히스기야 같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만난 좋은 믿음의 선생님 때문에 그가 이 시대의 히스기야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는 우리 자녀가 지금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 아이가 장차 히스기야 같은 위대한 인물로 성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신실한 어머니와 진실한 종인 제사장 외할아버지 그리고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가 늘 그의 주변에 있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아하스 왕이 여기 저기 세워 놓은 우상들을 볼 때마다 영적인 깊은 탄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되자 그는 온 땅에 있는 우상 숭배의 장소들인 산당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우상들인 주상들을 깨뜨리고, 아세라 목상들을 찍어버리고, 심지어 광야시절 불뱀 사건으로 만들었던 놋뱀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그 놋뱀을 부수고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5절을 보시면,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히스기야 전과 후 왕들 중에 히스기야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는 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그는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조상이며 유다 왕조의 시작인 다윗은 비천한 목동소년이었지만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했었기 때문에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면,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연합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에게서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얼마나 그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그 분의 뜻대로 살려고 애썼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과 연합되어 살았던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창5:24)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간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창21:22)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모세와 다윗(삼하8:14)을 들 수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케 하시는 복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복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나타났었던 복이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요셉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늘 형통한 자가 되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연합되면,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의 삶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깁니까? 결국은 여러 가지 잘못된 욕심들 때문에, 죄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같습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왜 관계가 삐그덕 거리고, 나중에는 원수처럼 지냅니까?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다. 둘 중에 누군가 한 사람이 잘못된 욕심을 부리거나, 둘 사이에 해서는 안 될 무엇인가를 한 겁니다. 그러면 그 둘의 관계는 지속될 수가 없는 겁니다. 왜 많은 동업관계가 깨질 수밖에 없어요? 중간에 돈이 없었을 때는 서로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누군가가 돈에 대한 욕심을 부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그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부부 사이에도 둘 사이에 죄가 끼면 그 관계가 좋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도 좋은 게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맨날 부인 속을 힘들게 하는데 아침밥이 맛있는 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부인이 맨날 남편 마음도 몰라주는데 부인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둘 사이에 죄가 사라지고, 잘못된 욕심들이 사라지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살아간다면 세월이 지나도 그 사랑이 점점 더 성숙된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9:2절 말씀에서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귀가 둔해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고 계신 게 아닙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손이 짧아서 우리를 못 도우시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낀 겁니다.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게 많은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축복하시고 복을 내려주신다면 그 사람이 변화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걸 모르시겠습니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닫아 놓는 겁니다. 우리의 눈물과 회개와 변화가 시작되면 하늘의 문 또한 열려지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와 그의 나라가 부강해져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은 어떻게 됩니까? 히스기야 왕 4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를 쳐들어갑니다. 그리고 3년 동안 그 성을 에워쌉니다. 결국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는 함락되고,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 전역으로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12절에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5절과 6절의 히스기야 왕과는 반대되는 기록입니다. 연합된다는 것은 생각과 뜻이 같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우상숭배를 했는데, 그것은 우상과 연합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상의 목적이 뭡니까? ‘물질과 성’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그 우상들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우상과 연합된 결말이 뭡니까? 결국 몰락이었던 것입니다. 수천 년 전부터 그리고 오늘날 까지도 같습니다.
사람도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만나고 교제하는가? 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가치를 갖고 사는가? 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도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시길 바라겠고, 또 여러분이 좋은 이웃이 되어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스가랴 1:3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면,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