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재앙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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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8:11~20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모세오경 중에 마지막 다섯 번째 성경인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이 끝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성하기 직전에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 고달팠던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 가나안에 이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복과 재앙 사이에’ 서 있는 겁니다. 그들은 40년간 재앙과 같고, 저주받은 인생과 같은, 고달픈 광야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요단강을 건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축복을 담을 마음의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진 풍요는 그 사람에게 참된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풍요는 그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인생을 아주 빠르게 타락시키고, 더 망가지게 할 것이고 결국 그가 가졌던 그 큰 복은 안개처럼 사라지게 될 것 입니다.

모세는 광야와 가나안 땅 사이에 서 있는 (복과 재앙 사이에 서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비해야 할 ‘마음의 그릇(축복의 그릇)’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이 주어져도 그 복이 다 새어 나갈 깨진 항아리를 준비하면 그 복은 오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을 담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 마 음의 그릇’이 제대로 준비된 사람은 그 복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낮추실 때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시조(始祖)’입니 다. 그 아브라함이 이삭이란 아들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부족이 살던 땅에 큰 기근 이 있었고, 이스라엘이란 부족원 70 명은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가 살기 시작 했던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그들은 그곳에서 무려 430년 간을 살게 되었지만, 그들은 수백 년간 애굽인들의 노예로 고통 속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들인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언약을 하셨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6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광야 여정을 시작하게 하 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8장 15절을 보시면,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지중해변을 따라 동북쪽으로 가다 보면 오래지 않아 가나안 땅 남서부 경계에 이르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해변이고, 무역로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여정 중에 백성들이 마실 물과 먹을 것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도, 먹을 것도 없고, 불뱀과 전갈이 가득하고, 햇볕을 피할 곳도, 쉴 만한 곳도 찾을 수 없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꼭 시련과 고난 그리고 인생의 광야와 같은 시험의 때를 거치게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하나님, 주시려면 그 냥 빨리 주시지…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라고 푸념 을 늘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2012년 한국에서 신나게 사역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는 제게 필리핀 한인교회 개척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제가 전혀 생각지도, 예상치도 못했던 비전 과 사명이었습니다. 주님께 그 부르심과 사명이 맞는 것인 지 묻고 또 묻는 시간 이 있었고, 저는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 때문에 결국 순종하고 여행조차도 한 번도 와본 적 없었던 이 필리핀 세부에서 한인교회를 개척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 그러면 교회가 문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오고, 교회는 크게 부흥해서, 큰 성전도 건축하고, 필리핀 사람들 도 선교하고, 엄청난 역사들이 막 일어나고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한 교회가 영적 불모지와 같은 이 땅에 세워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경험하고 또 경험했습니다. 내가 부 족해서 겪게 된 시련과 고난도 있었고, 외부적인 여러 가지 요인으로 겪게 된 힘겨운 고난의 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시면,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 려 하심이었느니라”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가 고생하는 걸 원하겠습니까? 하나님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그 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과 믿음의 그릇을 먼저 준비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에게 그런 고난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런 고난이 아니면 절대 그런 마음의 그릇과 믿음의 그릇은 준비될 수 없기도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깍는 데는 고통스럽고 번거로운 시간 이 필요하겠지만, 고통스러운 그 시간을 통해 그 원석 속에 숨겨져 있었던 찬란한 보석이 비로소 세상에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에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으시지만, 우리로 하여금 낮아지고 낮아지는 시간을 갖게 하시는 것입 니다. 우리를 낮추시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주 앞에서 겸손하라.

광야라는 곳 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곳 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도 광야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광야를 통해 자신의 전적무능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이전에 갖고 있었던 교만을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개척하기 전에 10년간 부목사로 사역하던 곳은 1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대형 교회 였습니다. 한국에서 1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몇 개나 되겠습니까? 그런 교회에서 나름 사 역에 좋은 성과들도 있었고, 담임목사님께도 인정받고, 많은 성도들의 사랑을 정말 한 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하게 하고, 교만하게 만들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필리핀의 한인교회 개척 사명을 주셨던 거 같습니다. 막상 와서 교회를 개척해 나가는 데, 그동안 제가 잘났다고 생각했던 모든 자신감과 생각들 이 오래가지 않아 다 무너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별거 아닌 사람이었던 겁니다. 이것이 제게 광야였고, 그것을 통 해 주님 앞에 낮추시고 낮추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제가 보기에도 참 잘난 분들이 계 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 하나 제대로 된 믿음 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그에게 큰 복을 주시려고 하실 때, 꼭 그를 낮추시고 낮추셔서 그의 심령을 가난하게, 겸손하게 만드시는 과정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을 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만을 신뢰하라.

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 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광야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곳 이었습니다. 그런데 15절 하반절에서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라고 말씀하셨고, 16절 상반절에서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 신뢰하며 살아갈 때, 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뭔가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인생의 광야로 들어가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인생의 광야로 낮추실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시고, 우리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 님만 신뢰하며 사는 훈련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준비해야 할 마음의 그릇, 축복의 그릇, 믿음의 그릇인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광야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의 참된 복을 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영적 부흥을 이끌었던 위대한 전도자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이렇게 말합니다.

“용기를 내라 우리가 오늘은 광야에서 걷지만, 내일은 약속 의 땅에서 걸을 것이다!”

때로 하나님께서 인생의 광야와 같은 것을 통해 우리를 낮 추실 때 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광야에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 광야는 우리의 영적 훈련소와 같은 곳 입니다. 겸손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믿음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이 훈련소를 통해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의 그릇, 축복의 그릇 을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광야를 걸을 지라도 내일은 약속의 땅을 걷게 될 것입니다.

2. 풍요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넉넉한 풍요 속에 살게 될 때부터가 어쩌면 영적으로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 하나 님만 의지하고 바라지만, 걱정이 없고 모든 일이 형통하고 풍요로울 때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위기는 풍요의 날들을 보낼 때인 것 입니다.

12절과 13절을 보시면,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신명기 말씀이 기록되고 있던 때는 아직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입니다. 아직은 그 풍요가 뭔지도 잘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풍요 속 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풍요라는 복을 주셨 을 때, 그들이 어떻게 될지를 이미 예상하고 계신 것입니다.

14절을 <상반절> 보시면,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 하노라…”

마음이 교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풍요를 주셨다면 , 또 는 앞으로 여러분에게 아무 걱정과 근심이 없는 어떤 풍요 의 때를 주셨을 때 두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하나님을 잊지 말라.

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 울 때는 그렇게 매달리고 하나님을 찾다가 , 좀 살만하면, 배에 기름이 좀 끼면, 하나님의 도움이 별로 필요 없는 삶을 살다 보면 점점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는 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게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더 될 때가 많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살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잊으신다면 괜찮으시겠습니까?

둘째, 은혜임을 잊지 말라.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잊었는가? 를 통해 구분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왕이 될 수 있었지만, 그가 그 은혜를 잊을 때 하나님께 서는 그를 패하셨던 것 입니다.

17절을 보시면,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그런데 18절을 보시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을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 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멀쩡히 잘살고 있으니, 특별히 어디 아픈 데도 없으니… 내가 잘난 줄 아는 겁니다.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렇게 크게 성공한 거 같은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를 수도 있고, 갑자기 중병에 걸려 당할 시안부 인생을 살기도 하는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입니 다. 이스라엘 왕국은 초대 왕인 사울, 2대 다윗, 3대 솔로몬왕 까지 이렇게 약 120년간은 통일된 하나의 이스라엘 이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 때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 왕국 &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 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심각한 영적, 도덕적 타락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건국된 지 약 200년 즈음인 BC.722년 앗수르(아시리아)에 멸망 당하게 됩니다. 하지 만, 남유다 왕국은 비록 인구도 적고 , 영토도 좁고 , 여러 가 지 나쁜 조건과 상황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선조인 다윗 왕 의 신앙을 믿음의 유산으로 이어갔기 때문에 더 오랜 세월 동안 부강한 왕국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속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70여 년 전 우리 민족도 ‘남한과 북한’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 우리 남한(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따랐습니다. 1950년대만 해도 북한은 남한 경제력의 두 배 였습니다. 대부분의 지하자원은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북 한은 중공업이 발달 했지만, 남한의 주업은 농업 이었기 때문 에 북한보다 가난했던 겁니다. 하지만, 현재 남한은 북한보다 수십 배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있는 겁니다.

뭐가 문제였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원인들을 나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 속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 였는데,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유물론’입니다. 유물론은 만물 의 근원을 물질로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 지 (종교) 를 인정하 않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끝은 무신론입니다.

북한이 공산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평양은 한반도에서 기독교의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산화되면서 교회를 불태우고 , 목회자를 박해하고 처형하니 수 많은 기독교인들 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남으로 피신한 겁니다. 북이스라엘과 똑같은 패턴이었습니다. 피난민들이 남으로 내려와 세운 대 표적인 교회가 ‘한국의 성자’라 불리던 한경직 목사님이 개척 한 ‘영락교회’입니다.

‘복과 재앙’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과 북한과 같이 환경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고 있을 지라도 그 복이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 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복이 재앙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남유다 왕국과 우리 남한과 같이 영토도 좁고, 인구도 적고, 자원도 없고,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 재앙과 같은 상황 에서도 하나님 편에 있는 이들은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26절과 27절을 보시면,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 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예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던 남유다 왕국과 우리 대한민국은 이 언약의 말씀대로 계속 그 복을 받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신명기 11장 28절을 보시면,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이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우상 숭배는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공산주의 국가 중에 잘 사는 나라가 있든가요? 인권을 존중 되던가요? 개인의 자유가 있던가요? 종교의 자유가 있던가요? 그들의 사상은 물질과 돈이 신이 되는 또 다른 우상 숭배일 뿐입니다. 한 개인의 인생도, 한 민족의 역사도 ‘복과 재앙 사이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 선 인생과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 떠나 교만과 거만과 불신앙에 사는 이들은 재앙과 저주 아래에 갇혀 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성경도 그 사실을 말씀하셨고, 세상의 모든 역사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낮추실 때
  2. 풍요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