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25~36>
젊은 남녀가 사랑하는 거 보면 가끔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3자가 볼 때 ‘저 여자는 저 남자가 뭐가 좋아서 저럴까? 저 남자는 저 여자가 뭐가 좋아서 저럴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저 사람이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그런데 이러저러한 것들이 좋다 라고하기도 하지만, 그 말들은 굳이 왜 좋냐 말하라 하니깐 그냥 말하는 거고 사실 사랑은 이유와 조건이 없는 게 정답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냥 끌리고 그냥 그 사람이 좋은 겁니다.
[겸손의 왕] 이란 찬양이 있습니다.
『왕 겸손의 왕, 평범한 목수의 아들, 주 종으로 오신, 죄인을 섬긴 창조주, 주의 손 거친 못이 찔렸고, 주의 발 갈보리 오르셨네, 모든 것 내어 주신 주님, 우리의 죄를 씻었네, 주가 싫어 거절한 우릴 위해 고통당했네, 무엇을 향한 사랑인지, 무엇을 바란 희생인지, 당신은 사랑에 눈먼 주님』
이 가사 중에 1절 하반부에 있는 ‘주가 싫어 거절한 우릴 위해 고통당했네, 무엇을 향한 사랑인지, 무엇을 바란 희생인지, 당신은 사랑에 눈먼 주님’이란 가사 속에 깊은 은혜가 있습니다. 죄의 쾌락에 빠져 있는 우리는 빛 되신 주님이 싫어 그 분을 거절했지만, 주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정말 주님은 사랑에 눈먼 주님이신 거 같습니다.
이사야서 37:32절 말씀에 보시면,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나라가 몰락하고 그 땅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로 완전히 폐망케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 한 민족은 세계 여러 족속 중에 그렇게 사라져버려도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중에 ‘남은 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시온 산에서 소수의 남은 자를 통해 다시 이스라엘을 번성케 한다는 예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셨던 사실을 끝까지 지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이스라엘은 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완악했고, 어리석어 메시야 되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 복음은 이스라엘을 벗어나 이방인들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민족인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 때까지 예수의 메시야 되심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30절 말씀에서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몰랐고, 그 말씀에도 순종치 않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먼저 전해졌던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복음이 이방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개처럼 여겼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26절, 27절을 보시면,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구원자를 보내셔서 그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은 것에서 돌이키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며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셨던 그 구원의 언약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범죄했고, 그들은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랑에 눈먼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결국은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9절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 구절의 쉬운성경 번역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선물을 주시고 부르신 후에 무르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구원의 줄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분명 범죄 했고, 하나님 앞에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다시 나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부족해도, 자격이 없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반드시 그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에 눈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