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인가?

요한복음 3:31~36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3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1절까지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만남과 대화’ 부분이고, 22~30절까지는 ‘세례 요한의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 부분이고, 오늘 본문인 31~36절까지는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증언으로서 ‘메시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31절을 보시면,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이 땅에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결국 ‘그는 땅에 속했기 때문에 땅에 속한 것만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직접 가본 사람은 미국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호주를 가본 사람은 호주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필리핀에서 살아본 사람은 필리핀에 대해서 상세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상세하게 말하기 어려운 겁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수백 년 만에 다시 나타난 선지자 엘리야가 아닌가?’할 정도로 사람들이 두려워 했고, 그에겐 대단한 영적 권위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대단한 건 맞지만 그는 땅에 속해서 땅에 것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고, 만물 위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2절을 보시면,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셨고, 그는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은유적 표현인데, 어떤 사람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말한다면 얼마나 사실적이고, 구체적이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늘에 계셨고, 하늘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들으셨으니 그의 증언은 세례 요한과는 비교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며, 참된 메시지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36절을 보시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땅에 속한 세례 요한의 증언도 탁월하고, 권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의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을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증언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 거부하는 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그 말씀을 거역할까요?

1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탐심이 있으면 죄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것이 잘못된 거라는 것 알아도 그 사실과 진리를 무시하고, 덮어버리려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탐욕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결말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인 것입니다. 탐심과 탐욕을 택한 그 순간은 달콤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 벌 받을 자에겐 반드시 벌을 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처럼, 탐욕을 심었으니 그 죄의 벌과 심판이라는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죄과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선행과 공로로 가능할까요? 얼마나 착해야,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얼마나 큰 공로를 세워야… 그 죄를 용서받고, 구원과 영생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많은 공부를 했고,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일들을 역사 속에서 봐 왔지만 그 어디에서도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지식과 철학과 도덕과 금욕과 각종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의로움을 받아 구원 받으려 했지만, 구원은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오직 예수 이름뿐입니다.

제가 열아홉 살에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그때 저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죽어 천국에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의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붙잡아 주시고, 도와 주셔서 이 땅에서도 작은 천국을 맛보며 살아가더라는 겁니다. 제가 가정을 이루니 저의 가정에도 그 작은 천국이 있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오직 예수뿐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구원은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오직 예수 이름뿐입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 이름만이 내 인생의 소망임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