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신 이유

요한복음 4:1~6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의 한 마을을 통과하시면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 마을을 지나게 되셨는지, 그 과정 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무엇인지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세례 베푸시는 것이 세례 요한보다 많다는 말을 듣고, 요한을 경계하듯이 예수님에 대해서 더 강한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매우 엄격한 율법주의 학파였고, 그들은 유대 사회의 종교 지도자 그룹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등장하더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나사렛 예수의 등장에 더 강한 경계심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은 공생애 초기였는데, 너무 일찍부터 바리새인들과의 대립과 논쟁에 휘말리게 되면, 정작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해야 할 메시야로서의 사역에 방해가 될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지역을 떠나시기로 하셨습니다.

3절과 4절 말씀을 보시면,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1세기 이스라엘 땅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고, 행정구역상 종교와 정치의 중심인 예루살렘이 있었던 <유대>, 과거 북이스라엘 사람들과 앗수르 사람들의 혼혈 민족이 거주하던 <사마리아>, 그리고 유대인들이었지만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던 <갈릴리>, 예수님의 가정도 그 갈릴리의 나사렛이란 마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주 활동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경계와 압박이 있었던 유대 지역을 떠나 갈릴리를 향해 가시려는데, 4절에 보니깐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귀환하는 과정 속에서 ‘혈통적 순수함과 종교적 순수함’을 지켰던 사람들이었다는 영적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는 BC.722년 앗수르의 침공으로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앗수르인들과의 혈통적인 혼혈이 되었고, 여호와 신앙과 이방 우상의 혼합종교를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여겼고, 그들과 교제하거나 그들의 땅을 지나가는 것조차 꺼려했던 것입니다.

유대 지역과 갈릴리 지역 그 중간에 사마리아가 있었는데, 유대인들이나 갈릴리 사람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를 갈 때, 갈릴리에서 유대를 갈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면 직선거리로는 3일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동으로 혹은 서쪽으로 가서 요단강을 건너 멀리 돌아 6일 정도 걸려 이동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경건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교제하는 것도, 그들의 땅을 가로질러 가는 것도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절 말씀의 늬앙스는 ‘예수님께서 반드시 그 사마리아를 통과해야겠다’는 어떤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시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우리가 오늘 본문의 사건을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의 우물가에서 여섯 번이나 결혼한 한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본문과 구절들을 수십 번도 더 봤을 텐데, 오늘 이 구절들을 통해서 새로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5절에서 수가라고 하는 동네는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라는 기록이 있고, 6절에서는 ‘또 야곱이 우물이 있더라’는 기록이 있는 겁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그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일절 교제하지도 않고, 그들의 땅을 가로질러 가려 하지도 않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신 이방인과 같이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사마리아는 과거 야곱(이스라엘)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있고, 야곱(이스라엘)의 우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려 했을까요? 1차적으로는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그 여인을 만나려 하셨고, 2차적으로는 버려진 그 땅, 타락하고 부패한 그 땅이지만 그곳은 과거 이스라엘의 족장인 야곱의 땅이고, 우물이라는 암시를 주시면서 그 땅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크리스마스(성탄절)’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버려지고 타락한 사마리아와 같은 이 땅에 친히 오신 이유는 우리를 고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그 땅으로 지나가려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였지만, 주님은 ‘내가 저 땅으로 가야겠다. 내가 저리로 지나가야 겠다. 저기에 내가 만나야 할 가련한 여인이 있다. 저기에 내가 사랑하는 한 영혼이 있다. 내가 저 땅을 치유해야겠다’라고 말씀하시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주님은 ‘내가 저 땅으로 가야겠다. 내가 저리로 지나가야 겠다. 저기에 내가 만나야 할 가련한 여인이 있다. 저기에 내가 사랑하는 한 영혼이 있다. 내가 저 땅을 치유해야겠다’라고 말씀하시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를 고치시고 회복하실 것을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