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망 없는 나에게도

시편 107:17~22

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서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제가 세부에서 한인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고 있는데, 이곳은 <관광과 어학연수 그리고 조기유학>에 특화되어있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 교인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고, 그것과 관계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자녀를 조기 유학시키려고 오시는 성도님 한 가정이 이곳에 정착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조언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것을 정말 고마워하면서 잘 정착해 나가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의 경우는 우리의 호의와 조언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당연히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되기도 하시고, 고생도 더 많이 하고, 사람한테 상처도 받고, 재정적인 손해도 더 많이 겪게도 됩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나중에 슬그머니 손을 내미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 속이 보이고, 너무 얄밉기도하고 그러니깐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피드백이 좋지 않으니 더 이상 돕고 싶은 마음이 안 들기도 합니다. 이런 게 솔직한 우리 인간의 마음인 거 같습니다.

시편 107편 17절을 보시면,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이 구절에서 “미련한 자”라는 말은 ‘육신적인 탐욕에만 몰두하는 자, 세상적이고, 육욕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소유한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고난을 받아”라는말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그들이 스스로 그들에게 고난을 가져오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바베론에 포로로 끌려온 것은 ‘그들이 육신적인 탐욕에 몰두하다 고난을 스스로 자처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받을 벌을 받고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그 길 자체가 잘못된 길이기 때문에 그 결말이 결코 좋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을 보시면,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사람이 너무 극심한 고통과 시련 가운데 있으면 입맛이 떨어져 밥 한술도 넘기기 힘든 겁니다. 또는 너무 고통스러운 질병을 투병할 때에도 입맛이 좋을 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서 “싫어하여”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혐오감을 주는 것, 구역질 나게 하는 것’
등을 가리킬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 구절에서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라는 표현은 지금 그들에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극심한지 마치 죽음의 문 앞에 이른 상황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세속적으로, 정욕적으로, 죄악을 탐하다가 스스로 그 고난을 자처한 것이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받을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거나, 그들을 구원하실 책임과 의무라는 것도 없습니
다. 하지만, 자격 없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인자와 자비가 크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그 고통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좋은 반응이 오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 사람에게 크게 실망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사람에게는 뭔가 또다른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접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참 많이 다르십니다. 참고 또 참으시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고, 손을 내밀고 하루 종일 내민 그 손을 거두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주님을 찾고 부르짖으니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 뻔뻔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범죄한 죄인들을 향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향해 또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때로는 머리조차 들 수 없는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가망이 없는 나에게도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시면,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 교회 주일 예배 때 보면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시는 분이 많습니다. 저는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저 스스로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교자가 부족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 당신의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 때문에 우리 성도들이 다시 힘을 얻고, 그 고난의 깊은 수렁에서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과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도 없는 거 같고, 기도할 자격도 없고, 전혀 회복이란 것에는 가망이 없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자격없다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손 내밀어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한 문장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자격없다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손 내밀어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부끄럽고 자격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