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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 받은 인생”

<사도행전 9:19~31> 

 

 

요즘 울산대 법철학과의 ‘이정훈 교수’라는 분이 간증을 하거나, 강의를 하는 영상이 참 많습니다. 이 분이 20대 초반에 불교도가 된 후 절에 들어가 수행하고, 나중에 영향력을 갖게 된 이후에는 ‘종자연(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체계를 잡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조계종 등)의 지원으로 만든 이 종자연이라는 단체는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법을 이용해 한국교회를 합법적으로 박해하는 그런 단체입니다. 이 분이 그 단체의 브레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던 겁니다.

이 분에겐 기독교와 한국교회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기독교를 집요하게 공부했고, 아침에 성경부터 찾아 읽고, CTS(기독교방송)를 통해 목사님들 설교를 들으면서 비방할 거리를 찾았습니다. 종교개혁사의 위인들(위클리프칼빈, 아브라함 카이퍼 등)을 연구하고, 한국교회사도 빠짐없이 읽으며 한국교회와 기독교를 독하게 연구했던 겁니다.

어느 날 늘 하던 대로 비방할 거리를 찾기 위해 설교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설교하는 목사님이 ‘죄인’이란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는 그 순간 무언가에 압도당하면서 그냥 바닥에 엎드려 ‘아,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에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반응을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오신 거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바울 사도가 회심하는 사건을 나눴었는데, 이 분에게도 그렇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이 분은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고, 그런 혁명을 위해서는 예수 믿는 사람을 먼저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간증 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남을 정죄하고 사회를 비판하면 할수록, 스스로 의롭다 여긴 이들. 그런 의인들이 만든 인류의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언제나 파멸의 그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을 더 완악하게 만들어 가고, 파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이어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십니다. 나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드러낼 때, 결국 세상은 바뀔 것입니다.”

지금은 이 분이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에서 누구보다 앞서 기독교를 변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 설교제목과 같이 고장 나 버린 한 인생을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장 나 버린 한 인생’이 이제 ‘고침 받은 한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 사도에게 극적인 변화가 있었듯이, 이 분도 그런 극적인 변화로 인해 180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1. 문제아에겐 간증거리도 있다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던 청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 그는 시력을 잃었고, 3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기도하는 중에 그 도시의 아나니아라고 하는 믿음의 사람이 기도해 주어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던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청년 사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유대인들이 모이는 각 회당을 찾아다니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가 메시야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21절을 보시면,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다메섹에 있었던 유대인 공동체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놀랐고, 유대인들도 당혹스러워하고 그들 모두가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청년 사울이란 사람이 얼마나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했었는지, 그 열심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반대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언하기에 더 열정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종자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교회를 합법적으로 공격하고 박해하는 단체의 핵심 멤버였던 사람이 변화되었으니 간증할 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1세기 유대 땅에서 기독교 박해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었다가 변화되었으니 간증할 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문제아가 변화되었을 때는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문제라고 하는 거, 고난과 시련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다면 간증할 거리도 그 만큼 많아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고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1일간 우리가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 21명 이상의 각기 다른 강사들의 간증들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간증들을 들어보면 정말 다양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 이른 나이에 남편을 암으로 잃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분의 이야기도 있고,

– UN에서 잘나가던 외교관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아이티 선교사로 헌신한 분도 계시고,

– 어릴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고 시야도 점점 좁아져 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주님을 깊이 만나고 있는 분,

– 전직 깡패요, 조직폭력배로 수많은 전과기록을 갖고 있었지만 변화되어 예수를 전하시는 분,

–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26세에 뉴욕의 가장 큰 증권회사의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아메리카 드림을 이뤘지만 공허함에 술과 마약과 세상의 쾌락에 빠져 살다 목사가 되신 분도 계시고,

– 사업에 크게 성공했다가 하루아침에 망했다가 다시 재기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계신 분도 계시고,

– 서울대병원 아산병원에서 잘나가던 의사였던 분이 에티오피아 자비량 선교사로 떠난 분,

– 아버지와 두 오빠가 모두 자살하고 귀신과 악령에 사로잡혔던 분이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된 간증도 있었고,

– 무당이었던 분이 예수 믿고 놀랍게 쓰임 받고 있는 간증들도 있었습니다.

 

시편 40:1~2절에서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이 시편을 쓴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인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을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다윗 이야기가 차지하는 분량도 상당히 많습니다. 역사서 중에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이렇게 여섯 권은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무엘상, 사무엘하 그리고 역대상 이 세권은 거의 대부분이 다윗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러니 그 안에 다윗에 관해 얼마나 많은 내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에게 늘 기쁘고 행복한 날들만 있었겠습니까? 시편 40편에서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큰 환란 속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처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거 같은, ‘이제는 다 끝났구나.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구나…’라고 생각될 만한 기가 막힌 상황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수렁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5절에서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다윗의 일생에 많은 환란과 시련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주께서 행하신 기적도 많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라고 고백하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련이 많았지만 그만큼 그는 간증할 거리도 많았던 것입니다. 많은 시련 속에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역사도 많았던 것입니다.

가끔 크게 쓰임 받고 있는 목사님들의 교회개척 간증을 들어보면 ‘개척교회에는 죄다 실패한 사람들만 오더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제가 개척을 해서 목회를 해보니 정말 그 말씀이 전혀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잘나가고 성공한 사람들이 와서 교회에 좀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와서 겸손히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교회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목사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오히려 교회에 큰 분란을 일으키고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실패한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교회의 도움이 필요하고, 주님의 전적인 은혜가 없이는 안 되는 그런 분들은 심령이 가난해져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이제 신앙생활 제대로 좀 해보려고 하는데, 그런 분들에겐 왜 그리 고난과 시련이 많은지, 담임목사인 제가 그 분들에게 해 드릴 거 없어 안타까울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 저 성도가 이제 믿음 생활 제대로 해 보려고 하는데, 이제 교회에 충성하려고 하는데, 저 분 일 좀 잘 되면 안 될까요? 사업도 잘 되고, 돈도 좀 많이 벌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 잘 되고 있는 거야, 이제 하나님의 플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이제 자기 힘을 다 빼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영적 근력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야, 그래야 진정한 축복을 경험하게 될 거야…’ 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한 가지의 시련만 닥쳐와도 힘든데, 한두 가지가 아니라 서너 가지가 한꺼번에 닥쳐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걱정도 없이 멀쩡히 잘만 살아가고 있는 거 같은데, 왜 나만 이런 고난과 시련 속에 있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미국의 영재교육협회 회장을 지낸 ‘빅터 고어츨(Victor Goertzel)’은 『세계적 인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라는 책에는 세계의 저명인사 600명을 사례별로 분석한 후 이런 말을 합니다. ‘성공을 이뤄낸 유명 인사들의 어린 시절을 수십 년에 걸쳐서 탐구한 결과,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들 모두 어린 시절 넘지 못할 거대한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들이 맞닥뜨린 신체적, 정신적, 금전적인 장애물은 오히려 성공을 위한 강한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만약 그들에게 뛰어넘어야 할 문제가 전혀 없었다면 그렇게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 속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다면 간증할 것도 많아질 것입니다. 지금 이 문제들 때문에 나는 승리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이것이 내게 더 큰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 뛰어넘어야 할 이 문제들을 넘지 못하고 자꾸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도전하고 도전하다가 결국 위대한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러분은 하나님께 더 크게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2. 좁은 길을 두려워하지 말라

청년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을 보통 ‘바울의 회심(回心)’이라고 말합니다.

한자에서 이것을 ‘돌아올 회(回)’자에 ‘마음 심(心)’자를 쓰고 있어서 ‘마음을 돌이키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회개’라는 말과도 섞어 쓰고 있습니다.

‘회개(悔改)’라는 말의 한자어는 ‘뉘우칠 회(悔)’와 ‘고칠 개(改)’자를 쓰고 있어서, 이것은 마음의 뉘우침과 잘못된 행동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깐 진정한 회개라는 것은 마음으로도 뉘우쳐야 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고쳐야 회개에 합당한 진정한 회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에서 회개라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Metanoia(메타노이아)’라는 단어인데, 원어적인 의미는 ‘마음을 부수고 다시 세운다.’는 뜻입니다.

내 안에 잘못된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부숴버리고 그곳에 새로운 마음의 집을 세우는 겁니다. 우리 안에 세속적인 마음이 있고, 이기심과 탐심과 교만함과 음란한 마음과 같은 못된 마음들을 부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다닌다고 해서 다 온전하고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환자들이 오는 곳이고, 변화되어야 할 사람이 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잠시 말씀 드린 어떤 도지사의 부인이 ‘혜경궁 김씨냐 아니냐?’가 요즘 한국에서는 큰 이슈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실 하나가 나왔는데, 그 도지사의 부인이 우리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인 ‘분당우리교회’에 등록된 교인이고, 집사라는 겁니다. 저는 그 뉴스를 접하면서 제발 그 분이 아니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가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까?

그런데 만약 그 이슈 속의 그 사람이 그 분이라면, 만약 같은 사람이라면… 이건 너무 실망스런 뉴스가 될 것입니다. 또 한 번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은 그들과 함께 비판받게 될 것입니다.

뭐가 문제였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야 하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만 다니는 것 갖고는 부족합니다. 진정한 회심과 회개가 이뤄져야 하는 겁니다. 그 전에 갖고 있었던 잘못된 마음, 못된 마음, 악한 마음, 교만한 마음, 거짓된 마음…과 같은 죄의 마음들을 부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고, 선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심과 회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행동이 따라 바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행동이 바뀌는 게 진짜 회개인 것입니다.

 

그런데 23절 말씀을 보시면,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청년 사울이 회심하고 열정을 다해 예수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는 예수를 증거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 동안 종교적 동지들이었던 유대인들이 이제 사울을 죽이려 작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몰래 광주리에 매달려 성벽 밖으로 달아내려 피신해야 했습니다.

청년 사울이 회심한 사건을 통해 그는 예수 십자가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회심을 통해 그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른 나이에 유대 공동체에서 인정받는 청년 리더십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유대 사회에서 탄탄대로를 걷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대교에서 기독교에 회심하는 것은 그동안 걷던 평탄대로가 아닌 좁은 길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니엘 기도회 때 강사 중에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이해 안 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서울대병원과 아산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던 분이 어느 날 에티오피아로 선교를 떠나신 겁니다. 그것도 자비량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김태훈 선교사님이 한국 최고의 병원에서 그냥 의사로 있었다면 어땠겠습니까?

브라이언 박 목사님 같은 경우도 26세 때 뉴욕 증권시장에서 가장 큰 회사의 부사장까지 올랐습니다. 무슨 부족함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목사가 된 겁니다.

헬렌 킴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분은 모두가 선망하는 UN에서 일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 역시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아이티의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 이후 겪어야 할 물질적인 어려움과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이 분들 모두 치러야 할 대가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간증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분들이 그 좁은 길로 가면서 그 길을 두려워하거나, 그 길로 들어선 것을 후회하는 모습을 발견하셨습니까? 오히려 그 좁은 길로 가는 것을 영광스러워하며 힘들고 어렵지만 부르심의 사명이 마쳐지는 날까지 가고자 하는 결단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진정한 회심과 회개에 이르기 위해 우리 안에 부숴버려야 할 마음들을 부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새로운 마음과 인생을 건축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버리기가 힘들 수 있어요. 그 동안 살아온 그 패턴을 바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방향을 바꾸기가 겁이 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못된 마음들, 바르지 못한 마음들은 결코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분노와 미움과 상처와 열등감과 거짓과 속임과 교만과 음란과 모든 탐심의 마음들은 하루라도 빨리 그 모든 것들을 부숴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새 마음을 받아 새롭게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들은 우리 안에 오래 둘수록 우리를 더욱 힘들게만 할 것입니다. 빨리 부숴버리십시오. 새 마음을 받으십시오.

3. 믿음의 동역자를 붙여주신다

참 감사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마음을 갖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의 동역자를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 다니지 않았었던 때를 기억해 보세요. 그 때 누가 여러분 주변에 있었습니까? 혹시 믿었던 한인들 때문에 상처 받고, 다시는 한인들을 만나지 않으리라 결심하게 된 시간들은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부족하고 흠이 많아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은 그를 죽일 계략을 짰습니다.

하지만 그의 전도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된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25절)’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려 피신시키게 됩니다.

또 청년 사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아직 인정받지 못했을 때,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27절)’ 가서 사울이 더 효과적으로 전도사역을 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 하자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30절)’ 데리고 내려가 다시 그를 다른 지역으로 피신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결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절대 혼자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교회 공동체에 들어왔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변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동역자들을 붙여주시는 것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교회 내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저 사람은 저런 게 싫어. 저 사람은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 저 사람은 말하는 게 재수 없어. 저 사람은 그냥 마음에 안 들어. 나랑 너무 안 맞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렇게 마음을 꼭꼭 닫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를 정말 외롭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안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교만함인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분명 배울 게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마음을 겸손히 낮추는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 또 내가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기꺼이 도와 줄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생기는 겁니다.

주님께로부터 마음과 인생이 치유 받은 사람들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마음을 겸손히 낮추고 다른 이들을 인정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 전까지 크리스천들을 인정하지 않을 땐, 그들이 바울의 동역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그들을 받아들이자 그들은 바울의 믿음의 동역자로 바울을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굳은 마음들을 제하여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다른 이들을 향한 부드러운 마음, 겸손한 마음, 인정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축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선한 마음, 바른 마음들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고치시고, 인생을 고치셨다면 이젠 그들에겐 새로운 마음이 임할 것이고, 그들에겐 믿음의 동역자들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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