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8:14~29>
오래 전에 제 인생에 있어서 깊은 시련과 고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그 문제를 겨우겨우 해결하는가 싶으면 또 이어서 더 큰 문제가 터지는 식으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시련이 오니 하루하루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씩 저를 떠나갔습니다. 심지어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겪게 될 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고독(孤獨)’입니다. 한자로 ‘외로울 고(孤)’에 ‘홀로 독(獨)’자를 쓰고 있어서 ‘외롭고 쓸쓸하다’는 뜻입니다. 잘되고 형통할 때는 일이 바쁘기도 하고, 만나자 하는 사람도 많고, 외로울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고난을 겪을 때는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또 바쁘지도 않고, 외롭고 쓸쓸한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게 됩니다.
목사가 외롭고 쓸쓸해지니 기도와 성경을 더 많이 가까이하게 되더군요. 저는 예수 믿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늘 순서적으로 읽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그 시련의 한 가운데 있을 때 욥기와 시편 말씀을 읽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욥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시련을 겪었던 사람이었고, 시편은 150편중에 상당수의 시편이 비탄 시로서 믿음의 사람들이 큰 시련 속에서 탄식하며 부르짖는 기도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때 욥기와 시편에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평안하고 형통할 때 잘 모르던 하나님의 은혜가 매일 매일 단비처럼 제 심령을 적시고,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새로운 소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매일 매일 눈물로 그 은혜에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내 육체는 곤하였지만, 내 영혼은 가장 충만한 은혜의 기간이었습니다.
그 때 오늘 본문인 시편 118:17절과 18절 말씀을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겁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그 당시 매일 매일 내 마음이 사망의 음침한 길을 걷는 거 같았습니다. 시련이 깊어지면 ‘나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제 다시 회복한다는 게 불가능한 건가? 내가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것인가?…’라는 생각들로 위태위태하고 불안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믿는 자로서 그래서는 안 되지만 심하게는 죽고 싶은 마음이 순간순간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우울증 환자처럼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조절이 안 되기도 하다가 온 몸의 힘이 다 빠진 무기력한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분명 살아 숨 쉬고 있지만, 마치 죽음을 앞당겨 그 죽음의 기간을 미리 맛보고 있는 거 같습니다.
내 인생이 끝난 거 같고,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절망적 상황들이었는데, 이 말씀이 저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분명 엄청난 시련의 폭풍이 나를 덮은 것은 맞지만, 그 폭풍과 함께 나 역시도 쓸려 떠내려갈 줄 알았는데 그 죽음의 시련 속에서 주님께서는 나를 살아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너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 너 다시 일어날 수 있다.
– 너는 여기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 너는 살아서 나의 간증자가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18절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분명 나는 지금 심한 징계를 받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심판하셔서 내 생명을 거둬 가시지 않았다면, 아직 내게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22절, 23절에서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건축자가 집을 짓기 위해서 그 집을 지탱하기 위한 주춧돌을 주어옵니다. 이것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람이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벧전2:4~8).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었던 시인은 14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기 원하십니다. 지금은 죽을 거 같이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모든 게 다 끝났고, 내 인생도 끝난 거 같은 마음이 들지라도… 우리는 지금 여전히 호흡하고 있으며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시련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련 속에서 반드시 살아남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간증자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