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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부흥의 원리”

<사도행전 11:19~30> 
– Acts(33) –
 
 
한국의 대기업들 중에는 회사 안에 편의점이 있는 곳들이 좀 있을 겁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려고 하는 이 회사 역시 회사 내에 각종 음료수들과 라면, 스낵, 초코바 그리고 커피숍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출출할 땐 언제든 와서 이 매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매점과 카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직원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는 겁니다. 
 
 
 
혹시 자본이 든든한 대기업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실 텐데, 
 
이 기업은 34살짜리 청년이 3년 전에 스타트업 한 회사(Startup Company)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매년 전 직원에게 여행지원금 300만원’을 준다는 겁니다. 직원들 대부분이 20대, 30대 초반의 사람들인데 한참 일할 나이라 결혼을 위해서, 살 집을 마련하려고 추가 경비가 드는 여행을 포기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행을 통해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매년 이런 파격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세 보증금을 최대 1억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해 준다는 겁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2년 동안 매월 200만 원씩 2년 만기 적금’을 대신 들어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2년을 열심히 일하다 보면 4,800만원인 들어있는 적금 통장을 받게 되는 겁니다. 창업자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그런 복지를 회사가 대신해 준다는 겁니다. 그것을 통해 ‘회사가 사람을 신뢰하고, 사람이 회사를 신뢰’함으로 ‘내가 귀하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능력 있는 직원들이 회사에 계속 남아 있게 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아직은 작은 회사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이렇게 하다가 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매출이 2016년 46억, 2017년 500억 그리고 올해에는 무려 1300억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3년 밖에 안 된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벌써 5천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회사를 창업한 ‘남대광(34세)’대표는 원래 ‘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영상, 세상에서 가장 소름 돋는 라이브, 남자들의 동영상, 여자들의 동영상…’ 같은 동영상 컨텐츠를 만들어 SNS에 올리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다 『blank』라는 회사를 창업해서 지금은 악어발팩, 마약베개, 바디럽, 생활건강, 애견, 패션…등등 18개 자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고, 230여 가지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blank』라는 회사명은 ‘공백, 비어 있음’이란 뜻입니다. 이것과 같이 소비자가 어떤 결핍이 있고, 회사에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그것에 맞는 제품들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리고 영상을 만들어 SNS 등에 올려, 소비자들이 그 결핍을 깨닫고, 그 결핍을 채워줄 제품을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면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공하는 사람들을 연구해보면 그만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젊은 사업가라 할지라도 이런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나가야 할 겁니다. 오늘은 2018년의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올 한해를 살아오시면서 여러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셨을 겁니다. 이제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는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육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우리의 삶의 각 영역에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그 성장과 부흥의 원리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1. 주님의 플랜을 따르라
 
 
사도행전 8장 1절에 보면, 스테반 집사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큰 박해와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19절을 보시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예루살렘 안에 있던 성도들은 성을 빠져나와 곳곳으로 피신을 해야 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베니게(Phoenicia)와 구브로(Cyprus)와 안디옥(Antioch)’같은 도시들과 섬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각 지역의 회당에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무래도 유대인들은 문화와 언어적인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대가 있었기에 흩어진 성도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에 보면, 구브로와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 지역인 구레네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왔는데, 거기서 이방인들인 헬라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유대지역에서만 살았던 유대인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방 땅에서 살던 이들이 했던 것입니다. 
 
21절을 보시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a great number of people)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안디옥은 지금의 터키에 속한 이방 땅입니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 어딜 가나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만의 독특한 종교적 삶의 방식을 고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만 구원 받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혜택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온 어떤 사람들, 지중해의 한 섬에서 온 몇몇의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이런 거 모르니깐, 대도시인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주님께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은 영어번역에서는 ‘a great number of people’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면, 그 도시 전체에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플랜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 승천하시면서 사도행전 1:8절을 통해 하신 마지막 명령이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플랜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대 전 지역으로 그리고 같은 민족이지만 유대인들이 멸시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더 나아가 온 땅인 전 세계를 향해 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초기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인데도 그들끼리만 어울렸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야 부흥하고 좋았지만, 그것은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사도행전 8:1절에서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니깐 어쩔 수 없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전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도 그들끼리만 복음을 나누고 그랬는데,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몇 사람이 안디옥에 살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도시 전체에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도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그들만의 복음으로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복음을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 나의 계획이 옳은 거 같지만, 한 번 실패하고 망하고 나면 우리 인간은 두 손을 들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나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플랜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성공과 부흥의 원리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몇 만 명의 대형 교회를 세우고, 웅장한 성전도 건축하고, 초호화 시설을 갖춘 멋지고 대단한 교회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을 내려놓고, 주님의 플랜을 따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어떤 똑똑한 청년이 대기업에 취직해서 연봉을 1억 씩 받고 다녔다면, 사람들은 그걸 성공이라고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게 다 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서른한 살에 창업을 해서 3년 만에 5천 억짜리 회사를 만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루살렘에 큰 박해와 핍박이 있었을 때, 많은 믿는 자들은 ‘왜 하나님 시련을 막아주지 않았나요? 왜 이 고난이 오도록 내버려두셨나요? 하나님 왜요? 왜요?’하며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우리가 갖고 있는 계획이란 겁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시련과 고난 때문에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오게 되었는지? 주님은 왜 이 어려움을 막아주지 않으셨는지?’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계획은 중단되었지만, 주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내 작은 머리에서 나온 어설픈 계획은 실패했을 지라도, 날 향한 주님의 거대한 플랜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 계획이 실패했다면, 이제 주님의 플랜을 따르십시오. 나는 실패해도, 주님에게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2. 크리스천답게 살라
 
성장과 부흥의 원리 두 번째는 ‘크리스천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거야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거지 이게 성공과 부흥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21절 말씀에서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여기 보시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함께하실 때 이런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된 크리스천들이란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라 생각하신다면, 그 하나님께로부터 복이 온다 라는 사실을 믿으신다면, 크리스천답게 사십시오. 
 
터키의 안디옥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리더 중에 한 사람인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냈습니다.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가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복음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더 잘 깨닫도록 그들을 가르치고, 권면했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시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a great number of people)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안디옥의 목회자로 파송 받은 바나바는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사도들이 그를 가리켜 ‘바나바’라고 불렀는데, ‘예언의 아들, 권면과 위로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일을 참 잘 했던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깐 그는 신앙과 인격의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은 우리의 삶의 행실을 통해서 열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열매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 믿는데 그 마음에 여전히 독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거나, 저주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마음에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이 세부광명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참 착해.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래야 하는 거 같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거 같아…’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못됐냐? 입에서 말만 나오면 거짓말이구나.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이냐? 저런 사람하고는 가까이 하지 말아야 겠다…’ 이런 말들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듣고 있다면, 그는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제대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면 그는 주님을 더 잘 섬겨야 할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아이들이 세부에 와서 모처럼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점심식사를 하러 쇼핑몰에 갔었는데, 지나가는데 커피숍에 앉아 계신 어떤 여자 분이 저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일어서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 분이 누구셨더라?’하면서 일단 그 분 계신 데로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저 목사님 팬이예요’ 하시면서 반가워하시는 겁니다. 제가 별 소리를 다 들어봤습니다. 저 멀리 사시는 분이신데, 우연히 제 설교를 한 번 들으셨는데 그 설교가 그 성도님에게 은혜가 되셨다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리 설교를 잘한다고 해도 목회자가 인격과 신앙이 일치가 되지 않는다면 그 천사의 말들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을 사용하지 않으실 겁니다. 거기에 큰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목회자답게 살아야 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천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자 큰 무리가 더해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들과 여러분의 신앙이 아무관계가 없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셀 수 없이 많이 보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일들, 불법적인 일들,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들은 그들이 평생을 들여쌓은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불법을 눈감아 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십시오. 크리스천답게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3. 믿음의 동역자를 찾으라
 
성장과 부흥의 원리 세 번째는 ‘믿음의 동역자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혼자서도 잘 하던 일들이 세부에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그 일들조차 버겁게 느껴지시기도 하실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좋은 믿음의 파트너가 필요한 것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그 청년 창업가가 회사에 엄청난 복지혜택을 직원들에게 주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실력 있고 괜찮은 사람들을 붙들어 두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5천억을 혼자서 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가 사울(바울)을 찾으러 그의 고향으로 갑니다. 
 
그리고 26절입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a great member of people)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와 사울은 일 년간 안디옥교회의 많은 성도들을 가르쳤고, 예수를 믿던 사람들이 비로소 거기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나바 혼자 했으면 많이 더디고,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동역자 바울이 함께하니 바나바는 더 큰 부흥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바울도 선교여행을 할 때 늘 그 주변에 그를 돕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돕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바울이라 할지라도, 바나바라 할지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바나바나, 바울보다도 못한 사람인데 어찌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세부 생활을 너무 외롭게 가지 마십시오. 외국에 와서 살다보니 믿을 사람이 없어 점점 더 외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분들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여러분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목회하다가 사울(바울)을 데려오는데 ‘저 사람은 공부 많이 한 사람인데,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똑똑한데 안디옥 교회에서 나보다 더 유명해지면 어떻게 하지? 안되겠다. 힘들더라도 나 혼자 다 해야겠다.’ 이런 속 좁은 생각을 갖고 있었으면 안디옥 교회 사역에서 큰 역사는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신약성경의 17권을 썼습니다. 그런데 바울서신의 끝에는 항상 그가 함께 사역했던 동역자들의 이름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대 사도였지만, 그에게도 정말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흥과 성장의 원리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의 동역자가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주고 계십니까? 제게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믿음의 동역자가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또 다른 분들에게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 주시고, 서로 서로 그렇게 함께 믿음의 동역자가 되십시다. 그렇게 이 땅에서 함께 성장해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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