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23~29>
신앙생활하다 보면 간혹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봉사도 하고, 헌신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실 때는 하나님께 실망스러울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의 출애굽을 이끌고, 40년간 광야에서 그들을 이끌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시킨 모세가 정작 40년간 그토록 사모하고 바라던 그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면… 여러분이 모세라면 어떠시겠습니까? 정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모세와 같이 공로가 많은 사람들은 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안 드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모세는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을까요?
1. 불신앙은 복이 없다.
모세는 이제 가나안 땅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요단강을 건너면 40년 동안 바라고 바라던 그 가나안 땅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구합니다.
25절을 보시면,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모세만큼 그 가나안을 사모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 축복의 가나안에 대한 사모함은 누구보다도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기도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40년 1월에 가나안 땅의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 문에 엎드려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민수기 20:8절에서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그래서 모세는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회중을 향하여 “반역한 너희야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쳤는데 그 반석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그런데 민수기 20:12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왜 모세는 반석을 향해 명령하지 않고, 그걸 내리치면서 백성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모세의 지팡이 곧 하나님의 지팡이가 마술 지팡이처럼 된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모세가 받은 건 아닐까요? 모세가 그냥 말씀 그대로 믿고 반석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령해도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모세는 너무나도 잘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실수가 모세의 가나안 땅 입성 자격을 박탈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 하나의 샘플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공로가 많더라도 불신앙은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는데, 누구든 율법적으로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믿음이 없다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신앙은 복이 없습니다.
2.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라
27절을 보시면,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가 우리 성도님들께 몇 차례 말씀드렸지만 2010년, 제가 존경하던 옥한흠 목사님께서 73세의 일기로 소천 하셨을 때, 또 다음 해인 2011년에는 저에게 또 다른 목회 모델이셨던 하용조 목사님께서 65세에 소천 하셨던 사건은 저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어려운데 저렇게 훌륭한 분들이 좀 더 이 땅에 남아계셔서 등불이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것입니다. 심지어 악한 사람들도 장수하는데 왜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빨리 데려가셨는지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지 천국의 실체는 아닙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때부터 언약하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16절 말씀에서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물질적 풍요와 형통함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복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 바로 앞에서 모세의 가나안 입성을 막으신 것은 그 가나안 땅이 실체가 아니고 더 나은 본향인 영원한 천국에 대한 사모함을 일깨우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좀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의 감정이 흔들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땅의 것이 전부라 생각하면 흔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가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더 나은 본향에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왜?”
1. 불신앙은 복이 없다
2.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