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8:1~11>
– 열왕기상(11) –
우리가 종종 경험하고 있는 얘기 하나 해 드릴께요. 여러분이 어느 날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가려고 하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겁니다. 늘 가던데 가기에는 좀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식당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에 인테리어를 근사하게 해 놓은 식당이 오픈을 했는데, 오늘은 거기를 가기로 했습니다. 정말 식당 인테리어를 기가 막히게 잘 해 놨습니다.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좋아서 무슨 음식이든 맛있을 거 같았습니다. 종업원이 와서 메뉴판을 건네 살펴보니 메뉴판도 너무 잘 만들어놨습니다. 사진 속에 있는 요리들이 너무 맛있게 보였고, 그 중에서 음식 값은 좀 비싸지만 정말 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몇 개 골라 주문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요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맛이 별로인 겁니다. 음식 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갑자기 이 돈 주고 먹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웠고, 이 식당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가 막 밀려오는 겁니다. 인테리어도 근사하고, 메뉴판도 근사한데 그 식당은 음식 맛이 빵점이었습니다.
자, 뭐가 문제예요? 인테리어도 중요하고, 메뉴판도 중요하지만, 식당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겠어요? ‘음식 맛’ 아니겠습니까? 식당이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도 아니고, 아파트 분양하는 쇼룸도 아니고, 패션 잡지사도 아닌데, 인테리어가 좀 부족해도, 메뉴판이 좀 어설퍼도 적어도 음식의 맛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음식의 맛이 떨어지면, 아무리 인테리어에 수억의 돈을 들여 치장해놨어도 그 식당에는 두 번, 세 번 가기는 어려운 겁니다.
요한복음 15:5절 말씀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는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게 뭐겠습니까? 좋은 시설, 좋은 환경, 여러 가지 좋은 프로그램, 찬양팀의 찬양도 좋고, 예배 분위기도 좋고… 이런 요소들이 다 필요하고, 다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 예수님이 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겠습니까? 여러분이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하고, 재능도 많고, 나름 성공적인 삶도 살았는데…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주님으로 말미암는 진정한 영적인 열매들은 맺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7년에 걸쳐서 여호와의 성전을 완공한 뒤에 그 성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겨놓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7년에 걸친 엄청난 공사였고, 성전은 대단히 화려하게 건축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축된 성전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없다면 그 성전은 의미가 없는 그냥 일반 건물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와 각 지파의 족장들 등 온 나라 안의 모든 주요 인물들을 소집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 성 안에, 다윗이 특별히 만든 장막 안에 모셔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솔로몬이 7년에 걸쳐 완공한 성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면,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솔로몬은 온 백성들과 함께 법궤를 성전 앞에 두고, 셀 수 없는 양과 소를 제물로 올려드렸습니다. 그 제사 후에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성소를 지나고, 지성소로 들고 들어가 지성소 중앙에 모시게 됩니다.
솔로몬 성전은 크게 ‘성전 뜰’과 ‘성전과 지성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전의 뜰은 말 그대로 지붕이 없고, 성전과 지성소는 지붕이 있는 건물로 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뜰에는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들어가면 그 성전 앞 마당에는 분향단과 큰 바다(물탱크)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물 내부는 전체가 금으로 둘러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성전 안에는 금향단과 금촛대, 떡상 같은 것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가장 안쪽인 ‘지성소’로 들어가면 중앙에는 언약궤가 놓여져 있고, 그 언약궤 위에는 두 날개를 가진 그룹(천사)들이 그 법궤를 가리고 있는 형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언약궤 안에는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봉헌식의 주인공은 ‘여호와의 언약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여호와의 언약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노예로 살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해 출애굽을 하고, 시내산(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의 두 돌판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의 언약의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관계는 언약이 있어야 관계가 맺어지는 겁니다. 부부도 결혼이란 약속으로 맺어진 것이고, 친구관계도 친구로서의 언약이 있는데 이걸 누군가가 깨면 더 이상 친구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처럼 모든 관계는 모두 어떤 언약 하에 관계가 맺어지는 거고, 관계가 없는 사이는 둘 사이에 어떤 언약도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모세가 십계명의 두 돌판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만들어, 그 십계명의 두 돌판을 그 언약궤 속에 넣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막과 지성소를 만들어, 이 언약궤를 그 지성소 안에 넣어두게 하셨습니다. 지성소는 말 그대로 가장 거룩한 장소를 말하고, 그 가장 거룩한 장소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의 상징인 십계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궤를 광야생활 40년 내내 그들이 장막을 쳤었던 한 가운데 위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물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 마태복음 1장의 ‘임마누엘’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임마누엘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도 언약궤는 그들과 함께 있었었고, 마지막 사사시대의 말기에 엘리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사사였을 때, 엘리를 비롯한 그 아들 제사장들이 타락했고, 그들이 그 언약궤를 들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다가 언약궤를 뺏기고 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으로 블레셋에 재앙이 내려, 그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줍니다. 법궤는 약 100년 가까이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됩니다.
후에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언약궤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 1차로 언약궤를 모셔오려다 실패하고, 2차로 다윗 성으로 모셔오게 됩니다. 다윗은 특별히 지은 장막에 언약궤를 모셔오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날마다 그 언약궤 앞에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사무엘하 7장까지의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기뻐하시고 이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장차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건축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호와의 언약궤가 블레셋 땅으로, 산 속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떠돌아 다니고 있었는데, 다윗이 그 언약궤를 사모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셔왔을 때부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사무엘하 8장부터 다윗의 놀라운 승전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사무엘하 8:6절에서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그리고 사무엘하 8:14절에서도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승리케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고,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했습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이 다윗에게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상징적인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떠돌아다니는 언약궤를 다윗이 늘 안타까워하고 얼마나 사모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언약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다윗은 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떠났던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떠났던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 성에 모셔 있었던 언약궤가 이제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들어오는 것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셔도 될 것입니다. 그래서 10절과 11절에 보면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고,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해 서서 섬기지 못할 정도로 짙은 구름으로 성전이 가득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이스라엘을 기뻐하시는 마음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특별연출이었던 것입니다.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은 떠났던 마음이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가 아버지의 유산 중 자신의 몫을 미리 받아,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가 완전히 실패하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시 돌아온 둘째를 아버지는 책망치 않으시고, 달려가 그를 반겨 맞으며, 그에게 새 옷을 입혀주시고, 신발을 주시고, 반지를 끼워주십니다. 반지는 신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탕자 이야기를 기본으로 탕자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을 가사로 쓴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과 영상을 보시고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언약궤를 뺏겼던 이스라엘은 가장 비참한 상황 속에 빠져 있었을 때였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시 언약궤가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전성기(다윗 시대, 솔로몬 시대)를 누렸던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실패와 눈물과 절망 속에 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아버지께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다시 모든 것들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그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