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샘’]
김제환목사(세부광명교회)
폴 브랜드(Paul Brand, 1914~2003년)라는 분은 영국인으로서, 1914년 인도의 남서부 산악지대에서 선교사 부모의 아들로 출생했습니다. 유년시절 성장기를 인도에서 보냈고, 후에 영국의 런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형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인도선교사였던 아버지는 인도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홀로 남게 된 폴 브랜드의 어머니가 당연히 영국으로 철수할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그 땅에 남아서 인도 선교를 계속했던 겁니다. 아들이었던 폴은 의사가 되어 어머니가 계신 인도로 떠나서 어머니와 함께 나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문둥병이라고 불렸던 나병(leprosy) 또는 한센병(Hansen’s disease : HD)은 만성 감염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염의 이유 때문에 일제시대 때에 ‘소록도’란 곳에 나병환자들을 격리했었습니다. 처음 감염되었을 때는 아무 증상이 없다가 5년에서 길게는 20년간의 잠복기를 거처서 신경계, 기도, 피부, 눈 등의 신체의 모든 부분을 파괴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병에 감염되면, 통각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 각 부위에 부상과 감염이 반복되면서 썩어 문드러지거나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때문에 신체의 외관이 매우 흉한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나환자들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눈썹도 사라지고, 코도 문드러지는 등의 안면 기형을 갖게 됩니다. 폴 브랜드는 정형외과 전문의였기 때문에 외과적 수술로 불구가 된 그들의 얼굴과 신체를 교정 내지 재건해서 나병환자들이 사회적 편견을 딛고 재활 및 자립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3천여 차례의 외과수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폴 브랜드가 매일 나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혹시 나병에 전염되면 어쩌지?’하는 불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의 아내가 “여보, 신발은 왜 신고 들어오세요?” 그러더랍니다. 순간적으로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 발에 감각이 없다는 것을 느낀 그는 ‘드디어 내게 나병이 왔구나’ 싶어 급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뾰족한 바늘로 발을 찔러 보았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통각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칼에 베이거나, 못을 밟아도 통증을 못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바늘로 찔렀는데 발이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또 다시 한번 깊이 찌르니 발에서 피가 솟아 나는데 통증이 없는 겁니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통곡을 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발가락에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습니다. 제발 제게 고통을 돌려주십시오” 그는 눈물과 기도 그리고 절망 속에서 통곡하며 그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충혈되고 부은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폴은 다시 한번 바늘로 발 뒤꿈치를 세게 찔렀습니다. 순간 ‘악’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일시적인 마비 현상으로 나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눈물은 다시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고통이라는 감각을 다시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통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가 아픈지 그 통증을 느껴야 치료도 가능한 겁니다. 인생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로 고통 속에 있다면,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할 방법들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예방접종이라 생각하셔도 됩니다. 더 큰 병을 피하고, 더 큰 위기와 재앙을 대비할 방법을 우리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뿐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고통은 우리 인생 속에 도리어 감사의 제목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