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샘’]
김제환목사(세부광명교회)
오랜 역사 속에 동양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했던 것은 유교(儒敎), 불교(佛敎) 그리고 도교(道敎)였습니다. 이러한 동양적 사상의 핵심은 자기 자신의 인격을 잘 갈고 닦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하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 동양인들은 순종적이고 착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6년 일본에서 그런 동양적 사상을 잘 녹여내어 만든 스포츠 브랜드 NIKE의 광고 카피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영상의 첫 시작은 일본의 한 초등학교 복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교실 안에서 진행되는 상황이 복도 밖으로 들려오는 겁니다. 아침 조회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자 반장이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반 아이들과 함께 ‘오늘의 다짐’과 같은 문구를 반장이 선창을 하고 반 아이들이 합창하는 소리가 그 광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들려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반장 : 선생님 안녕하세요
학생 :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장 : 오늘 하루도 사람의 말 잘 듣고
학생 : 사람의 말 잘 듣고
반장 : 분위기 어지럽히지 않고 설치지 않고
학생 : 분위기 어지럽히지 않고 설치지 않고
반장 : 정해진 레일에서 벗어나지 않고
학생 : 정해진 레일에서 벗어나지 않고
반장 : 불가능한 것은 하지 않도록
학생 : 불가능한 것은 하지 않도록
반장 : 즐기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다
학생 : 즐기는 것만으론 의미가 없다
반장 : 장래를 일찌감치 결정하자
학생 : 장래를 일찌감치 결정하자
반장 : 자신의 분수를 알자
학생 : 자신의 분수를 알자
맨 끝에서는 강렬한 비트와 함께 ‘자신의 분수를 알자’라는 말이 학생들의 목소리로 무한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기 분수를 안다’라는 말은 ‘사람마다 자기 몫이 있는데, 그 몫에 만족하고 지나친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지나친 욕심과 탐욕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지극히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광고의 반전은 학생들의 이와 같은 ‘오늘의 다짐’과는 달리 영상은 스포츠 인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광고 카피는 “분위기 어지럽히지 않고 설치지 않고, 정해진 레일에서 벗어나지 않고, 불가능한 것은 하지 않도록…” 이런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축구 골키퍼가 자기 골대에서 벗어나 전속력으로 달려가 상대방 골대에 골을 집어넣는 장면입니다. 이 골키퍼는 학생들의 다짐과는 반대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설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광고의 마지막 반전은 이런 글이 화면에 가득 채워 집니다 『분수를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라는 식의 가치와 교육 속에서만 살면,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한계에 갇혀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미로 보자면 그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정해진 레일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며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 나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속담으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또 다른 속담이 하나 있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겁니다. 왜 이런 속담들이 생겨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과거 우리나라는 신분제도가 있었고, 그 신분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층민들이 상층민들의 생활을 꿈도 꾸지 못하도록 해야 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을 민간에 널리 퍼뜨리기만 하면, 이런 가치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되고 그렇게 될 때 소위 양반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오래 동안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러나 일찍이 기독교 문화와 정신 그리고 가치 속에서 살던 서구인들은 “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o strengthens me(‘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빌립보서4:13)”와 같은 성경 말씀을 암송하면서 불가능과 한계에 도전하며 살아왔던 겁니다. 그래서 엄청난 건축물들과 기차와 자동차와 비행기 등을 만들며 문명을 놀랍게 반전시켜 왔던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백 수천 년이 흘러오는 동안 ‘분수를 알아야지, 뱁새 주제에, 어딜 쳐다봐’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각이 한계에 갇혀 지냈던 겁니다. 우리가 인생의 다음 단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런 생각의 한계를 먼저 깨뜨려야 합니다. 이런 생각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 결코 우리의 인생은 그 다음 단계의 축복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덕적 윤리적 의미에서의 ‘분수를 안다’는 개념도 중요하겠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 의미로서의 ‘분수를 모른다’는 개념은 내 인생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