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샘’]
김제환목사(세부광명교회)
우리나라가 지금이야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사실 1960년대까지 만해도 필리핀보다, 태국보다, 북한보다 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1966년,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쟁에 5만 명을 파병했기 때문에 『월남 참전 7개국 협의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려 했는데,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되고, 우리보다 당시 더 강대국이었던 필리핀에서 그 회의가 개최되게 됩니다. 당시 필리핀의 GDP는 세계19위였으니 큰소리 칠 만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의장이었던 마르코스는 회의시간에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권을 무시하거나 시간을 짧게 주는 등의 수모를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대통령은 “우리도 당신들만큼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는 필리핀에 가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1964년 우리나라가 지독히도 가난하던 시절 우리나라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전쟁 후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빌헬름 에르하르트(L. Wilhelm Erhard, 1897~1977)’ 수상과 정상회담을 갖게 됩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 2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독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지에 대해 궁금했고, 에르하르트 수상은 우리 대통령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중 첫 번째가 한국이 발전하려면 먼저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고, 그 고속도로를 달릴 ‘자동차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동차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제철 산업’이 함께 발전해야 하고, 또 거기에 필요한 많은 기름을 생산해 해는 ‘정유 공장을 건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거기에 항만 등과 같은 사회간접시설을 건설해서 수출을 준비해야 한국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한국경제의 큰 그림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독일의 아우토번 고속도로를 겸하여 방문한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그 후 ‘고속도로 건설 비전’을 갖게 된 겁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변변한 고속도로가 없었고, 국도를 비롯한 간선도로도 비포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도를 이용할 경우 보통 14~15시간이 걸려야 겨우 도착할 정도로 도로사정이 매우 열악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독일의 속도무제한 아우토반과 같은 고속도로는 우리에게는 꿈의 도로와 같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서울과 부산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는 총길이 416.1km에 이르는 도로였고, 공사는 1968년2월에 시작해서 1970년7월에 끝나 2년 5개월 만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건설비는 429억 원이 들었는데, 1969년 당시 한해 국가 예산의 13%였던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 학계와 언론계 그리고 정치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해 예산의 13%에 이르는 ‘그 막대한 공사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재정은 파탄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67년~1968년에 남부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고, 전국적으로 이재민 돕기 운동이 벌어질 정도의 국가적 재난이 온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야당을 중심으로 ‘건설비를 가뭄대책비로 써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차를 갖고 있는 사람은 상류층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에 ‘부자들만을 위한 길이다. 차 있는 사람들만 팔도 유람하고 다닐 것 아닌가? 쓸데없는 돈 낭비다.’하면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 ‘차도 없는데 왜 이리 도로를 넓게 건설하느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5만대의 차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의 처음 설계는 경부고속도로를 16차선으로 했는데, 반대가 심해지니깐 8차선으로 줄이고, 계속 반대하니깐 왕복 4차선으로 건설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독일의 아우토번을 보고 온 대통령은 미래에는 ‘반드시 도로가 부족 할 테니, 경부고속도로 양옆으로 50m는 남겨두고, 건물 신축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또 세계은행과 IMF 역시 세계 최빈국 한국의 경제상황으로 볼 때 한국에는 그런 도로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로부터의 차관을 얻는 길도 끊기게 됩니다.
그러나 1969년 5만대 밖에 없었던 차량이 2019년 2300만대의 자동차가 우리나라의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1969년 3243억 원이었던 우리나라 한해 예산은 470조 5천억 원에 이르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성장을 이뤄냈던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열배도, 백배도 아닌 만 배가 넘는 성장을 이뤄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던 한 사람의 고집과 열정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큰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우리가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시 독일 수상의 조언대로 우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도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세계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제철 산업과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원유를 정유해 수출하기도 하고, 조선업 세계 1위를 고수하며 편리한 항만 및 사회간접시설이 건설되어 지하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가 수출 세계 8위에 랭크되어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대그룹의 故 정주영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를 한 번도 건설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16km에 이르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일을 진두지휘하여 대 역사를 이룬 기업인입니다. 이 분은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지독히도 가난하던 시절에 태어나, 최종학력은 소학교(초등학교)졸업인 분이십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가출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빈손으로 시작해 오늘 날의 현대그룹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이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라.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길이 막혔다고 절망하고, 길이 없다고 포기합니다. 정말 자신의 인생의 길을 찾길 원하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다면 찾고 또 찾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찾아도 없다고, 길이 막혀있다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연약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찾아도 없을 때 길을 닦아 나가려고 하는 정신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성경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는 말씀이 있습니다. 2019년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도 어떤 위기가 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위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거두는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