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5:1~19>
지난주에 베트남에서 있었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핵 담판 합의가 양국의 입장차가 커서 결렬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베트남 식 경제발전 모델을 북한에 제시했고, 북한 역시 핵을 점차적으로 포기하더라도 베트남과 같은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려 했던 회담이었습니다. 회담결렬 이유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담결렬 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했는데, 저도 뉴스를 통해 보니 트럼프가 “북한에는 굉장히 크나큰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앞으로 크나큰 경제 대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베트남이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면서 전 세계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5~10년 사이 베트남 역시 인건비 문제로 진출해 있는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 중 하나이고, 핵무기를 개발할 정도로 사람들의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트남 식 개혁개방 정책이 실행될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기업들이 앞 다퉈 북한에 진출하게 되고, 북한의 경제는 급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트남 식 경제 개혁개방이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서 성공할 가능성에 회의를 갖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는 대신 ‘체제보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체제를 계속 유지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베트남 식으로 경제적 자본주의가 밀려들어가면, 북한 주민들을 70년 동안 광신도들과 같이 속여 온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세습체제는 한순간에 거짓사유정권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체제는 몰락할 수밖에 없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은 쉽게 베트남 식 경제발전 모델을 들여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굶주려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느니 생명을 걸고 탈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북한주민들을 불쌍히 생각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북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지도자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으면 다 끝날 거 같지만, 사실은 그 나라가 살고, 그 단체가 살아나고, 그 지도자는 더 영향력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권리포기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는 유다백성들의 총독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해 대적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벽을 재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를 힘들게 한 것이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외부적 방해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베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그 땅에서 약 10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해졌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에게 땅을 저당 잡혔고, 이자조차도 갚지 못해 땅을 뺏기기도 하고, 자녀가 종으로 팔려가기까지 했습니다. 백성들은 느헤미야 앞에 찾아와 그들의 고충을 하소연했던 겁니다(1~5절).
외부적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해 갔었던 느헤미야는 내부적 문제 역시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적 리더. 8절 말씀을 보시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레위기 25장 47절 이하에 보면 이방인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로 팔릴 경우 형제와 친족이 그를 속량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느헤미야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동족을 돈을 주고 속량해 왔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살아간 겁니다.
둘째, 본은 보이는 리더. 10절을 보시면,
“나와 내 형제와 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느헤미아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가난한 유다인들을 위해 돈과 양식을 빌려줬지만 이자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동족들이 어려운데 이자놀이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본을 보인 겁니다.
셋째, 사익을 따르지 않는 리더(14절).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있었던 12년간 총독으로서의 월급을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전 총독들은 백성들에게 과한 세금을 거둬가며 사익을 따랐지만, 그는 사익을 따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넷째, 희생과 헌신의 리더. 16~18절을 보면, 그는 성벽공사에도 먼저 희생하고 헌신했고, 총독으로서 부려야 하는 사람들을 먹이는 일에도 개인 사비를 털어 해왔던 겁니다.
다섯째, 기도하는 리더. 19절 말씀을 보시면,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느헤미야는 평신도 지도자였지만, 그는 늘 기도하는 리더 였습니다. 순간순간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는 ‘권리포기 리더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리더였고, 그런 리더를 통해 그 민족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종의 형상을 입으신 예수님과 같이 기꺼이 우리의 권리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은 그 주변을 살리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고, 직장과 사회가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 살아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