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5~73(5~7, 70~73)>
얼마 전 『3‧1절, 100주년』이었습니다.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일제 하의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피흘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3‧1절 때마다 가장 많이 부각되고 떠오르는 인물 중 하나가 ‘류관순 열사(1902~1920)’일 것입니다.
류관순은 1916년 미국인 여자 선교사인 ‘엘리스 샤프(Alice Sharp)’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류관순이 이화학당 고등부 1년생이었을 때 ‘3‧1만세시위’에 참여했고, 그 후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3월8일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가 교회와 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서울에서의 독립 시위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천안에서도 만세시위를 권유했습니다.
그리고는 4월1일(음력3월1일) 교회 등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규합해 수천 명의 군중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맹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게 되고, 류관순은 그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시위 현장에서 류관순의 부모(류중권, 이소제)님은 총에 맞아 살해당하게 되고, 류관순도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도 만세시위를 계속 벌이다 그때마다 끌려가 심하게 구타당하다 결국 1920년9월28일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게 됩니다.
만세운동과 옥고를 치를 때의 류관순의 나이는 고등학교 1학년인 열일곱,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그런데 류관순 열사 외에도 수많은 어린 소녀들 역시 독립만세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르고, 일제의 총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류관순을 비롯한 수많은 이름 모를 어린 소녀들과 독립을 위한 투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이 나라의 독립을 가져온 것입니다. 어린 소녀일지라도 이 나라의 독립의 밀알이 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그 사명감을 류관순을 비롯한 어린 소녀들의 마음에 심어주었고, 그들은 기꺼이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24절에 보시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십자가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 사명에 응답함으로,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과 헌신으로 인해 죄로 인해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던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부르심이 있었을 때, 순종해 보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습니다. 어제 심방을 했더니 우리 권사님이 출애굽기를 읽다가 갑자기 성전에 부르시는 것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일어나 성전으로 가서 기도를 하시는데, 2시간 내내 통곡하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5절, 6절을 보시면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총독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성문을 달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는데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귀환한 인원을 계수하여 등록하게 하셨습니다. 그에 앞서 느헤미야는 94년 전 바벨론 느브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있던 자들이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계보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7절부터 당시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총독이 되어 백성들을 이끌고 귀환한 스룹바벨을 비롯한 각 가문의 이름과 귀환자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70절을 보시면,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70절에서 포로에서 귀환한 족장들과 총독(스룹바벨)은 당시 성전재건의 역사를 위해 솔선수범하여 엄청난 물질을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올려드렸습니다. 71~73절에서도 여러 족장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 그리고 제사장들, 문지기들, 노래하는 자들 등이 성전재건의 역사를 위해 많은 헌물을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70년간 페르시아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과연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그들은 적어도 2~3대가 그 땅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었을 텐데,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땅에 가서 개척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유대 땅으로 돌아간 사람은 약 5만 명밖에 안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고, 그 땅에 들어가 성전재건을 위해, 유대공동체를 위해 자신들의 물질을 기꺼이 내어 놓는 헌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응답과 헌신이 있었기에 유대공동체가 그 땅에 다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돈 많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하며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 보다 능력 있고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부족하고 가진 게 없어도 주님이 저를 부르실 때, 교회가 없던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자 그 부르심에 응답했고, 기꺼이 제가 가진 적은 것들을 내어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이렇게 멋지게 세워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저는 종종 우리 성도들이 헌금하시고, 십일조하시고, 헌신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대단하다’ 생각이 듭니다. 저야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몸이니깐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성도들의 귀한 헌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구나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헌신하시기 때문에 우리교회 공동체가 이 땅에 이렇게 세워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하고, 헌신해 보십시오. 거기에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