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마스터키(Master key)”

<열왕기상 8:27~53> 

– 열왕기상(14) –

 

 

제가 이곳에 교회를 개척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여기서 살다보니 이 땅이 과거 우리나라처럼 좀도둑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사고 터지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스스로 조심하며 사는 게 좋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세부에 와서 갖게 된 습관 중에 하나가 항상 문단속을 하는 겁니다.

교회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라고 좀도둑이 피해가지는 않습니다. 제가 지금도 목양실에서 일을 보다 잠시 외출하거나, 성경공부인도를 위해 다른 방에 갈 때에도 문손잡이 안쪽 잠금장치를 꾹 누르고 나갔다 옵니다. 지금이야 그래도 낮에는 교회 직원이 있으니깐 교회 내에서 잠시 이 곳 저 곳을 다닐 때는 그냥 다녀오기도 하지만, 성전 확장 이전에 항상 저 혼자서 교회에 있을 때는 잠시 화장실 다녀올 때조차 사무실 문을 잠그고 다녀왔습니다.

그러다 ‘아차!’하고 제가 실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갈 때에는 항상 주머니에 사무실 열쇠를 갖고 나갔다 왔었는데, 그 날 잠시 화장실 간다고 나오다가 깜빡 잊고 저도 모르게 문손잡이 잠금장치를 꾹 누르고 문을 닫아버렸는데, 열쇠를 안 갖고 나온 겁니다. 게다가 보조 열쇠까지 모두 사무실 안에 있었던 겁니다. 한국처럼 열쇠수리공에게 연락해서 문을 열 방법도 없고, 빨리 일은 봐야 하고… 방법이 없는 겁니다. 결국 공구함에서 망치하고 드라이버를 꺼내가지고 손잡이 부수고, 문을 뜯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도 망가지고, 손잡이도 새로 사다가 달아야 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떤 때는 이렇게 당황스런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열쇠는 안에 있고,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방법이 없고, 답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그 때 그 때의 상황은 다 각기 달라서 그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마스터키(Master key)’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큰 호텔이나, 건물에는 관리차원에서 마스터키라는 게 있습니다. 이 키는 그 건물의 모든 문을 다 열수 있기 때문에 마스터키라고 부르는 겁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마스터키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내용을 묵상하다보면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런 인생의 마스터키를 알려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7년간 건축한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봉헌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3천 년에 건축한 솔로몬 성전의 웅장함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보면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었는데,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었다(왕상10:5)”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던 스바 여왕이 그 영광스러움에 탄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 나옵니다(왕상10:10).

후에 스바 여왕과 솔로몬 사이에 태어난 ‘메넬리크 1세’가 에티오피아를 건국했다고 해서,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의 시조는 메넬리크 1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에는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가 오랫동안 그 나라를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7년간 건축한 솔로몬 성전의 위용과 화려함과 웅장함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성전 입구에 세워진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는 전체가 놋으로 되어 있었고, 높이만 11.5m에 이르렀습니다. 또 지름은 2m에 달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들어간 놋의 양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시에는 그것 자체로 성전의 위용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내부의 성소와 지성소의 모든 기구와 장식과 벽면들이 대부분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죽기 전에 성전건축을 위해 재료를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금 10만 달란트와 은 1백만 달란트 그리고 놋과 철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준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대하22:14~).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오니깐 이걸 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을 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은 약 100톤 정도입니다. 그리고 미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액은 8천1백 톤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까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해서 미리 준비한 금이 몇 달란트라 했죠? 10만 달란트, 은은 1백만 달란트!

그런데 ‘금, 10만 달란트 = 3,750톤’인 겁니다. 오늘 날 세계 최강국 미국이 8천 톤 정도 갖고 있는데, 당대 중동지역의 최강국이었던 이스라엘이 성전건축만을 위해서 준비한 금의 무게가 거의 4천 톤에 가까웠다는 겁니다.

금 4천 톤은 우리 돈으로 ‘56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돈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 이건희 회장이 24조원정도 갖고 있는데, 이건희 회장 두 명의 재산을 다 쓸어 담아 성전 건축을 해도 못 짓는다는 얘기입니다. 금을 사용한 것만 가지고도 이 정도이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이었겠습니까?

 

그런 엄청난 건축물,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웅장하고, 가장 값비싼 성전을 하나님 앞에 봉헌한 겁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27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이 땅의 아무리 크고 화려하고 값비싼 대단한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님이 그 좁은 공간에 거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신관은 어떤 신전 안에, 어떤 우상 안에, 어떤 지역이나 산에 머문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인간이 만든 어떤 공간, 어떤 건축물에 여호와 하나님이 제한되어 있는 분이 아니란 믿음과 지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24절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은밀한 곳에 숨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히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숨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밀한 곳에서 저지른 모든 죄들까지도 이미 주님은 그 자리에서 다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두려워해야 할 말씀입니까?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편재(遍在)’하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편재하심이 어떤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사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어떤 사람이 두려워하겠습니까?

죄인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건 엄청 두려운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편재하심이 너무나도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사실이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들, 성도들’에게는 이게 두려워해야 할 말씀이 아니라, 소망과 위로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 성도들이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 때,

– 성도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을 때,

– 성도들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 앞에서,

– 성도들이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로 할 때,

– 성도들이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을 때,

–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할 때,

– 성도들이 자기 혼자라고 느낄 때…

 

하지만, 주께서 그 고난의 현장 속에도 계시고, 그 환난 속에도 함께 계시고, 그 통곡의 기도 현장에도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님께서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어디서나 듣고, 응답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미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고, 값비싼 성전을 건축했지만 주님을 거기에 가둘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29절 말씀을 보시면,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하나님은 이 땅의 어떤 공간 안에 가둬둘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그 성전에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에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아무리 화려한 것으로 치장된 곳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면 그곳은 너무나도 초라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이 땅의 아무리 값비싼 것이라 할지라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거기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비는 기도를 들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야로 그곳을 보고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부터 우리교회에 문이 항상 열려 있어서 성도들이 24시간 어느 때나 와서 울며 기도할 수 있는 교회를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와서 여기 상황을 보니 교회 문을 24시간 활짝 열어 놓게 되면, 내일이면 여기 물건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안상의 이유로, 대부분이 여자 성도인 우리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서 문을 잠궈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 성전을 준비하고 낮 시간대에는 교회 북카페를 담당하는 필리핀 직원이 기도하기 위해 온 성도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게 되었고, 밤늦은 시간에 주님 앞에 나온 성도들을 위해서는 교회 현관문에 디지털 도어락을 한국에서부터 가져다가 설치해서 비밀번호를 알려드렸더니 밤에 와서 기도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집에서 기도하셔도 주님께서 받으시고, 은혜 내려주실 겁니다. 하지만 성전과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이고, 약속이 있는 곳입니다. 이 교회에도 주님을 가둘 수 없고, 이 초라한 곳에 주님이 거하실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을 위해 세워진 이 성전에, 이 교회에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때문에 여러분이 새벽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언제든 오셔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주님은 만나주시고,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을 보시면,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누구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시면 다니엘은 당시 페르시아에서 기도를 금지하는 왕명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창문을 열고 그 멀리 떨어진 페르시아 제국에서 매일 세 번씩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여기서 누구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나아와 기도하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첫 번째, (31~32절)에서 이웃 간의 분쟁이 있을 때 그것을 공의롭게 판결하시며,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둘째, (33~3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전쟁에서 패배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그들을 회복해 다라는 기도를 합니다.

셋째, (35~36절)에서 역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을 때, 가뭄이 들고 그들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데, 그 때 그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해 달라고 합니다.

넷째, (37~40절)에서 그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들거나 여러 재앙이 있을 때, 그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다섯째, (41~43절)에서 이방인들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전으로 와서 기도할 때 그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44~45절)에서 대적들과 전쟁을 치를 때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전쟁에서도 승리케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일곱 번째, (46~51절)에서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적국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 그들이 회개하고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그들을 회복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성전은 오늘날의 교회와는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당시에는 성전이 곧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그 성전이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축되었다 하더라도 그곳에 하나님께서 머무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곳, 하나님의 이름이 기념되는 그곳을 향해 나오는 이들마다 그들에게는 인생의 마스터키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이들, 사람과의 관계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인생의 장애물 앞에 있는 이들,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건강의 문제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성전에서 부르짖는 그 기도를 주님께서는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했던 말씀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고, 그 장소 자체가 하나님처럼 여겨졌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21절에 보시면,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오늘날 예루살렘 성전은 없습니다. 구약의 그 성전은 장차 나타날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우리는 그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전 된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까지 하십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마스터키를 쥐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십시오.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뿐인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날 살리실 것입니다. 그 성전 된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이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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