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9~22>
사랑이란 것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연인과의 사랑, 부모와 자녀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 등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에서는 이 사랑에 대해서 네 가지 단어로 말하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인 사랑을 말할 때는 ‘에로스(Eros)’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을 말할 때는 ‘스테르고(Stergo)’라는 말로 표현하고,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을 말할 때는 ‘필레오(Phileo)’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는 ‘아가페(Agap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녀 간의 사랑이라든가,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이라든가, 친구와의 우정과 사랑은 모두 조건적인 사랑인 ‘~ 때문에 사랑(because of love)’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에게 느끼는 매력 때문에 사랑하고, 부모와 자녀의 혈연 때문에 사랑하고, 나와 잘 맞는 친구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은 ‘~ 때문에 사랑’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in spite of love)’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받을 자격이 있거나, 우리가 사랑 받을 만한 어떤 능력과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벌을 받으시고 대신 희생하실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을 떠난 죄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주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함으로 바벨론에 의해 BC586년 멸망했고, 모두 포로로 잡혀갔다가 그 중에 약 5만 명은 70년 만에 고국의 땅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 에스라를 통해 하나님 앞에 특별히 사랑 받았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보시면,
“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교만하게 행함을 아셨음이라 주께서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가나안 땅에 있었던 큰 기근으로 야곱(이스라엘)과 함께 70명의 후손들은 요셉이 있었던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430년간 번성하여 그곳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인들은 그들을 노예로 삼아 그들은 큰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교만한 애굽인들을 벌하시고, 출애굽 시키셨고,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하나의 독립된 민족의 역사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출애굽을 통해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홍해를 갈라 육지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11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12절).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규범과 율법을 주셨고(13,14절), 하늘의 양식인 만나로 40년간 그들을 먹이시고, 반석을 터뜨려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15절).
그런데 16절, 17절을 보시면,
“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패역하여 하나님을 거절하는 악을 저지릅니다.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의 교만함을 벌하셨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경우 교만하고 패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더디 노하시고, 풍성한 인자(사랑)하심으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을 ‘그래도’라는 찬양에서는
『네가 나를 떠나가도 그래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으며,
네가 나를 버려도 그래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며
네가 지은 죄 많으나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하리라.
네가 천하고 미련하나 그래도 나는 너를 받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셨던 것을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듣게 됩니다. 과거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영적으로 실패했고, 그들의 나라는 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포로에서 귀환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고 계심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결단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가 많고, 자주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들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제 그래도 나를 사랑하시는 그 분의 사랑 앞에서 감사하며, 새롭게 살아가시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