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복을 주려고…”

<창세기 18:16~21>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33) –

 

 

 

성경의 인물들을 연구해 보면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는데, 모세는 애굽의 노예인 히브리인으로 태어났지만 운 좋게 바로 왕의 공주의 양자로 입양되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40세 때까지 당대 최강대국인 애굽의 왕궁에서 왕자로서 받아야 할 모든 교육을 받고, 영화도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용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모세의 삶은 꼬여만 갔습니다. 자기 동족을 돕겠다고 한 것이 도리어 애굽의 바로 왕의 미움을 사게 했고,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그 이후 40년 동안 양을 치며 비천한 목동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으면서 유대인으로서는 당대 최고의 학문을 한 율법학자였습니다. 이미 젊을 때 그가 속한 바리새파에서 꽤 인정받는 젊은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그는 그가 인정받던 유대사회에서는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 역시 그가 원래 살던 갈대아 우르에서 그의 친족과 동족들과 함께 거주했다면, 가나안 땅에 와서 힘들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 땅이 없으니 양을 먹일 목초지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집시 같은 삶이 그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더 잘된 게 아니라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했고, 남들이 꺼려하는 그런 길을 가야 했습니다.

리더십의 대가이며, 우리들에게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 1932~2012)’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큰 위험은 위험 없는 삶이다”

 

모세도, 바울도,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어쩌면 안전한 환경 속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름 받았을 때 그들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모해 보일 수 있는 또는 위험해 보일 수 있는 삶을 선택해서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종족으로 살다가 사멸될 위기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킨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신약성경 13권을 쓰고, 아시아와 유럽을 복음화 하는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하거나, 우리에게 고난을 주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평범함을 넘어선 비범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안정적인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왜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 여길 벗어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아느냐? 너 왜 아무 보장도 되어있지 않은 일을 하느냐? 너 왜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하느냐?…’라는 조롱과 핀잔을 들었을 것입니다. 정말 그들의 말처럼 아브라함이 그 고향에 남아 있었다면 그는 거기서 편안하게 평범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자녀를 향해 큰 꿈을 갖고 있듯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을 한 사람을 부르실 때, 우리가 꿈꾸는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일을 계획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부 땅에 온 것이 그냥 우연히, 나의 결정과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는 사람들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과 섭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때문에 여기에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그 부모는 그의 아들이 ‘부족장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기대를 갖고 ‘아브람(큰 아버지)’란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될 축복의 근원으로 삼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19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의 후손들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셨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복을 주시려 그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축복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들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어느 한 순간에 모든 것은 안개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이들이 진정한 축복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20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소돔과 고모라는 그 지역에서 가장 풍요로운 왕국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악 속에서 풍요로웠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풍요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 당장 아들 하나 없는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지만, 하나님을 떠난 죄악 속의 풍요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가까워가고 있음을 대비하며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29절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분명한 부르심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죄악 속의 풍요를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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