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3:36~49>
2014년 12월 우리나라 메이저 항공사의 ‘땅콩 회항 갑질 논란’이 있었습니다. 수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이야기일 것입니다. 당시에 이 항공사 그룹 회장의 큰 딸이 부사장으로 있었는데 그녀는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의 인격을 모독하고, 결국 승객을 가득 태우고 뉴욕 JFK공항에서 이륙하려던 비행기를 회항 시키고, 사무장에게 책임을 묻고, 그를 비행기에서 내쫓았습니다. 정말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말도 안 되는 갑질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그 부사장은 법정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집행유예가 끝나기도 전인 2018년 그녀의 여동생 사건이 터진 겁니다. 그 항공사의 전무였는데 광고대행사 임직원에게 폭언을 하고 물 컵을 던지는 갑질 사태가 또 터졌던 것입니다. 결국 그로 인해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4년 전 (땅콩 회항 사건의 피의자) 조OO씨가 제대로 처벌됐다면 오늘의 (그 동생 물컵 사건) 조OO의 갑질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KBS 2018. 4. 17). 그 언니가 갑질 사태로 그 고생을 하고, 큰 처벌을 받고 그러는 모습을 마음에 잘 새겼다면 그 동생이 그 이후로도 행동 하나하나를 더 조심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니의 뒤를 이어 그 동생도 비슷한 사건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23장에는 ‘오홀라’와 ‘오홀리바’라는 자매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의 비유였습니다. 이들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딸들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행음을 저질러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홀라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의미하고, 동생인 오홀리바는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말한다는 것입니다(1~4절).
그런데 언니인 오홀라(사마리아 : 북 이스라엘)는 앗수르와 애굽의 준수한 청년들을 흠모해서 그들과 행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홀라는 자기가 연애하고 행음했던 앗수르의 심판의 칼에 의해 망하게 된 것입니다(5~10절).
그 언니의 모습을 보고 오홀리바(예루살렘 : 남 유다)가 정신을 차렸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오홀리바는 언니보다 음욕을 더하여 그 간음의 죄가 더 심각했고, 언니보다 더 부패해졌다는 것입니다. 오홀리바 역시 앗수르와 애굽 뿐만 아니라 바벨론까지 흠모하고 행음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자기가 연애했던 바벨론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11~21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고(갈6:7)’
또한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하듯(마26:52)’
이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자기가 흠모하고, 자기가 행음했던 앗수르에 의해,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돈을 따르는 자는 돈 때문에 망하게 되고, 음란과 쾌락을 따르는 자는 그 쾌락의 끝에 멸망하게 되고, 권력과 칼을 따르는 자 역시 그 칼에 의해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그것을 흠모하고, 그것을 취하고, 그것으로 인해 달콤함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젠가 내게 심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예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37절과 38절의 말씀을 보시면,
“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 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 이 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구체적인 죄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들은 가나안 땅의 이방 우상을 따랐고, 그 우상숭배의 제의 중에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을 죽여 불에 태워 제물로 올려드리는 일이 그들의 땅에서 저질러졌습니다. 그 외에도 그들은 주님의 거룩한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안식일을 범하고, 주님의 말씀과 그 분의 얼굴을 멸시했던 것입니다.
40절부터 42절의 내용을 보면,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야한 옷을 입고 앗수르와 바벨론의 잡류들을 초청하여 행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43절에서 ‘행음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통한 사람은 율법으로 재판을 할 경우 그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그들의 죄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48절과 49절을 보시면,
“이같이 내가 이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한즉 모든 여인이 정신이 깨어 너희 음행을 본받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너희 음란으로 너희에게 보응한즉 너희가 모든 우상을 위하던 죄를 담당할지라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시니라”
음탕한 자매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그 죄로 인해 비참한 비극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역사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음란을 그치게 하고, 음행을 멀리하게 하는 경고가 되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그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흠모하던 그 죄는 부메랑이 되어 벌과 심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말과 행동과 태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상 받을 일이 아니라면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덕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예를 통해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