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4:15~27>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정책과 의중을 이해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서, 국회의원과 장관 급 다음의 차관 급 정도 되는데 공무원으로서는 대단히 높은 직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아주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무나 그 자리에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무원으로서 그런 직책에 임명된 사람은 얼마나 명예롭겠습니까? 대통령 최측근에서 늘 대통령과 독대하여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마음과 입을 대신하는 사람이니 어쩌면 공무원으로서 가장 큰 명예를 얻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2013년 2월 당시 대통령이 취임하고, 5월에는 대통령으로서 첫 번째 미국 방문길에 올랐을 때, 윤OO 청와대 대변인 역시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윤 대변인은 주미한국대사관에 인턴직원으로 있었던 한국계 미국인을 성추행하게 됩니다. 결국 대한민국 청와대는 ‘고위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했다’고 즉시 청와대대변인에서 경질시켜버립니다.
2017~2018년에는 미투 운동(#MeToo)으로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던 유력한 정치인, 문화예술계 인사들, 교육 및 법조계의 유명인들이 낙마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기도 했고, 그 중에는 차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가기까지 평생을 바쳐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듯 그들은 평생을 바쳐 쌓아온 것을 순간의 음욕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만약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만지지 말아야 할 것,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댔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지금 한없는 후회 속에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 음욕과 그 때의 명예를 바꾸겠는가?’라고 질문한다면 누구도 그 명예와 바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BC 588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습니다. 우리가 성경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3년도 안되어 예루살렘성은 무너져 내리고, 모든 유대인들은 바벨론 군대의 칼에 죽거나, 모두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전부터 그 사실을 이미 보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시면,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특별한 표징으로 삼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을 것인데, 그렇다고 에스겔이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라 시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죽게 된다는 것인데, 그러할지라도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하지 말고, 초상집 음식을 먹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라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시면,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
에스겔은 백성들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에스겔의 아내가 갑자기 죽고, 에스겔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슬퍼 울 수도 없었고, 장례를 제대로 치룰 수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겔의 모습을 보며 그 일이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21절을 보시면,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성이었고, 그 성 안에 있었던 성전은 주님의 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도 그 하나님의 성전은 그들의 영광이고, 기쁨이고, 가장 귀중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 성전을 우상으로, 음란으로 더럽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그 성전이 파괴될 것이고, 그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바벨론 군대에 의해 모든 백성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칼에 엎드러질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가장 기뻐하는 것을 쳐서 빼앗겼는데 그는 울거나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냥 조용히 탄식만 해야 했고, 사랑하는 아내의 장례도 제대로 치룰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표징이었습니다(23,24절). 그들의 죄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 통에 그들이 가장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그들은 울거나 슬퍼하거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모두 죽거나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죄’라는 것의 속성이 있습니다. 그 죄는 우리의 가장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을 빼앗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내가 가장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을 오래토록 지키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과 그 죄의 즐거움을 맞바꾸자고 한다면 과연 그것과 맞바꾸면서까지 그 죄를 즐길 사람이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일락과 같은 죄라는 것과 축복(은혜, 선물, 기쁨, 평안, 가족, 가정, 명예, 영광, 인생…)을 맞바꾸지 마십시오. 그럴 가치조차 없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는 우리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을 뺏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