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해 일하시는 주”

<사도행전 18:1~17> 

– Acts(51) –

 

 

 

요즘 나오는 무선진공청소기, 헤어드라이어 그리고 선풍기의 디자인은 이런 모양들이 대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제품들은 영국의 애플로 불리는 ‘다이슨(dyson)’이란 회사에서 만든 제품들이고, 1993년 이 회사를 창업한 제임스 다이슨(Sir, James Dyson, 1947~)이란 분이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분이라 그런지 제품의 성능과 실용성뿐만 아니라 디자인까지 멋진 거 같습니다.

이 회사가 진공청소기 하나 잘 만들어서 성공한 기업인데, 무선진공청소기 하나가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 그리고 무소음 헤어 드라이기, 날개 없는 선풍기 같은 경우도 50~90만 원선의 고가에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품이 너무나도 혁신적인 것들이라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잘 팔려나가고 있고, 다이슨은 가전계의 애플로 불리면서 점점 입지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아시아권 전역에서도 매출이 크게 늘고 있고, 회사는 최근 매년마다 40~50%씩 고속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5,126』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거 같습니까? 이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제임스 다이슨의 아내는 직장에 가고, 그는 청소기를 잡고 바닥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청소기 작동이 시원치 않아서 청소기를 뜯어보게 됩니다. 그랬더니 미세한 먼지가 먼지봉투를 꽉 막고 있어서 청소가 제대로 안됐던 겁니다.

그래서 다이슨은 생계를 아내에게 맡기고, 집 뒤에 있는 낡은 창고에서 먼지봉투가 필요 없는 사이클론 방식의 진공청소기 개발에 매진하게 됩니다. 5년간 5,126개의 시제품을 제작한 끝에 5,127번째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날 다이슨 청소기는 고가의 청소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청소기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영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며 2007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로부터 기사작위까지 받아서 ‘제임스 다이슨 경’이라 불리는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은 99%의 실패로 이루어진다. 실패는 발견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과정이다. 계속 실패하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이다.”

말이 그렇지 청소기 하나 만들려고 5천 번이 넘는 실패를 해 보십시오. ‘에이 그만하자. 포기하자. 이건 불가능한가보다. 실패다…’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5,126번의 실패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하지만 저는 각 실패로부터 하나씩 배웠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그는 ‘학생들이 몇 번의 실패를 했느냐’로 평가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고, 성공의 99%는 실패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잠언 24:16절 말씀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성경 속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영웅들을 연구해 보면 실패와 시련이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수없이 넘어지고 자빠졌습니다. 그들은 실수했고, 실패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자신의 죄성 때문에, 자신의 연약한 의지 때문에, 자신의 부족한 실력 때문에…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그 실패 속에서 주님의 붙들어주심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나는 실패할 지라도 주님은 그 실패 속에서 일하시고, 나의 그 실패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1. 기회는 붙잡지 않으면 뺏긴다

바울은 아덴(아테네)에서 선교적으로 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름 잘났다고 하는 아테네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몇몇 사람들만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거기서 떠나 남서쪽으로 내려와 그리스의 고린도라는 도시로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로마로부터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서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틈틈이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과 헬라인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바울의 일을 돕는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도착하면서부터 바울은 말씀 전하는 일에만 더욱 집중하고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하게 됩니다(1~5절).

 

6절을 보시면,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은 가는 곳마다 먼저는 유대인의 회당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에게 먼저 복음의 기회를 줬던 것입니다. 또 그들은 구약 성경을 알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메시야가 나사렛 예수시라’는 복음을 전해줬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시의 회당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바울을 대적하고, 그의 복음을 비방했습니다.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 때 바울이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내가) 이방인에게로 가리라’고 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에스겔 33장에 나와 있는 파수꾼의 비유를 인용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적군이 쳐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팔을 크게 불어 성 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경고를 했는데 정신을 차리지 않고 대비하지 않아 죽게 된다면 그 책임은 파수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경고를 듣고도 대비하지 않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들은 끝까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파수꾼이라고 했을 때,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직임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끝까지 거부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제 자신은 ‘이방인에게로 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기회를 줬지만, 그들이 그 기회를 붙잡지 않았기 때문에 그 구원의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 뺏기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그리고 성장기 청소년 시기까지 내가 뭘 잘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보기에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러다 열아홉 살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너무 좋고, 예수님이 너무 좋은 겁니다. 교회에서는 뭐든 내가 하겠다고만 하면 다 시켜주는 겁니다. 찬양팀에도 들어가고, 중창팀에도 지원하고, 성가대에도 들어가고, 세례도 안 받았는데 교사도 하고, 청년부에서 목장리더도 하고, 회장도 하고, 성가대지휘자도 하고 그리고 교회에서 시키는 일은 그냥 뭐든지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믿음도 부족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하니깐 쉽게 낙심도 되고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거기서 얻게 된 축복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떤 부분에 탁월한 재능과 능력은 없지만 뭐든지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그 부분에 점점 더 큰 능력을 주시는 겁니다. 달란트 비유와 똑같은 겁니다. 땅에 묻어두면 썩을 수밖에 없지만 그걸 활용하고 봉사하는데 쓰면 반드시 더 많이 남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부족한 거 투성이지만 여러분이 보시기에 저에게 조금이라도 괜찮아 보이는 모습은 원래 제 모습, 제 능력이 아닙니다. 처음 예수 믿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맡겨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더니 그 부분에 재능을 더하시고, 실력을 더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자녀들, 성도들이 교회에서부터 그런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안 해보고 내가 뭘 잘 한다 잘못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뭐든지 해보고, 거기서 실패도 해보고, 실수도 해보면서 우리는 성장해 나가는 겁니다.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들을 놓치면 안 되는 겁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그 축복은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겁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이 힘들고 지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을 때도 올 겁니다. 하지만 ‘직분이 은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 맡겨 주시는 것들은 내게 어떤 능력을 키워주시거나, 나를 붙잡아주시거나, 나를 축복하는 어떤 기회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백화점 세일 할 때는 그 기간 맞춰서 뭐라도 하나 싼 값에 건져오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축복의 기회들은 왜 놓칩니까? 기억하세요. 기회는 붙잡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뺏깁니다.

 

 

자기 개발서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쓴 데일 카네기(Dale B. Carnegie, 1888~1955)는 “기회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이것을 붙잡는 사람은 십중팔구는 성공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들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2. 축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시면,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복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강한 반발과 적대감을 느낀 바울 사도는 회당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내가 돈 받고 이 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그 사람들 예수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가라고 전도하는 건데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거나, 모욕을 주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적대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전도하다가 얼마나 마음이 낙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전도지 들고 사람이 좀 안 지나다니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동안 전도할 용기가 나지 않아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 사도가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 답답하고 실망스런 마음으로 회당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곤 바울은 그 회당 옆에 사는 ‘디도 유스도’란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초청해서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바울이 전도하기 위해 들어간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전도되어 예수를 믿게 되고, 학자들은 디도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지역의 최초의 집회장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절을 보시면,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바울은 방금 전에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내쫓김을 당하듯 회당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보니깐 ‘회당장 그리스보’라는 사람이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었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이면 그 지역 유대인들의 대표격인 사람입니다. 그 회당을 대표하고, 그 회당의 집회를 주선하고, 유대인들의 중요한 사항들에 대해 의결권을 갖고 있었던 그 지역 유대공동체의 존경받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예수를 믿고 자기 뿐 아니라 온 집안 식구와 더불어 믿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왜냐하면 회당장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는 직업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지역의 유대 공동체는 매우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회당장이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은 더 이상 회당장의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그 동안 쌓아왔던 그 지역 사회에서의 모든 명예도 잃을 수도 있는 겁니다. 물질적인 손해도 감수해야 했고, 앞으로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결단인 것입니다.

 

찬송가 94장의 가사와 같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얼마 전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하던 바울에게 얼마나 적대적으로 나왔는지 회당장 그리스보는 누구보다 그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복음을 듣는 중에 그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예수님을 영접하자,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을 거 같은 사람, 정말 교회 안 나올 거 같은 사람, 전도하기 정말 힘들 거 같았던 그런 사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은 변화되기 힘들 거 같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예수를 믿고 변화되고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도 불과 1년여 전만해도 ‘나는 한인들하고는 상대 안 할 거다. 나는 한인교회는 안 나간다. 나는 필리핀으로 귀화할 것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라고 했던 분이 지금 우리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섬기는 분 중에 한 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습니다.

바울 사도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회당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적개심을 갖고 바울 사도에게 소리를 지르며 회당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쫓겨나 밖으로 나왔는데 회당 바로 옆집에 ‘디도 유스도’란 사람이 예수를 믿을 준비를 다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집이 고린도 지역의 최초의 교회 자리가 된 것입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를 믿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일을 듣는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함께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축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플랜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글렀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핀란드의 로비오(Rovio)라고 하는 IT회사는 2003년 3명의 젊은이가 만든 벤처기업이었습니다. 이들은 51개의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창업한 지 6년 만에 파산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그 때 ‘앵그리 버드’라는 52번째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나 전세계적인 게임이 되었던 것입니다.

공동창업자인 ‘피터 베스터바카(Peter Vesterbacka)’가 이렇게 말합니다.

“실패라는 단어의 진짜 뜻은 ‘나는 매우 많이 실패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젠 다 끝났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더 이상 내게 소망이 없다’라고 할 만한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가 끝난 게 아니라, 뭔가 또 다른 역사가 그 실패라고 하는 그 상황 안에서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명기 1:2절을 보시면,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까지 들어가는 시간은 불과 11일 밖에 안 걸립니다. 그런데 이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에 걸쳐서 들어간 겁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입니까? 믿음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에게는 열 하룻길 밖에 안 되는 거리가 영적 소경들에게는 40년을 방황하다가 갈 먼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4절을 보시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예수님께서 천국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밭은 그냥 배추나 심고 무나 심어서 뽑아 먹는 그냥 그저 그런 땅으로 밖에 안 보일 겁니다. 하지만 어떤 믿음의 사람의 눈에는 그 밭에 보화가 보이는 겁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고 싶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어서 그 밭을 사고 싶은 보화가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축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매일 불평하고, 똥통학교라고 매일 불평하며 억지로 다니고 있습니다. 과연 그 학생이 그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 학생이 과연 그 학교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세부에 와서 늘 불평만 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세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세부에서 과연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부가 그 사람에게 과연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축복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떠서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마다 40년간 방황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눈을 뜬 사람에겐 그 기간이 단축될 것입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3. 실패 속에 더 큰 축복이 있다

우리가 6절을 살펴봤지만,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의 반발과 적대감을 느끼고 그 순간에 옷을 털면서 ‘이제 나는 할 일 다 했다. 나는 책임 없다. 너희가 너희의 죄를 감당해라. 나는 이제 이방인에게 간다.’ 라고 말하며 회당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순간 바울 사도는 ‘아… 이 도시는 소망이 없구나.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굳어있구나. 내 사역은 여기까지인가보다. 나의 고린도 사역은 실패했다…’라고 하며 실패감에 젖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9절 말씀에서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구절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봐서 바울 사도는 두려웠던 거 같습니다. 그런 두려움은 바울 사도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10절도 보시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바울 사도가 큰 장애물 앞에서, 큰 어려움 앞에서 그 순간에는 실패라고 생각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실패와 두려움 속에 오히려 더 큰 축복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 있을 것이고, 누구도 바울을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고린도 지역에 하나님께서 예비한 성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그 지역에서 무려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와 아테네에서 크게 실패한 거 같았지만 오히려 그리스 복음의 전초기지와 같은 고린도교회가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천재 물리학자로서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그 만큼 큰 업적을 남기기까지는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겠습니까? 그가 넘어야 할 인생의 산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유태인으로서 독일에 살고 있었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도 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움의 한 가운데에 기회가 놓여있다”

우리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들 속에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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