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 일어나는 일

마태복음 26:36~41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인 ‘최후의 만찬’을 하신 뒤, 예루살렘 성 동편의 감람산(Olive mountain)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렸던 기도의 장면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해발 740m 정도이고, 올리브 나무가 많았던 감람산은 해발 약 800m가 약간 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잘 내려다 보이기도 했습니다. 내일(금)이면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잘 내려다보이던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될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계셨던 예수님의 마음에는 겟세마네 동산을 오르시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36절을 보시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습관적으로 기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자주 가던 장소였습니다. 아마도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함께 그 산에서 기도하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 중에 언급하셨던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21절)”는 말씀과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5절)”는 말씀들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은 큰 걱정과 불안함이 가득했습니다.

38절을 보시면,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등 제자 셋을 데리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오르셔서 기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 제자들에게 지금 예수님의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지를 말씀하시면서 깨어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9절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인간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과 고통을 동일하게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날이 밝아오면 십자가 처형을 당할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을 피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클 것인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인간이신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의 잔을 마시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예수님 역시 그 고통과 슬픔을 겪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반절에서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라고 하면 ‘응답’이란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소원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기대합니다.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고난에서 건져주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응답과 구원과 역사와 은혜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기도를 내 소원을 성취하는 기복신앙(祈福信仰)적 도구로만 사용한다면, 우리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차이는 크게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기복신앙의 가장 큰 차이는 ‘누가 주인인가?’에 있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의 주체는 ‘나’라고 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신앙을 통해, 기도를 통해 ‘내 뜻’일 이루기 위해 내가 그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목표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主)’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은, 인간이시기도 했던 예수님 당신의 뜻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있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큰 시험과 고통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직접 개입하시고 구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가 오직 그런 역사만 나타나게 하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실 때, 첫째로는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 있었다. 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때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응답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내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과 고통의 시간을 넉넉히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1.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내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과 고통의 시간을 넉넉히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2. 오늘의 묵상
내가 기도하고 있는 것 중에 나의 뜻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