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17~22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뒤 1주일간을 전후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 금 : 베다니에 도착
- 토 : 문둥이 시몬의 집, 기름 부음
- 일 :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
- 월 : 무화과나무 저주 / 성전 정화
- 화 : 비유 / 지도자들과 논쟁
- 수 : (특별한 언급이 없음)
- 목 : 최후의 만찬 / 겟세마네 기도
- 금 : 심문 받으심 / 십자가 처형
- 토 : 안식(무덤에 머물러 계심)
- 일 : 부활
오늘은 <수요일>인데, 예수님께서 수요일에는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특별한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각 복음서의 1/3 정도의 분량을 모두 예수님의 일주일에 있었던 사건들과 가르침 등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수요일 역시 우리가 요일만 모를 뿐이지 주님은 매우 의미 있는 사역과 가르침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목요일 밤의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살펴보시겠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 집에 들어가 유월절 음식을 나누며 만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충격적인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6장 21절을 보시면,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선생인 예수를 배신할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잘 즐기고 있던 때에 제자들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을 제자들은 익히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22절에서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제자들은 몹시 당황하며 ‘주님 저는 아니지요?’라고 예수님께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이 질문을 했을까요? 했습니다!
25절을 보시면,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그런데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말과 가룟 유다의 말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자들은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었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향해 ‘주여’라고 하지 않고, 선생이란 뜻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했던 것이 큰 차이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호칭의 차이가 아니라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믿고 있었느냐?’에 대한 차이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율법 선생’ 정도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신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의 사건 배열의 순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였던 세관원 ‘마태(레위)’는 이 사실을 강조하려 했던 것입니다. 6~13절의 내용은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에 이르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리는데, 가룟 유다는 그것을 보고 아까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14~16절에서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은 30개를 받고 넘기기로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17절부터의 내용이 최후의 만찬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은 십자가를 지기 바로 전날인 목요일 밤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반면, 6~13절의 베다니에서 향유를 붓는 사건은 일주일 전인 금요일에 있었던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시간적 간격이 약 일주일이나 나던 사건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26장에서 이 사건의 배열이 마치 한 날에 일어난 것처럼 되어 있다는 겁니다. 가룟 유다가 향유를 아까워하고, 바로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처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마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가룟 유다는 물질의 종으로서 그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속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랍비’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배신한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와 나의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하면, 우린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이 내 삶의 모든 영역까지 ‘주인’이시며, ‘주님’이심을 인정한다면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로 살지 않고 예수로 사는 참된 믿음의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1. 기억해야 할 한 문장
우리가 예수님을 나와 나의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하면, 우린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이 내 삶의 모든 영역까지 ‘주인’이시며, ‘주님’이심을 인정한다면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오늘의 묵상
내가 예수님을 온전한 주인으로 인정해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