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27~2:4>
전 세계 인구는 현재 77억이 넘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 인구는 로마 카톨릭을 포함하여 25억 명(32~34%) 가량으로 세계최대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 과연 진실한 신자는 얼마나 될까요? 누구든 교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 그는 교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도 기독교인이라는 통계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나 지금이나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종교적인 껍데기를 쓰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 항상 있습니다. 때문에 교회를 다닌다고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 일단 종교가 기독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이라고 할 때, 이것은 그의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심을 말하는 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실한 성도에게 쓰는 표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1장 27절을 보시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여기서 ‘생활하다’는 말의 헬라어는 ‘폴리튜에스테(politeuesth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시민답게 살아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빌립보서 3장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자”라는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지만 예수를 믿게 되고, 그 신앙 공동체로서 교회생활을 시작하고 있다면 그들은 천국의 시민이라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27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천국의 시민답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 된 소식을 듣게 된 교인들은 오히려 더욱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투기와 분쟁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사람은 바울의 명성을 시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했었는데, 바울 사도의 뜻을 따라 순수하고 착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 그들로 인해서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고, 혹은 한 교회 공동체에 있었던 그들을 비판하거나 멀리하거나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일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는 시기와 다툼과 분열의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의 첫 번째로 27절에서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 한 뜻, 협력’이란 표현은 같은 의미입니다. 빌립보 교회 공동체가 분열이 되면 안 되며 함께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28절을 보시면,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대적하는 자들 또는 마귀들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의 핵심은 ‘하나 됨’입니다. 2장 2절 말씀을 보시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이 구절을 네 소절로 나누면 ‘마음을 같이하여 / 같은 사랑을 가지고 / 뜻을 합하며 / 한 마음을 품어’ 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짧은 구절의 네 소절 모두가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 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인 것입니다.
3절과 4절을 보시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겸손해야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교만에 빠져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과 비판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 받을 수 없었던 연약한 자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오직 그 공로로 구원 받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정죄하고, 비난하고, 비판할 자격이 사실은 없습니다.
교회에는 분명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볼 때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기 시작하면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은 깨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인격적으로 성숙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나와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어주고 위하여 중보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조심하십시다. 특히 교회를 분열케 하는 모든 부정적인 말들과 비난과 정죄를 중단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말을 할 때는 좋은 말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하나 됨을 지켜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시민답게 사는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