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능력

제공

요한복음 11:38~44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지난 주간 ‘홀리 위크(Holy week)’라고 하는 여기 필리핀 연휴가 시작되는 목요일에 우리 교회 공동체는 <전교인 야외예 배>를 다녀왔습니다. 청팀, 백팀으로 나눠서 여러 지 즐거운 게임이 있었고, 점심 식사 전에 하이라이트인 계주 경기가 있었는데, 저도 마지막 주자로 출전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달리기 경주를 해 보는 거였는데, 제가 바통 터치를 하고 막 출발하자마자 살짝 경사가 있었던 곳에서 미끌어져 넘어진 겁니다. 보통 그런 경우라면 제가 벌떡 일어날 텐데, 제가 엎어져 일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제 아내와 우리 딸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저를 부축해 일으켜 보니 입술이 터지고 얼굴과 무릎이 피범벅이 되었으니 우리 성도들도 놀랐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일어나면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이 ‘즐거운 행사를 목사가 망쳐서 어떻게 하냐…’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목요일에 사고가 나고, 고난 주간의 성(聖)금요일, 저도 컨디션이 안 좋아 강제적으로 하루 종일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세 가지 감사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첫째, 담임목사가 다쳐서 감사합니다. 만약, 이런 즐거운 행사에 성도 중에 누군가 다쳤다면 제 마음이 너무 아팠 을 거 같은데, 차라리 제가 다쳐서 감사 했습니다.

둘째, 이만큼만 다쳐서 감사합니다. 만약, 더 심하게 다 쳤더라면 이렇게 주일날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겁 니다. 그나마 이 정도 다쳐서 감사했습니다.

셋째, 고난에 동참케 하셔서 감사합니다. 엊그제 아내 가 집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생겼는데 너무 아프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얼굴과 무릎에 좀 더 큰 상처로 아파하고 있는 남편인 제가 생각나더랍니다. 지난 주간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고난 주간 이었는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고통당하신 그 십자가 고통 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 고난을 조금이라도 느끼며 동참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통 터치했던 순간하고, 사고 후만 기억이 나고 제가 어떻게 넘어졌는지 중간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데 , 어쩌면 그 꼬꾸라진 상태로 아예 못 일어날 수도 있었 던 게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말의 관 용어구 중에 “접싯물에 코 박아도 죽는다”라는 말이 있듯 사 람이 재수가 없으면 정말 허무하게 생을 마감 하기도 하는 겁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숨 쉬고, 공부하고, 일하 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저와 어떤 사람들의 경험과 같이 ‘죽을 뻔했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었던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나 는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이 부활의 능력이 성도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도 동일한 능력으 로 나타나시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의 3년 6개월 간의 공생애 기간 주 활동 무대는 예 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호수(바다)’ 주변 지역이었습니다. 열 두 제자들 역시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건국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 이었고, 왕의 도성 이었고,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 이 있는 거룩한 땅 이며, 여호와 신앙의 종교적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볼 때, 갈릴리 사람들 은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촌사람들 이었고, 대부분 글을 쓰거나 읽 을 줄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때문에 메시야는 당연히 예루살렘에서 나셔야 하고, 갈릴리나 나사렛에서 절대 메시야와 같은 존귀한 존재가 태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정 도였습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와 그를 따 르는 자들을 <신흥 이단 종교>라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매년 3대 절기(유월절, 맥추 절, 장막절)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야 했 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도 절기 때마다 갈릴리에서 약 200km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까지 순례길을 떠나야 했던 겁니다. 갈릴리에서 요단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해서 여 리고를 지나 800m 고산 지대에 있는 베다니를 거쳐 예루살 렘 성에 가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에 늘 ‘베다니(Bethany)’라는 마을에서 숙박하곤 하셨는데, 그곳에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3남매가 늘 예수님을 극진히 영접했 습니다. 주께서도 그 3남매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약 60km 정도 떨어 져 있었던 요단강 건너편에서 사역 하고 계셨는데, 주께서 사랑하시던 ‘마리아 마르다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병으로 죽어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셨던 것입니다. 바로 출발해도 빨리가야 2~3일은 걸어가야 했던 거리였는데, 예수님께서 지체 하시는 바람에 도착하셨을 때 , 나사로는 죽었고, 동굴의 돌 무덤에 매장된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9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조금만 빨리 오셨더라면 우리 오라비 나사로가 다시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 을 삼켜야 했습니다. 이미 늦었던라도 겁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죽은 오라비를 다시 살릴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하면서 우리가 종종 저지르는 실수 중에 하나는 우리의 마음의 사이즈 만큼 하나님의 사이즈를 제한한 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믿음만큼 하나님의 크기를 제한하 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하는 것만 큼 작은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 그 이상으로 광대하신 분 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크기를 제한하지 않는 다면, 여러분의 인생 속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을 경험하고, 간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크기 만큼 하나님은 얼마든지 크게 역사하십니다. 기적이 일어나 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우리의 작은 믿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40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을 굴려 열어 놓으라 고 했더니,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가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했던 겁니다. ‘주님, 소 용 없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됐습니다. 예수님 헛수고 하지 마셔요.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이렇게 생각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제 더 이 상 소용없다. 이제 나는 여기서 끝났다. 불가능하다…’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능력의 끝에서 하나 님께서 일하십니다. 나의 한계점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 이 시작 됩니다. ‘내가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 끝났다…’라고 하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은 일하시기를 즐겨하시는 것입니 다. 나에 대해서는 포기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은 포기 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주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하루 앞둔 어제 『국민일보』에서 1986년, 대 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라는 노래로 대상을 차지하며 유명 가수의 삶을 시작했던 ‘가수 유열’ 씨에 대한 간증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8년 전, 폐섬유증 진단을 받고 서서히 나빠지다가 지난해 5월 초 급격하게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했고, 체중이 40kg까지 줄고 호흡 곤란이 있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습니다. ‘폐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는 데, 언제 될지 모르는 누군가의 장기 기증을 기다리며 여러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있었답니다.

그가 그 기사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죽음 앞에 서보니 비로소 ‘삶’이 보였어요. 그렇게 살아선 안 되는 거였어요. 내 앞에 닥친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괴로웠던 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살지 못했던 ‘부끄러움’이었습 니다. ‘적당히’의 삶, ‘내’가 가득했던 삶, 불순종하며 살았던 삶을 정말 철저히 회개하면서 ‘참삶’의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런 중에 기적처럼 기증자가 나타나 7시간에 걸친 대 수술을 했고, 지금은 다 회복되어 말 그대로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나에 대해서는 소망이 없고 , 이 세상의 방법으로도 더 이상 가망이 없어도 , 하나님에 대 한 믿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기 도하십시오. 그 믿음 대로 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 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에게 “돌을 옮 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주님, 소용이 없습니 다’ 라고 대답했지만, 주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 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1절을 보시면,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 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마르다는 주님의 권면과 설득의 말씀을 듣고, 그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그 무거운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았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그 놀라운 기적은 예수님께서 하실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자동으로 돌문이 굴러가게 하실 수는 없으신가요? 천사들을 동원해서라도 그 돌문을 굴리실 수는 없으신가요?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돌문 하나 굴리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그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실 일이 아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다 시 말해서 초자연적인 기적은 사람의 힘으로 일으킬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 이지만, 그 기적은 우리의 믿음과 의지에 따라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만, 그 홍해 를 가르기 위해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밤새도록 뻗 고 기도해야 할 일은 모세가 했던 것입니다. 남들이 보면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고,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 을 것입니다.

요단강이 멈춰 서게 하는 기적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만, 그 전에 법궤를 들고 넘실대는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고 굳게 서 있는 것은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철의 이중 성벽인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7 일 동안 매일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그 성벽을 돌아야 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이라는 거인 장수를 쓰러뜨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 님께서 하실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물맷돌 하나 들고 그 골리앗 앞에 나아가야 할 일은 소년 다윗의 믿음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무덤의 ‘돌 문’은 여러분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고, 가망 없다고, 다 끝났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그 무엇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 있는 죽 은 나사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돌문을 굴려 내시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안 될 거 같고, 불가능할 거 같지만 믿음으로 그 죽음의 돌문, 그 불가능의 돌문만은 내가 굴려 내야 하는 것 입니다.

여러 책의 소재와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정말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온 ‘빅터 세르브리아코프(Victor Serebriakoff, 1912~2000)’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말도 더듬고 학교 에서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약간 왕 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 IQ 검사를 했는데, 73이 나온 겁니다. 학교 선생님은 “너는 왜 이렇게 엉뚱한 생각만 하니? 너는 머리가 나쁘고 하는 행동들도 이상하구나. 너는 공 부는 글렀고 학교도 졸업하기 어렵겠다. 그러니 당장 장사라도 배워서 먹고 살도록 해라”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빅터는 그 선생님의 말을 믿고, 학교를 자퇴하고, 저능아 소리를 들으며 단순노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32 세에 우연히 아이큐 검사 를 하게 되는데, 빅터의 아이큐는 놀랍게도 173(또 다른 책에서는 161)이었습니다. 빅터는 그때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고, 천재의 삶을 살기로 결정합니다. 책을 출판하기도 하고, 특허를 내기도 하고, 사 업가로, 발명가로 그리고 세계에서 최고의 지능을 가진 천재들의 모임인 ‘멘사(Mensa)’의 회장까지 하게 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시 작된다”

빅터의 중학교 시절부터 17년 간의 돌문은 즉 ‘자기 정체 성’은 ‘난 머리가 나빠, 나는 엉뚱해, 나는 뭘 해도 안 돼’라고 하는 자기 부정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돌문을 열어 버리니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던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의 그 죽음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
‘너의 그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
‘너의 그 실패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
‘너의 그 열등감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
’ ‘너의 그 불신앙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
‘너의 그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돌문을 옮겨 놓으라!’ 그러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요?

43절과 44절을 보시면,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죽음의 무덤에서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풀어 놓아 다니게 하십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실패와 절망과 열등감과 좌절감에 젖어 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죽어도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새생명을 얻듯이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듯,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 부활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2.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